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갱년기 앨리스 Feb 28. 2024

엄마의 날 샌 욕망

남의 집 아들이란...

난 우리 아들이 정말 공부를 잘했으면 좋겠다.

아이들로 인해 주목받는 여느 엄마들처럼 아이가 어떻게 그리 공부를 잘하는지 물어봐 주는 사람도 있으면 좋겠고, 은근슬쩍 나와 친해지려고 애쓰는 엄마들도 있으면 좋겠다. 반면 나는 매우 시크하고 덤덤하게 별 시키는 것도 없고 그저 끼니만 잘 챙겨주는 것 뿐인데 아이가 혼자 알아서 뭐든 잘하는 일명 복받은 엄마라면 어떨까 가끔 상상을 한다. 이게 솔직한 내 마음이다. 진심! 공부를 잘해서 다른 집 아들처럼 SKY 대학을 바라보며 공부를 했으면 좋겠다. 공부도 스스로 척척 잘 하고 운동도 잘하고 리더십도 뛰어나 매년 학급 반장은 특별할 것도 없으며 키도 크고 인성도 좋은 그런 아들. 티브이에 나오는 아들들처럼 말이다. 얼마 전 유퀴즈에 윤상이 아들 라이즈의 멤버 앤톤과 함께 출연했다. 정말 훈훈하고 보기가 좋더라. 남의 집 아들이란...


우리 아들은 현재 만 14세.

공부에 재능도 흥미도 없다. 그렇다고 운동도 좋아하지 않는다. 학교행사도 그다지 즐기지 않는다. 가까운 동남아 국가에 거주하며 만 1년째 국제 학교에 다니고 있는 아들은 학교 가는 것만 좋아하는 학생이다. 우리 아들은 언제부터 이렇게 공부와 멀어지게 되었을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부가 설명을 하자면, 동남아 국가에 있는 국제 학교는 한국에 설립된 국제 학교와는 다르다. 한국의 제주도나 송도에 있는 국제 학교는 입학도 어려울뿐더러 학비도 어마어마하고 학업 내용도 어마 무시 하다고 들었다. 그러나 우리 아이가 다니는 국제 학교는 학업 스트레스도 많지 않고 즐겁게 학교생활 할 수 있는 수준이다. 물론 한국의 국제학교 못지않은 학교들도 있다.)


우리 부부는 아이가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부터 공부보다 건강하고 세상을 아는 아이로 키우자고 다짐했었다. 공부 공부하지 않는 부모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우리는 여행을 많이 다녔다. 서울의 작은 교실에서 배우는 영어가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문화와 함께 영어도 자연스럽게 배우게 하고 싶었다. 남편의 직업 상 해외에서 주재원으로 지내게 되는 행운도 있었고 캐나다도 2년 연속으로 한 달 살기 다녀왔고, 동남아 국가는 물론이고 캐나다, 스위스,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인도, 모리셔스, 세이셸까지 많은 곳을 다니며 여행했다. 당연히 집엔 티브이도 없었고 주로 책 읽는 모습을 보여주고 아이에게 책도 많이 읽혔다. 미디어 노출도 최대한 늦췄다. 그리고 1년 전, 우리가 해외이주를 결심한 이유도 아이의 교육 이슈가 가장 크게 작용했다. 그런데 과연 이 모든 노력은 특정한 아이들에게만 효과가 있는 것일까.


초등 고학년이 되면서 우리 아들도 학원에 다니게 되었다.

그런데 결과는 처참했다. 학원에 길들여지지 않았던 우리 아들은 갈 학원이 없었다. 이유는 맞는 레벨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름있는 국영수 대형 학원에 보내고 싶었지만, 우리 아이는 소그룹 레슨이 성향이 맞는 아이라는 핑계를 대며 동네 보습학원에 보내야 했다. 유명한 대형 학원들은 모두 레벨테스트를 요구했고 내 아들은 몇 번 시험을 보더니 레벨테스트마저 거부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해외에서 살기도 했고, 한 달 살기도 다녀왔고 투자한 돈이 얼만데 다른 과목은 몰라도 왜 영어조차도 못하는 것인지. 그러면서도 우리는 희망을 놓지 않았다. 단편적인 시험 결과로는 나오지 않지만 내 아이가 보고 듣고 느낀 모든 것들이 나중에 살아가는 순간순간 다 빛을 발하며 나올 거라고.


그런데 그 빛은 아직 발하지 않고 있다.

국제 학교에 다니며 곧 10학년, IGCSE 과목 선정을 앞두고 있다. 본인이 좋아하는 과목 위주로 선택을 하면 되는 참 좋은 학제이지만, 딱히 좋아하는 과목도 잘하는 과목도 없는 아이들에겐 정말 어려운 과정이기도 하다. 지난주 남편과 한국 입시학원 선생님과 과목 선정 상담을 마치고 터덜터덜 걸으며 예전보다 더 두터워진 동지애를 느꼈다. 미우나 고우나 우리 아들인 것을. (공부를 못해도 이렇게 못할 줄은 몰랐지만) 우리 아들이라는 교집합을 공유한 우리 부부는 이 아이를 대학 진학 시까지 어찌 이끌어줘야 할지 머릿속에 아들 생각으로 생각주머니가 가득 찬 동지였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공부 공부하는 부모가 되지 않겠다고 했던 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내 아들의 성적은 중간 이상일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 때문이었다. 이제 곧 입시가 닥친 현실에서 나는 후회한다. 학원이 널려있는 서울에 살며 우리는 그동안 왜 학원에 보내지 않았던가. 5~6세부터 바짝 영어유치원도 보내고 수학도 선행을 바짝하며 학원에 보냈으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우리 아들은 지금 다른 모습일까. 결국 나는 내가 선택하지 않은 옵션 B에 아쉬워하며 손가락질했던 한국의 사교육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타임머신을 타고 2009년 아들이 태어난 날로 돌아간다면, 난 과연 옵션 B를 선택할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