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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을 결심하게 된 계기.홀로서기

한 번도 집을 나서본 적이 없다, 혼자 살아본다는 생각도 , 계획도 없었

by yeon

여느 날처럼 회사를 마치고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간다.

왠지 모르게 발걸음이 무겁다.

요 최근에 동생이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동생은 직업군인인데 갑자기 이제는 군인을 하지 않겠다고 한다.,

그러다가 갑자기 집으로 돌아오지 않고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면서 닌자처럼 행적을 감추고 돌아다닌다.

엄마 아빠는 반이 혼이 나간 사람처럼 동생에게 온갖 신경이 집중되어 있고 동생을 찾는 것이 혈안이다

어디 가서 굶지는 않는지 어디 가서 아프지는 않는지 왜 집으로 오지 않고 자꾸 밖으로 떠돌아다니는지

여러 가지가 궁금했을 것이고 걱정이 되어있을 것이다.


그 와중에 하나밖에 없는 우리 이모에게 남동생이 조금의 돈을 빌린 것을 알았고 이모는 그 사실을 엄마 아빠에게는 일부러 말하지 않은 것 같았다. 이모는 조카 바보이기 때문에 조카들의 비밀을 잘 보장해 준다.

남동생이 그러한 부탁을 했을 때 이모는 아마도 이 사태의 심각성도 몰랐을뿐더러 더군다나 엄마는 동생인 이모에게 집안일을 말하는 것이 쪽팔린다고 생각해서 자존심에 털어놓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이모는 조카가 그런 부탁을 들어줬을 때 아무 이유 없이 "얼마나 급했으면 부모님한테 말 안 하고 나에게 전화를 했을까'라고 생각하신 모양이다 그리 많은 액수도 아니었고 아주 소액이었기 때문도 이유기도 하다.


그렇게 이모를 통해 우연찮게 남동생이 있는 곳을 알게 되었다.

정확한 주소는 아니지만 어느 동네 지역에 머무르고 있는지 정도는 알아냈고 나머지 정보는 아빠가 군대에 전화해서 선임이나 후임 중에 그곳에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이 있는지 확인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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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정보라서 알려주지 않지만 알고 보니 동생은 군대에서 문제가 좀 있었던 모양이다.

그곳에서의 퇴직금이 단 한 푼도 남아있지 않고 군대로 독촉 전화가 많이 온다고 불만을 토로했다고 한다.

군인들은 대출순위 1순위라고 들었다. 더군다나 직업군인이라는 무기는 대출을 받는데 매우 유리한 시대였고 지금은 모르겠지만 그때는 그랬다고 한다.


그래서 동생은 대출까지 받아가면서 무엇을 하고 싶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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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군인이다. 어디서 사업을 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도대체 동생은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하였기에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일까? 금이야 옥이야 키웠더니 학교도 때려치우고 군대에 못을 박겠다고 선언하지를 않나, 이라크 파병을 자원해서 가지를 않나,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도통 알 수도 없고 상의도 하지 않는다. 이번에 군대에서 퇴직을 한 것도 그렇다 군인을 자그마치 8년을 넘게 했다, 이 정도면 그래도 뭔가 이루어 놓고 나서 자신이 군을 퇴직하던지 부모님이랑 상의를 하던지 아니면 앞에 어떠한 계획이라도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언니와 나와는 다르게 남동생은 지금껏 자신이 하고 싶은 것들은 거의 다 해왔다.

적어도 나와 언니는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남동생 본인은 자신이 가장 불합리하게 컸다고 생각한다.

누나들에게 모든 것을 다 해주었고 누나들 말을 잘 들으라는 말을 항상 들어왔기 때문일까 몰라도 누나들에게 항상 자신은 밀리고 자신이 가진 것도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것은 우리의 문제가 아니다 적어도 그렇게 생각하는 자신의 문제일 것이다. 또한 거기에 부모님의 영향이 미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아무튼 동생 찾아 삼매경. 엄마와 아빠가 강원도의 어느 집에서 동생을 찾아왔다.

동생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그냥 시커멓게 그을린 얼굴에 처음에 군대갈떄 입었던 그 청바지에 티쪼가리 하나 걸치고 왔다.

오는 길에 엄마 아빠가 이것저것 사서 먹인모양이다. 온몸에는 고기냄새가 진동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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숯불구이집에 가서 고기를 구워 점심을 먹고 오신 모양이다. 얼마나 많이 먹었을지 모르겠지만 오늘도 중에도 냄새가 빠지지 않고 올정도면 엄청 많이 먹었을 것이다. 알겠지만 양념 숯불갈비 냄새는 정말 오래간다. 그렇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나는 동생의 모습을 보는 것이 너무 싫었다.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단 1도 묻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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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동생이 집으로 돌아왔고 바로 일을 시작하지는 않았다.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았다. 엄마와 아빠는 동생을 앉혀놓고 하루 종일 무슨 이야기를 그리고 하는지 종이 한 장과 연필 한 자루를 주면서 적으라는 말 만 되풀이하고 동생은 고개를 숙인 모습만 보일뿐이다.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부모님의 화는 더 심해졌고 남동생은 약간 주눅이 든 모습이었으나 뒤돌아 서면 또 멀쩡하게 세상 걱정 없는 얼굴로 보였다. 무슨 상황인지 궁금하기는 했지만 신경 쓰고 싶지 않다.

지금의 나는 빨리 돈을 모아서 빨리 내가 원하는 것을 내 맘대로 해보는 것이 우선이다.

지금껏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아파도 회사를 나갔고 힘들어도 회사를 나갔다. 친구를 만나서 돈을 헛쓰지도 않았고 고급 명품이나 시계 따위에도 이때는 관심이 없었다.술을 마시는것도 하지 않았고 클럽이나 나이트 따위의 시끄러운곳도 단한번도 간적이 없다.

오로지 저축만이 살길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돈을 모았다.


그러다가 어느 날 지금까지 모았으면 이 정도는 될 텐데 하고 생각한 날이 있었다.

나도 나름대로 엄마가 통장을 보여줄 때마다 화를 내시니 나름대로 적금을 넣는 금액에 대한 것과 이자율 계산 그러한 것들을 메모장에 적어놓고 매번 급여를 받으면 작대기를 쳐가면서 계산을 했다.

이 정도면 제법 돈이 많이 모였을 것이다 내가 원하는 차량과 자그마한 아파트 20평 정도는 매매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때 내 나이 고작 28 정도였다. 하지만 미친 듯이 일했고 급여도 엄청 많이 받는 우수직원이다.


그렇게 나는 쓰는 돈 없이 모았고 그 와중에 남동생의 사건이 터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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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것은 나와는 무관하다. 남동생은 남동생이고 내가 모든 돈은 내가 모은 돈이다.

그것을 뭐 어찌하란 말인가. 나는 남동생이 무슨 일을 밖에서 저질렀는지 궁금하지도 않고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엄마 아빠가 힘들어했고, 나중에는 이유를 듣게 되었다. 남동생이 솔직히 말한 것인지 아닌 것인지는 지금도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엄청 많은 돈을 빛을 지고 있었고 게임으로 돈을 탕진하거나 부끄럽지만 이성과의 만남등이 불법적인 곳이 아닌 군인들이 자주 가는 다방이라는 곳에서 알게 된 아가씨와 눈이 맞아 그 아가씨에게 돈을 뜯기기도 하고 그랬던 모양이다. 이것은 남동생의 주장일 뿐 사실 나는 다른 의심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 금액과 그리고 대출을 받은 곳들이 거의 다 2 금융과 3 금융의 이자가 굉장히 높은 곳들이기 때문에 이것들을 감당하기 위해서 또 다른 대출을 받고 또 결국에는 군대에 독촉전화로 인해서 자진 퇴직한 것으로 밝혀졌다.


참으로 미친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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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하게 군생활을 하면서 존경받는 군위관이 되는 것이 그리도 어려운가?

한번 길을 택했으면 남자라면 그 길을 오점 없이 수행하고 만일 오점이 생기거나 사정이 발생하면 깊이 고뇌하고 나서 퇴직을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군대라는 것은 나는 잘 모른다. 여자이기 때문에 가본 적도 없고 갈 생각도 없었다. 하지만 나의 여자 친구들은 지금 다 군간부 출신들이다

앞서도 말했지만 내 여자친구들은 전부다 20살이 되던 해에 여군을 갔다. 그리고 지금은 장교이다.

그렇기 때문에 장교들이나 간부들이 어떠한 마음으로 군을 통솔하고 군에 대해서 자부심을 가지고 임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내 동생은 없는 걸까? 참으로 안타깝다.

그것이 나에 생각의 전부였다. 자기가 벌인 일은 자기가 해결해야 한다.

나는 지금껏 그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이때는 그것이 더욱더 심할 때였다.


그렇게 난 엄마에게 내 통장에 얼마 정도 있는지를 말했고, 엄마는 그 정도의 금액이 정확히 있다고 말해줬다.

나는 안심했고, 이제는 차량도 살펴보고 아파트도 살펴보고 여러 가지 꿈을 꾸게 되었다.

다시금 조금씩 나만의 삶에 대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렇게 조금씩 머리가 정리가 될 때쯤에 엄마에게 말했다.

이제 나도 신용이 회복된 지가 3년이 가까이 지났고 비록 내 이름으로 돈을 모으지 않았지만 그 돈은 내가 번돈이고 엄마와 아빠의 이름으로 통장에 고스란히 있는 것으로 안다.

나도 내 이름으로 변경해서 다시 돈을 내가 관리하고 싶다. 그러니 지금까지 모아놓은 돈을 나에게 주었으면 한다. 나도 지금 당장 하고 싶은 것도 있고 오랫동안 이것을 하고 싶어서 이루고자 돈을 모았다고 말했다.


엄마는 말한다.

차를 사면 찻값은 그렇다고 쳐도 유지비랑 그런 것은 어떻게 할 것이며, 집을 산다고 하면 그 집에 대한 세금이며 그런 것은 어떻게 할 것이냐., 너는 아직 어리기 때문에 세금이 많이 나온다. 이러 말을 길게 늘어 말씀하셨다. 솔직히 틀린 말은 아니다 지금생각해도 말이다. 하지만 이제 또 뭔가를 해보고 싶다고 하는데, 계획을 한번 세워보자.

이런 이런 차를 구매할 것이냐? 차종은? 그렇다면 세금을 알아보자 얼마가 나오는지 기타 등등을 나에게 상세히 알려주거나 같이 알아보는 것이 아니라 무작정 안된다 돈아 더 나간다 네가 모아놓은 돈이 다 한꺼번에 없어지는것나 마찬가지이다라는 말처럼 들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그때 직감적으로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엄마에게 따져 묻듯이 말했던 것 같다. 그때는 눈이 멀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엄마 다 됐고 통장 다 줘"라고 말헀다.

"엄마랑 아빠를 못 믿겠냐는 말은 이제 지겨워 그런 말은 이제 그만하고 그냥 통장을 줘. 어차피 내가 모든 내 돈이고 나한테 줄돈인데 지금 통장이라도 봐야겠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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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또 비슷한 말로 나를 자극했지만 나는 이번에는 기필코 통장을 모조리 다 봐야 할 것 같은 기분이다.

통장이 우수수 나온다. 우리 엄마는 한 곳에 모으지 않고 여러 곳에 분산시켜 놓으시는 경향이 있다.

내가 모은 돈 하나는 한 달에 30만 원씩, 한 달에 50씩 한 달에 100씩 이런 식으로 그리고 청약저축통장까지.

이때 내 이름으로 주택청약저축 통장을 든 것으로 알았는데 아빠이름으로 들어 놓았다. 아빠는 내가 믿는 사람이니까 뭐 괜찮겠지라고 생각했고 청약저축통장이 어떠한 기능을 하는지도 관심이 없었고 몰랐다.


그런데 이때 나는 한순가 무너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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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모아놓은 돈의 70%가 증발헀다.

어떻게 이럴수가 있지? 한참을 통장을 살펴보았다.

여러통장에 통장의 예금을 담보로 해서 대출을 받은것이 보였다. 이때 나는 통장에 잔고가 있으면 그금액만큼의 일정부분을 대출받을수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상상도 해본적이 없고 신경도 써본적이 없다.

빛지는건 딱 질색이었던 시기. 이미 친구에게 크게 배신당하고 힘든 삶을 어릴때 살았다. 이제 겨우 탈출해서 뭔가를 해보려고 하는 시기이다, 이것을 위해서 얼마나 힘들게 나를 혹사하면서 살아 왔는가? 감히 부모님은 나자신에 대해서 상상도 해보지 않으셨을것이라고 생각해버렸다.


그자리에서 엄마가 말한다.

남동생이 사고를 쳐서 그돈을 갚느냐고 너한테는말못하고 니돈으로 대출좀 받아서 해결했다. 이돈은 엄마 아빠가 벌어서 어떻게든지 다시 채워 놓겠다고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말을 믿지 않았다. 왜냐면 애초에 그럴거면 나하고 먼저 상의 해야하는것이 아닌가?

아무리 부모라고 해도 이런부분은 나에게 이야기 해줘야 하는거다.

내가 얼마나 아프고 힘들게 이돈을 모았는지 우리부모님은 다보았다. 그런데 돈도 돈이지만 그런 나에게 고작 남동생이 몇년만에 돌아와서 사고친돈을 내가 힘들게 번돈으로 부모님의 명의의 통장에 내돈이 들어있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을 마음대로 사용한다?

그것은 나에게는 매우 잔혹한 일이다.

나는 침묵했다. 그리고는 한마디만 말했다.

나는 엄마 아빠를 이시간 이후로믿지않겠다. 지금남아있는돈도 언제 사라질지 모르겠다.

그렇기 때문에 이돈을 전부다 지금나와 가서 은행에서 모조리 다 인출해서 내이름의 통장으로 이체 하곘다. 라고 말이다.


엄마는 적잖이 당황하신것 같았지만 곧장 나에게 말했다. 너무한거 아니냐고 말이다.

너무한다고? 내가? 왜? 나는 계속물음표이다.

이순간 까지도 엄마는 나보다 동생을 걱정하고있는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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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동생은 나에게 미안하다는 말이나 고맙다는 말이나 내가 어떻게해서든지 누나한테 갚을께 라는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남동생은 티비프로그램을 보면서 깔깔대고 웃어대고있다.

정말이지 입을 찢고 싶을 정도로 분노에 가득찬 나는 집안에 있으면 큰일을 낼것 같아서 차마 그쪽을 시선으로 두지 않고 엄마와 은행을 빨리 가는것을 선택했다.

결국에는 은행에서 모든일을 처리했고 남은 30%의 돈을 나는 지켰다. 그리고는 물었다 나머지 70%에 해당하는 돈은 언제까지 줄거냐고 말이다. 받을수 없다는것을 짐작했지만 어떻게 말하는지 듣고 싶었던 모양이다.


엄마와 아빠는 화를 냈다. 니돈 때어 먹지 않으니까 걱정마.

시간이 좀 걸려도 언젠가는 갚을테니까 라고 말이다.

이말은 나에게 굉장히 차가운 말이자 심장에 비수를 꽃는 말로 들렸다.

그래,. 나는 이제 이집에 있으면 안돼. 그냥 죽던지 살던지 밖에서 얼어죽든 더워죽든 일하다죽든 뭐하다죽든지 그냥 이집에서 나가는것이 나에게는 답이다 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집에도착헤서 짐을 싸기 시작했고 저녁에 엄마와 아빠에게말했다. 나는 지금 집을 나간다.

이사할 집도 원룸으로 하나 구했고 나는 독립을 할것이고 이젠 집에 더 보태어 줄 돈도 없다.

그러니 지금 남동생에게 들어간 돈을 빨리 모아서 나에게 주기를 바란다고 하면서 나의 게좌번호를 적어서 쪽지에 전달했다.


아빠는 너같은 딸 둔적없다고 했고 엄마도 어떻게 부모에게 돈때문에 이럴수있냐고 노발대발 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아빠는 너무 화가난 나머지 나에게 "앞으로 너같은 딸은 나한테 없다. 딸하나 없는셈 치면 그만이다"라는 막말을 내뱉으셨다.소주를 한잔 걸치고 하신말씀이라서 진심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홧김에 하신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말을 곧장 받아쳤다. '잘됐네요. 나도 이집 딸 노릇 하기가 너무 힘들었는데 원하던 바이다. 그러니 딸이 하나 없다고 생각하고 앞으로 나에대해 궁금해 하지도 말고 죽었다고 생각하고 사세요" 하면서 "그럼 나는 이만 나가볼테니까 더이상 우리 보지말고 살았으면 합니다" 라고 냉정하게돌아섰다.


뒤에서는 엄마와 아빠가 하손연 하면서 중얼 거리는 말이 들렸지만 내귀에는 들어오지 않는다.

서글픈 눈물이 한참을 눈아래로 흘러내렸다. 이러려고 내가 지금까지 이렇게 열심히 살았나? 하는 마음과 부모님에 대한 원망과 나 자신에 대한 원망 .죽지못해 사는 신세애 대한 한탄 여러가지등이 나를 옥죄여 왔다.

그렇게 나는 집을 처음으로 나갔다.

그리고는 집과 제법떨어진 곳의 원룸을 얻었고, 그곳에서 한달동안 밖으로 편의점을 가는 일 외에는 거의 나오지 않았다. 이때의 충격으로 나는 직장에 휴가를 또 냈고 한달정도의 쉬는 시간을 가졌다.정신적인 충격과 심리적인 충격이 상충했었다.

그렇게 나는 한달을 또 어둠속에 갇혔고 누구의 전화도 받지않았다.


그리고 핸드폰 번호를 변경했고, 정말로 연락이 필요한 사람 외에는 아무에게도 번호를 알려주지 않았다.

그렇게 가족과도 한달 가까이 연락을 하지 않았다.솔직히 말하면 3년동안 가족과의 아무런 연락을 하지 않았다. 유일하게 언니와는 전화를했지만 언니도 내성격을 알기때문에 나의 전화번호를 엄마와 아빠에게 공개하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고 있던 찰나에 아빠가 갑작스럽게 폐암이 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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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정말로 독하다.

그로인해 아빠는 서울의 큰병원으로 다시 제검사를 받으러 갈것이고 지금은 부산의 어느 병원에 입원중이라고 언니가 연락을 해왔다.그래도 다른것도 아니라 아빠가 폐암이라고 하는데 한번 봐야 하지 않겠냐고 나에게 말했다.

나는 단호하게 볼생각없다고 말했다. 왜 그랬는지는 알수없지만 보고싶지 않았다.

내가 죽었어도 나는 내 장레식을 내 가족이 치뤄주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만큼 나는 아주 깊은 갈등에서 헤엄치고있었다.

그렇게 아빠를 보지않았고, 언니에게 전해듣기를 오진으로 인하여 서울의 세브란스 병원에 제검사르 받은 결과 폐암이 아니라 단순한 병명이라고 들었다. 약물치료1달이면 치유가 되는 병이라는 말을 전해들었고 오진이라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외에는 다른생각은 들지않았다.


이때의 나는 너무나도 냉정하고 차가웠다.

바늘로 찔러도 피한방울 나오지 않을것 같다는 속담의 말처럼 나는 그렇게 살았다.

내가 생각해도 너무 냉혈적이었다. 부모님을 아는 나의 오랜 친구들도 병문안을 나대신 아빠에게 갔는데 나는 가지 않았다. 친구들에게는 고맙지만 쓸떼 없는 짓을 했다고 나는 친구들을 나무랬고 친구들은 오히려 나에게 너무 그러지 마라고 이야기 헀다. 하지만 자신이 내가 아닌이상은 나를 알수없기 때문에 나는 친구들에게 당부했다. 내일을 너희 일처럼 나서서 해주어서 너무 고맙지만, 때로는 말못할 사정도 있는것이고 굳이 너희들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나는 너희 친구이기 때문에 우리사이에 서로 배신하는일만 없다면 우리는 친구로서의 관계가 유지될것이다. 이렇게 말할수밖에 없어서 미안하다라고 말이다.


이때의 친구들은 거의다 남자사람친구들이라서 의리가 있고, 왠만한 남자친구들은 다 언니를 보여주었고 같이 어울려 놀기도 하고 같이 이야기도 하고 우리집에 와서 같이 놀다가 가기도 하고 한명이 아니라 같은 무리의 친구들이라서 부모님이 알고 언니가 아는 그런 친구들이다 . 이성이자만 동성같은 친구라고 나는 생각하면서 그들과 지금도 연락하고 지낸다. 그들은 다 결혼을 했고 아내와 아이들과 행복하게살고있다.


이때는 그들은 결혼을 하지 않았을 때였고, 물론 나에게도 마음이 없었다. 서로에게 마음이 없었다.

서로의 집안에 문제가생기면 논의 하고 의지하고 서로 의견을 주고 받고 도울수있으면 도와주었던 그런 친구들이다. 여자들 처럼 시셈하고 질투하면서 뒷담을 까는 그런 친구들이 아니다 ,남자친구들로 나는 여자친구에게 배신을 당하고 나서 부터도 더 욱더 심하게 여자친구들을 만들지 않았고 오로지 어릴때 부터 알고지낸 남자친구들과의 교류만 가졌다


그래서 인관관계가 그렇게 복잡하지는 않았다. 적어도 친구관계는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 나의 독립의 계기는 시작되었다.

독립후 단한번도 남친들을 나의 집으로 초대한적이 없다. 주소도 알려주지 않았다. 못믿어서가 아니라 그냥 밖에서 만나는것이 편하고 집이라는 공간은 오롯이 나의 쉼터이기를 바랬던 마음이 너무나도 컸다.


나의 첫번째 반항이 사춘기도 아닌 성인이 되어서 말도안되는 상황으로 시작되었고 나는 그렇게 독립이라는 것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더욱더 냉혈한이 되어버렸다. 이렇게 차가워지고 있는 나는 심장까지도 꽁꽁 얼어 붙어 버릴만큼 딱딱해져가고 있었다.


독립을 아름답게 하고싶었다.

하지만 그렇지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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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는 나의 독립된 생활에서 또 한번 일어나는 다이나믹한 일들이 한참 남았다.

나의 삶은 평탄 하지 않은것일까? 아무래도 나는 남들과는 다른 사나운 팔자를 타고났는가? 아니면 내가 전생에 죄를 너무 저질러서 이렇게 나에게 잔혹한 상처들만 가득한걸까? 도무지 알수없다.


그냥 하루를 살고 하루를 버티고 죽으면 어쩔수없고 살면 어쩔수없고 모든것이 어쩔수 없는 삶이었다.

그렇게 어쩔수 없는 삶에 대해서 나는 지금 적고 있다. 28살의 나의 기억으로 들어가서 글을 적고있는 나는 그때의 심정이 다시 다가와 가슴한켠이 먹먹한채 이글을 마친다.


이글을 다 적고 나면 조금 머리를 비우는 시간이 필요할듯 하다.

내인생의 글을 적는 것이라고 하지만 아픈 기억들이 너무 많아 이것들을 재생하고 또 버리고 비우는데는 몇일이 걸린다. 하지만 결국은 이책을 연제하고있는 나로써는 나의 선택에 대한 타격도 고스란히 내가 비워야 한다. 그렇게 괜찮아 질수도 있다. 되돌아 볼수있는 아픈기억이라고 할지언정 기록으로 남겨두는것도 나쁘지는 않다. 진실이든 거짓이든 내 삶은 진실이기 때문에 이것을 적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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