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엔 거의 모든 가게가 쉰다. 거리 테이블을 다 접어 넣으니 휑한 골목을 서성이니, 유일하게 문 열린 레스토랑의 서버가 나와서 아는 척을 해준다.
[이 레스토랑도 레모네이드를 파는데 그건 어때?]
그의 추천으로 '레모네이드 꼰 이에르바 부에노'를 주문했다. 민트 맛이 나는 상큼한 허브를 초록 레몬과 갈아낸 음료다. (어떤 나라에서는 이에르바 부에노가 마리와나를 뜻하기도 한다고 사전이 알려준다.) 청량하고 상큼하다.
앉아서 레모네이드를 그림으로 그리고 있으니, 그가 서빙을 하는 틈틈이 그림이 어느 정도 그려졌는지 확인하러 왔고, 때론 옆에 서서 말을 걸었다.
다음 날, 다른 카페에서 숙제를 하다가 사복을 입은 그가 밖으로 지나가길래 불러 세웠다. 어제는 셔츠에 긴바지, 허리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는데 오늘은 민소매에 반바지, 모자를 쓰고 있어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오스카, 오늘 일 안 해?]
[응 오늘은 일찍 끝났어.]
[그래? 그럼 나랑 오후에 놀자.]
오스카와 나는 버스를 타고 아주 작고 오래된 식당들이 모여있는 먹자골목에 갔다. 초저녁이라 식당은 안팎으로 북적북적했다. 우리는 노상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분데렐라(크리스마스 빵)와 초리소(순대같은 소세지), 살치쵸(얇게 저민 햄), 긴 삼겹살을 10센티 두께로 두껍게 썰어 튀긴 요리를 시켰다. 바깥에 앉아서 먹으니 개, 비둘기, 잡화상, 아기를 안고 구걸을 하는 부부들이 우리를 가만두지 않고 들락거렸다.
오스카는 부모님과 함께 호스텔 뒷골목에 산다. 미국에 10년 동안 살아 영어를 잘했다. 왜 회사에 다니지 않냐고 물으니, 여기서는 일을 하고 싶지 않다고 한다. 미국에서와 같은 일을 해도, 여기서는 벌이가 너무 적으니까 성에 차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 왜 돌아왔어?]
[나도 몰라. 가족이 너무 그리워져서 그랬지. 뭔가 한계에 부딪혔어. 나는 학교 다니는 게 너무 싫어서 스스로 필요한 것을 찾아 공부했어. 10년 동안 여기저기서 일하면서 배우고,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다가 이곳에 돌아왔지. 그런데 여기 사람들은 삶과, 가치관이 나와 너무 달라. 다들 나를 미쳤다고 한다니까.]
오스카는 액세서리 디자인을 독학하며, 돈벌이로 서빙을 했다.
그의 말에 공감했다. 나는 '내가 관심 있는 것'을 '내가 공부하고 싶을 때' 배우고 싶었다. 8시부터 엉덩이를 붙이고 남이 짠 스케줄 따라 듣는 수업이, 답답한 제도로 묶여있는 학교가 싫었다. 방과 후 수업이나 글짓기 과외를 더 좋아했고, 참여형 수업 -토론이라던가, 발표라던가-때 열정적이었다. 나는 다양하게 배우고 싶고 잘하고 싶은 게 많은 아이, 호기심이 많고 관찰력이 좋은 아이였다.
사실 어릴 때부터 이런 나의 특징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이런 기질이 장점이 된다는 걸 몰랐을 뿐이다. 앞에 나서면 미움을 산다는 사실과 함께, 조용히 참는 방법을 오랜 기간 몸에 익혔다.
그에게 나의 다음 일정이 북쪽 산타마리타Santa marita에 가서 스쿠버 다이빙을 배우는 거라고 했더니, 산타 마리타 대신 그 옆의 작은 도시, '타강가 Taganga'로 가보라고 한다. 그의 어릴 적 친구였던 산티아고가 그곳에서 다이빙 사업을 한다면서. 다음날 그는 산티아고의 연락처와 비용을 메시지에 남겨주었다.
나는 타강가의 산티아고에게 미리 인사를 보냈다.
왼쪽부터 호스텔친구들- 오스카- 나- 카탈리나
왼쪽부터 호스텔친구들- 오스카- 나- 카탈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