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1편. 이번기업은 기억에서 지울 수가 없다.
기억에 남는 출장이다.
정말 좋은 대표님을 만났다. 한참 후에야. 이 이야기를 듣다 보면 마지막에 등장하실 거다.
어디로 갈까... 전라도이다. 지역감정은 아니지만 컨설팅을 하면서 느낀 건데 전라도 기업들의 대표님들은 의심이 많으시다. 그리고 한번 믿으면 끝까지 간다. 의리가 있으시다. 하지만 한번 아니면 뒤도 안 돌아본다.
내가 느낀 개인적인 부분이다. 모두가 다 그렇지는 않다는 건 알고 있다.
나의 아버지의 고향도 전라도이다. 그래서 지역감정을 가지진 않는다. 하지만 이 업에 종사하면서 각 지역의 기업들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는 없다. 대부분 70% 정도는 내가 생각하고 느낀 바처럼 성향이 유사한 기업들이 많다.
자. 이번 기업은 이야기가 좀 길어질 듯하다.
모든 것은 만남으로부터 시작된다. 기업을 만나야 한다. 그리고 전라도이다.
서울에서 전라도까지... 기차를 탈 엄두는 내지 않았다. 차로 이동하는 게 차라리 속편 했다.
기술이사와 항상 함께 이동한다. 기술에 대한 분석을 하고 자문을 하기 위한 필수 요소이다.
각 기업마다 배정받는 기술이사들은 제각각 다르다. 이번에 전라도에 같이 간 기술이사는 지난번 대구에 같이 간 기술이사와 동일하다.
성실함의 끝판왕이라고 할만한 기술이사이다.
그만큼 능력도 출중했기에 든든한 아군과 함께 전라도로 향한다.
멀었다. 너무나도 멀다... 세월이 한참 흘렀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중간중간 너무 멀다 멀다 만 반복했던 것 같다. 아무튼 기업에 도착을 했다. 처음에 만나기로 한 장소는 전라도의 한 카페이다. 잉? 왜 카페에서 만나자고 하지?? 사무실이 없나? 속이 타들어간다. 실체가 없으면 어쩌지... 너무 걱정이 된다.
한 10분이 지났을까...
기술이사와 커피를 한잔씩 시켜서 앉았다. 그때는 여름이었다 무척 더웠던 걸로 기억한다.
커피숍 안으로 기업의 이사라는 분이 걸어 들어온다. 단번에 우리를 알아본다.
당연하다. 그곳의 커피숍에는 서울사람처럼 보이는 사람이 우리 둘 뿐이었을 것이다. 시장 한가운데 있는 커피숍이었기 때문에 더욱더 그럴 것이다.
"안녕하세요" 소속과 직책을 보여주며 명함을 주고받는다.
기업 이사님이 상황을 설명한다.
"지금 저희가 공사 중에 있어서요 어수선합니다. 그래도 와서 한번 보시겠어요. 자료는 가서 이야기하면서 필요한 것 있으시면 메모해서 메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그래도 얼굴은 뵈어야 할 것 같아서요"
"아. 네. 그럼 이동하실까요"
아주 무미건조한 대화지만 오고 갔다. 출발할 때부터 기업의 짓고 있는 공장까지 도착하기 전까지 난 뿌루퉁했다. 그냥 뭔가 모를 불안감이 엄습했다고 해도 되겠다.
[현장 도착]
음.... 도착하니 공장을 짓고 있었다.
자제가 이리저리 굴러다닌다. 기업의 기술이사만 보이고 대표가 보이지 않는다.
"이건 또 무슨 상황이지?"
혹시 대표님은 어디 계실까요???
기업의 기술이사라고 하는 분이 말한다.
"아 저희 대표님은 대구랑 울산 쪽에 계세요" 그래서 지금은 오지는 못하셨고요. 제가 대신 업무 진행하면 돼서 저하고 논의하시면 됩니다"
이런 경우가 많지는 않아도 간혹 있다. 그래도 대표랑 얼굴은 봐야 하는 게 진리. 대표님을 꼭 뵙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조만간 서울로 온다고 이야기하셨다.
일단 너무 집요하게 굴지말자.. 어차피 진행 중인 업체이기 때문에, 기술내용과 전반적인 내용을 듣고 파악하는 게 우선이니까. 마음을 다잡고 차근차근 여쭈어 봤다. 기업현황등 여러 가지 들을..
이 기업은 초기 기초 컨디션 확보와 인력등의 문제가 시급해 보였다.
지금 4대 보험 가입인력에 대한 부분 및 기타 가점사항들 인증 사항들 여러 가지를 묻는다.
가지고 있는 것은 특허뿐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특허를 기반으로 해서 개발을 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선정을 위해서는 많은 것들이 부족했다.
이것저것 안내를 드렸고 회사에 귀소 해서도 정말 이메일화면이 꽉 찰 만큼 피드백을 적어서 보냈다.
하나하나 준비할 시간이 이때는 충분했다.
통상적으로 R&D를 시작하는 기업들의 경우 초기 컨디션 확보부터가 매우 중요하고 그걸 진행하면서 동시에 자문에 따라서 여러 가지 업무들을 진행한다.
공고가 나오고 나서 준비하면 늦다는 거다. 완벽히 준비되어있지 않은 이상 말이다.
자. 기업과 소통을 이어나간다.
개발하고 싶은, 개발을 위하여 사전적으로 준비한 내용을 쭉 들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해당 기업은 재배작물에 대한 스마트 팩토리를 하고 싶은 거다. 그거를 위해서 지속 생산이 가능한 식물공장 자동화장치를 개발하고 싶어 했다.
그러기 위해서 우선은 공장을 짓고 있다고 했다.
사업자는 있는 상황. 매출은 없는 상황. 다행히 3년 미만이다.
이것을 왜 개발하려고 하는지. 기타 등등을 들었다.
우리 질문에 막힘없이 대답을 한다. 특허도 이 기업의 기술이사로 등록이 되어있었다.
조금은 이상했다. 기업의 명의로 특허를 내는 것이 맞는데... 아무래도 내부적인 부분이 있는 듯하다.
꼬인 실타래를 하나하나 풀어나간다.
이 업을 하다 보면 알고 싶지 않은 기업의 속사정도 듣게 되고, 이후에 여러 가지 사건 사고들을 알게 된다.
이 기업도 뭔가가 있다. 아니 있을 것이라고 직감적으로 예감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는 것도 직감했다. 내부적으로 정리하셔야 할 것들이 있는지 여부를 물었다.
시원한 답은 안 나왔다. 어쩔 수 없다. 다시 R&D로 돌아간다.
이때는 스마트바이오팜, 스마트 공장, 스마트 스마트 그놈의 스마트가 인기였다.
전편에서도 이야기했지만 각각의 분야에서의 트렌드가 있다.
이쪽은 트렌드는 "스마트"였다.
기존의 식물의 생산 및 재배와 차별점을 두고 식물의 생산에 있어서의 변화에 대응하고자 본 개발을 진행하고자 한다고 기업의 기술이사가 말한다.
이런 식의 말은 평가위원들이 듣기 좋아하는 답변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은 언제 완공될지도 모를 것 같은 이공장의 을씨년스러움과 열정 넘치는 기업기술이사. 얼굴도 모르는 계약당사자의 기업대표. 이런 상황이다.
[계획서 작성을 위한 서류 검토]
서류가 거의 없다. 특허가 거의 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난감한 상황이다. 아이템이나 기획의도는 좋다. 하지만 자료가 너무나도 부족하다.
항상 느끼는 점이지만 이런 부분이 매우 안타깝다.
정말 말도 안 되지만 계획서가 완성이 되었다.
일일이 말할 수 없지만 여기에서 우리 회사의 기술이사가 정말 고생을 많이 했다.
우리 회사의 이 기업을 맡은 기술이사는 우리 회사에서 제일 선정률이 높은 일명 일타 강사 급이다.
기업이 계획서를 받아보고 너무나도 만족스러워했다.
당연하다. 나 같아도 그럴 것 같다. 하지만 결과는 알 수 없다. 왜냐하면 기술을 우리가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개발하는 것이기 때문에 기술에 대한 부분이 분명히 피드백이 올 것이다. 그것은 기업과 우리 모두 다 알고 있다.
접수를 했다.
항상 그렇듯이 접수 후 결과를 대기한다.
이번은 예상한 결과가 나왔다.
"서면결과 추천제외"
서류에서 탈락한 것이다. 탈락한 사유는 과제공고를 접수한 사이트에서 결과와 함께 종합의견으로 나온다.
우린 그것을 탈락사유에 대한 피드백이라고 말한다.
그 피드백을 100% 우리는 믿지 않는다.
일반적인 피드백도 많고, 전문적인 입장에서 봤을 때 우리가 필요로 하는 피드백만 보완하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체적으로 과제를 지원하는 기업들은 피드백에 "울분"을 토로한다.
적어도 나와 일한 기업의 대표님들에게는 나는 이렇게 말한다.
"대표님. 피드백 중에서 우리가 받아들여야 하는 부분이 있고 그 부분은 수정보완을 하면 되는데, 그 외에 어떠어떠한 부분은 굳이 보실 필요 없으신 거니 그 부분은 일반적인 겁니다. 평가를 할 때 이런 부분들은 평가하는 입장에서 적을 수밖에 없는 부분이기도 하고, 기타 등등.........입니다"라고 말해준다.
이래서 제대로 된 전문가와의 협업이 중요한 거다.
대다수 일을 우리와 오래 한 대표님들의 경우 떨어졌던데 피드백 확인하고 의견 부탁드립니다.라고 말하시곤 한다. 당연하다. 그건 우리가 할 일이니. 이 말은 어느 정도 대표님들이 이제는 알고 있다는 거다. 이생태계를...
아무튼 지금 서면이 탈락했고, 수정을 해서 곧 다가올 2차에 접수하여야 하는 것이 우리 목표이다.
기술성과 사업성 골고루 피드백이 나왔고 우리가 염려했던 부분이 이 기업의 경우 고스란히 다 나온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이 기업을 이렇게 잘 기억하는 것은 뒤에 나오겠지만 특별한 이벤트가 있었기 때문이다. 내 기억에서 지울 수 없는 이벤트이기도 하다.
[서면 탈락 후 기업과의 소통 내역]
상세한 부분은 기밀유지에 속함에 말하지 못한다.
기업의 기술이사와 이야기한다. 이사님 결과에 따라서 수정을 해야 할 것 같고 나온 피드백은 그대로 수용하여 진행하여야 할 듯합니다. 그러려면 이러이러한 것들이 보완되어야 합니다. 이메일로 전달드렸으니 확인 후 자료 회신을 부탁드립니다.
이것이 우리의 후속 조치였다.
기업이 말이 없다. 1주.... 2주... 3주... 속이 타들어간다.
때마침 접수를 일주일 앞두고 기술이사에게 전화가 온다.
"이사님 전화가 너무 안되셔서 걱정했네요. 이번에 수정해서 접수하셔야죠!"
"저희가 말씀드린 자료는 회신이 언제 가능하실까요?"
"기일이 얼마 없지만 수정할 부분만 수정하면서 다시 한번 더 도전하셔야죠"
기업의 기술이사가 망설인다.
"지금 회사 내부적으로 문제가 좀 있어서요"
예상한 답이었다. 그래 무슨 일인지 들어보자.
"지금 공장을 짓고 있는데 이게 좀 잘 안되고 있어요... 중간에 우리한테 공장 짓고 나서 이거 저거 다 해준다고 한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은행대출도 받아준다고 하고 해서 그쪽에 주신 계획서도 넘기고 회사 도장이고 뭐고 다 맡겼는데.......... 그 사람이 사기를 쳤어요 ㅠㅡㅠ.. 늦게 연락드려서 죄송합니다"
다른 건 예상했는데, 와.... 무슨 스케일이 이리 크지... 이런 나쁜 XX들을 봤나... 어떻게 사람이 이래? 진저리 난다. 사기 치는 사람들..
물었다.
"이사님, 일단 진정하시고요. 저희한테 죄송할 건 없어요. 걱정이 돼서 전화드린 거고, 하시고자 하는 부분이 너무 명확하시고 그래서 저희랑 인연이 되신 건데 저희는 저희의 할 일을 하는 거죠... 다만 이사님이나 얼굴을 뵙지는 못했지만 대표님이 걱정이네요. 그래서 공장은 지금 완공이 되기는 하는 건가요?"
"어떻게 되는 걸까요?"
기업의 기술이사가 하나도 힘이 없다.
"휴.... 잘 모르겠네요.. 그래도 다행히 R&D까지도 돈을 받아주겠다고 해서 이거 저거 요구했는데 그거는 별도로 우리 기업에서 알아서 하겠다고 해서 상무님과 일을 하게 된 건데, 그것도 거기다 맡겼으면 이런 계획서도 못 받아보고 남는 게 하나도 없었을 거예요..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너무 맘이 아팠다. 죄송할 건 없다. 감사할 것도 없다.
우리가 해줘야 하는 일을 응당 대가를 지불받고 해 준 것이고, 결과에 따라서 당연히 비용을 받아야 하지만 지금 그게 중요하지 않는 상황이다. 우선적으로 기업이 힘을 내야만 하는 상황이다.
"이사님 저희에게 죄송할 거 없으세요. 감사할 것도 없으시고요. 선정이 된 것도 아니고 오히려 저희가 맘이 아프네요."
기업의 이사님이 말한다.
"사람을 보고 일하는 거죠. 신경 써주신 거 알고 저희가 드린 자료가 어떤 건지 제가 잘 아는데 이 정도 계획서를 정말 작성해서 주신 것 만으로만 봐도 저희는 자료를 얻었고 이거를 바탕으로 해서 말로만 하고 글로 표현하지 못한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선정이 되어야 더 좋은 거고 저희도 그렇고 상무님 회사도 그렇고... 그걸 제가 부족한 탓에 이렇게 되었네요..."
맘이 다시 한번 아프다. 그리고 고맙다...
난 철저히 감정보다는 비즈니스 마인드로 일해야 한다.
하지만 사람의 감정이란 게 그렇지 않지 않은가. 이 기업이 그랬다.
"이사님 일단은 힘내시고요. 경찰에 신고는 다 하신 거죠? 정확한 피해금액이랑 사건발생일자 이거 저거 카톡이나 문자 주고받은 거 전부 다 정리하셔서 정확히 신고하셔야 해요. 지금은 R&D도 중요하지만 3차가 있을 수 있으니 그동안에 일단 급한 내부적인 문제부터 해결하셔야 할거 같아요"
기업의 기술이사와의 통화는 여기서 마무리되었다.
이 글을 적고 있는 지금은 2024년이다 하지만 이 기업을 만난 건 벌써 9년 전이다. 지금도 스마트바이오에 대한 여러 가지 각 아이템의 기업들을 만났다. 그중 전라도의 기업이 하고자 한 기술을 하겠다고 하는 기업도 본 적 있다. 많은 기업들을 만나다 보면 알고 있는 내용들을 간혹 듣는다. 그래도 표시 낼 수 없다. 그냥 알고만 있어야 할 뿐이다.
그렇게 이 기업과는 계약기간이 속절없이 지났다.
그리고 또다시 연락이 왔다. 기업의 대표에게 연락을 받았다. 알고 보니 기업의 대표는 이 전라도 기업을 적극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 다른 업에 종사하면서 일을 기술이사에게 맡겨놓은 듯하다.
나의 연락처를 자신의 기술이사에게 받았다고 하면서 연락을 주신다.
상세히 설명을 드렸다. 어떤 업에 종사하시냐고 물었다. 수산업이라고 하신다.
수산..... 흠....... 아는 체할까... 말까.... 그냥 아는 정도만 이야기해 보자라고 생각했다.
"요즘 수산 경기 별로 안 좋죠? " 암호는 아니지만 이렇게 이야기하면 다들 직감적으로 안다.
"어. 어떻게 아셨어요?? 안 그래도 힘들어서 내가 신경을 많이 못썼는데 그 공장에 직접 가보셨죠?"라고 이제야 기업의 대표님이 묻는다.
솔직히 말씀드렸다.
"기술이사님은 진짜 열심히 하셨는데, 제가 갔을 때는 비어있는 폐공장을 리모델링하고 구축하는 현장 같은 분위기라서 약간 을씨년스럽고 어지러운 분위기였어요. 이래서 언제 설계에 대한 공장을 만들지?라고 속으로 의구심은 들었지만 따로 만나 뵙지 못해 말씀을 못 드렸네요"
난 알고 있다. 솔직해야 한다는 것을. 고객사에게는.
더군다나 이분은 수산업에 종사하시는 분이다. 아주 전편에서 이야기했지만 수산은 폐쇄적이지만 그래도 금전 부분은 아주 깔끔하고 그리고 속고 속이는 건 안 한다. 솔직하게 다가서야 마음을 연다.
기업의 대표님이 말하신다.
" 솔직히 말씀해 주셔서 감사드려요. 하... 내가 많이 배우지 못해서 이런 부분에 도움을 받을 사람이 없었어요""수산업을 이제 그만 아들에게 물려주고 나는 전라도로 가서 귀농이나 하면서 공장에서 새로운 비즈니스를 해보려고 가진 재산을 거의 투자하다시피 했는데 지금 솔직히 전라도 공장에 와서 텅 빈 거 다 부서져 있기만 한 거 보고 어찌 저지 연락처라도 받아서 아는 곳이라고는 여기뿐이라 초면임에도 불구하고 연락드렸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있는 그대로 말씀해 주시니 감사드려요... 상무님 혹시 제가 시간이 될 때 다시 전화드려도 괜찮을까요?"라고 말씀하신다.
진정성과 안타까움. 난 서슴없이 답했다 " 네 얼마든지 연락 주세요. " 이 이상의 말은 무의미할 것 같아서다.
연락이 왔다. 울산에 계신다고 해서 찾아뵙기로 했다.
첨으로 뵙는 얼굴일 것이다.
기술이사와 함께 출발했다.
도착하니 점심시간이 되었다. 점심생각은 없었다. 모든 사실을 다 알고 있기에 무거운 자리가 될듯했다.
사실은 굳이 우리가 가지 않아도 된다. 계약에 의거하면 말이다.
이미 계약은 종료되었고, 다시 R&D를 한다고 계약을 원하셔도 해드릴 수 없는 상황임에 확실하다.
나쁜 맘먹으면 그냥 마저 해드리겠다고 하고 계약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한다.
자세히 상황을 설명드리는 게 맞다. 왜 안되는지....
기업의 대표님은 여기에 내 수산공장이 있어요, 이 근처에서 자주 밥을 먹는데 여기가 맛집이에요
멀리까지 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미리 식당을 예약하신 듯하다. 괜찮다고, 밥은 괜찮다고. 안 사주셔도 된다고. 말하고 싶었다.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우리를 보자마자 "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리고 제가 밥 한 끼 대접하고 싶어서 예약했어요. 식사하시면서 이야기 좀 하고 싶네요"라고 하는 말을 먼저 들어서이다.
식당으로 가니 대게가 한 달 먹고도 남을 정도로 가득 올라와있다.
너무 웃기지 않은가.. 무거운 분위기에서 대게를 쪽쪽 빨아먹어야 하는... 가위질을 해서 살을 발라내서 먹어야 하는... 이 상황. 대게가 목구멍으로 들어가는지 콧구멍으로 들어가는지 알 수가 없다. 아마 같이 간 기술이사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기업의 대표님은 "왜요 맛이 없어요? 다른 것으로 주문해 드려요?"라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아니요 너무 맛있어요. 근데 너무 많아서 죄송하네요"라고 말을 이어갔다.
우여곡절 끝에 식사를 마친다.
기업대표님이 말씀하신다. 난 그 기술이사를 원망하지 않아요.
사기는 치려고 맘먹으면 당할 수밖에 없잖아요. 다 잘되려고 한 건데 사기 친 놈이 나쁜 거지 당한 놈이 나쁜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R&D에 대해서도 들었어요. 많이 힘써 주셨다고요. 저희의 능력이 많이 부족한데도 친절하게 해 주신 것도 다 들었고요. 그래서 뵙고 싶었어요"라고 말씀하신다.
감동스럽고 고맙다. 그리고 사기사건에 대한 대표님의 생각이 예전의 나의 상황을 대변해서 나에게 오히려 위로가 되어 준거 같아서 따뜻한 맘이 들었다. 정말 이 기업의 대표님은 우리가 궁금했던 거다.
"상무님. 그래서 말인데요. 우리 R&D 다시 계약하면 어떨까요?"
최고로 걱정한 말이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무겁게 입을 열었다.
"대표님. 지금은 준비가 아직 안되셨어요. 계획서가 있다고 하지만 이제는 선정을 목표로 하셔야 하고 실제로 사업화하셔야 하잖아요. 손해보신 금액도 크실 텐데 그것부터 마무리하고 나서 천천히 준비하시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저희한테 또 하시면 또 계약금을 주셔야 해요. 굳이 그러실 이유가 없으실 거 같아요. 제가 볼 때는 R&D 계획서는 이후 기보 쪽으로 사업확장하실 때 사업계획에 필요한 자료로 사용된 실수 있으실 거 같으니 잘 보관하고 계시다가 유용하게 사용하셔요. 이 문서는 00 대표님 기업의 재산이세요."
" 대표님이 사용권한이 있으시고요."
회사의 입장에서는 계약을 하는 게 맞다. 기업이 원하기 때문에.
하지만 난 그럴 수 없었다. 내가 겪어 봤고, 뭐가 더 우선인지 눈에 보이기 때문에.
이 말에 기업 대표님이 말씀하신다.
"네, 알겠어요" " 솔직하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드려요" " 기회가 되면 꼭 다시 만나 뵀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이 회사와의 인연은 끝난 것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 이후로 이 기업의 대표님은 가끔씩 연락 오시곤 한다.
R&D를 할만한 기업도 소개해주셨고, 난 최선을 다해 컨설팅해 드렸다.
지금은 연락이 끊긴 지 벌써 4년이 넘어간다.
이번 글을 꽤 길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깔끔하지 않은 결과이다. 일적으로는 말이다.
문득문득 생각이 난다. 그만큼 아쉬웠고 맘이 쓰였던 기업이었다.
어떻게 지내고 계실지 모르겠다. 잘 지내고 계시면 좋겠다.
사람의 인연은 어디서 어떻게 만날지 모른다. 그렇기에 이 기억은 나에게 강열한 인상을 남겼고 난 세월이 지난 지금도 그 기업의 대표님이 건승하시기를 기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