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 자신을 알라구요?
나는 98학년도 대학수학능력 시험을 치뤘다.
그때 기억에 전 해인 97년도 수능시험의 난이도가 극악의 불수능이었다면 98년도는 그나마 난이도가 평이했던 기억이 있다. 운이 좋았던 건지 시험이 쉬웠던 건지, 전날 꿈이 길몽이었던 건지, 아무튼 나는 시험점수가 평소보다 30~40점 높게 나왔다. 평균이 전체적으로 오른거라면 그닥 기뻐할 일도 아니었겠지만, 조상이 도운덕인지 점수가 평균치 보다도 더 높게 나왔다. 너무 기뻤다. 서울의 상위권 대학은 어렵겠지만 그래도 대관령을 훌쩍 넘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 내 맘은 이미 서울 대학생이 되어 있었다.
나는 서점에서 대학 입시 길잡이 책을 샀다.
ㄱ부터 ㅎ까지 그 해 전국 모든 대학의 입시요강과 커트라인이 적혀있는 대학 입시 백과사전 같은 책이었다. 몇번을 읽고 또 읽고 그리고 드디어 고3 담임선생님과 진학 상담을 하러갔다. 평소 내 실력이라면 아슬아슬한 대학, 그리고 조금 더 과감하게 훌쩍 높은 대학 그리고 안정권의 대학 이렇게 몇몇 대학의 이름을 추려 메모지에 잘 적어갔다. 지금의 내 나이, 40대의 역사선생님이었던 담임선생님은 나의 들뜬 기분과는 다르게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고 얼굴도 굳어 있었다. 이상하리만치 나는 그 날의 날씨, 교무실의 분위기, 선생님 표정 모든것이 생생히 기억난다. 그날을 색으로 표현하자면 탁한 자주빛. 무겁고 답답하고 텁텁했던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다. 평소보다 높은 수능점수 성적표와 내가 원하는 대학을 말씀드리는 순간, 미간을 찌푸리며 선생님이 꺼낸 한마디는,
선생님 : 물건을 훔치는 것만이 도둑이 아니야.
순간 모든것이 정지되었다. 내 눈도 머리도 숨도...
눈을 깜빡일 용기조차 없었다. 나는 너무 창피했고 내가 도둑이 된 것 마냥 부끄러웠다. 컨닝을 한 것도 아니고 유출된 시험지 문제를 본 것도 아닌데 내가 왜 부끄러워 했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바보같이 순진했고 세상에 그런 등신이 없다. 고3 우리 친구들은 수능시험이 끝남과 동시에 고삐 풀린 망아지들처럼 들떠 있었다. 귀부터 뚫고 귀걸이를 하고 온 친구, 화장을 하고 온 친구, 선물받은 겨울 외투로 한껏 어른인 척 멋을 내고 온 친구. 그야말로 수능 후 교실은 축제분위기였다. 반면 담임 선생님은 벌써 대학간거냐며 귀뚫은 친구의 귀가 새빨개질만큼 무안하게 혼을 내셨고 우리는 바로 주눅이 들어버렸다.
어렸을 때 나는 선생님과 부모님을 비롯 어른들을 공경했고 존경했다. 그렇게 배워 온 그 때의 나는, “네 알겠습니다.” 하곤 교무실을 나섰고 과감히 원서를 쓰지 못했다. 과감은 커녕 선생님의 그 한마디는 니 주제를 알라는 따끔한 메세지로 귀에 박혀 아슬아슬 한 대학도 아닌 안정권으로 지원했다. 나는 서울 소재 대학의 한 경기도 캠퍼스에 진학했고 내가 원한 완벽한 상경을 성공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과 자격지심 또한 있었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내 선택과 지금의 내 모습에 후회하거나 원망하지 않는다.
그저 살아가며 문득문득 의문이 들 뿐이다.
왜 그때 선생님은 잘 나온 나의 점수에 함께 안도의 숨과 희망을 품고 축하해 주지 않았을까. 왜 기쁨으로 격려해 주지 않았을까. 왜 나는 잘 나온 점수에 도둑이 된 마냥 수치심과 부끄러움을 느껴야 했을까. 이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저 티미하게 순응했던 내가 미울뿐이다. 그래서 나는 가끔 나에게 할말은 해야 한다며 말대꾸하는 아들이 밉지만은 않은가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