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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마님 Jun 26. 2022

인류세가 지나면 지구는 이런 모습이 아닐까

콜롬비아 북부- 타이로나 국립공원에서의 1박

December 10-11, 2015 


전혀 예상치 못했던 타이로나 국립공원에서의 1박.

민카에서 만난 알렉스의 권유로 타이로나 국립공원에 들렀다가 타강가로 가기로 했다. 캐리비안 비치가 예쁘다고 하고, 마침 수영복도 있어서 따라나섰다. 버스를 타고 국립공원 입구에서 내리면, 그때부터 2시간 트래킹을 한다. 


트레킹 중에 자기 몸만 한 캠핑 배낭을 멘 브라이언을 만났다. 그는 두 지팡이에 의지해 한 걸음씩 힘겹게 발걸음을 옮겼다. 무릎이 안 좋아서 천천히 걷고 있다고 했다. 국립공원이라 트래킹의 절반은 데크와 계단이어서 길이 험난하거나 길을 잃을 가능성은 적었다. 


쉼터에선 원주민 아이들이 오렌지를 수레에 가득 담고 바로 주스를 짜주는 장사를 하고 있었다. 꼬마 아이들이 니하오, 해서 안니엉이라고 알려줬더니 해맑게 웃으며 따라 한다. 아기 다람쥐를 키우고 있다며 보자기에 싸서 매달아 놓은 다람쥐를 보여줬다. 다람쥐는 도망가지 않고 내 손을 타고 모자 위에 앉았다.

 

운 좋게, 무리를 이끄는 대장 원숭이를 만났다. 이곳 원주민들처럼 흰 모자를 쓴 머리가 너무 귀엽다. 


안개가 자욱한 트래킹 내리막이 나오더니 갑자기 모래사장과 성난 바다가 등장했다. 내 앞으로는 멀리 수평선과 높은 파도뿐, 갈매기 한 마리, 섬 하나 없다. 찢어진 빨간 깃발들만이 해변 모래에 꽂혀 펄럭였다. 파도가 으르렁 소리와 함께 부서졌다. 이곳이 세상의 끝인가 싶은 어마 무시한 바다. 

[인류세가 지나면 지구는 이런 모습이 아닐까.]


당일 타강가로 돌아가야 했던 알렉스와는 여기서 헤어졌다. 이곳은 첫 번째 해변으로, 우리가 예상한 캐리비안 비치는 2시간을 더 걸어야 한다고 했다. 캐리비안 비치가 궁금했던 나는, 계속 가보기로 한다. 브라이언과 함께 부지런히 걸어 캠핑장에 도착했다.


당일치기를 생각하고 갔기 때문에 옷도 돈도 씻을 것도 없었는데... 캠핑도구를 제 몸만큼 싸들고 온 브라이언이 빌려준다고 한다. 캠핑장엔 다행히 숙소도 있어서, 2층 침대 중 한 칸을 빌렸다. 브라이언이 친 형광색 텐트 옆엔 캐나다 남자애 둘이 요리를 하고 있었는데, 옆에 기웃거리면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같이 식사를... 브라이언이 합세해 넷이 도란도란 저녁 시간을 보냈다. 


이제 난 자야겠어, 하고 방에 들어왔는데, 휴대폰이 없다. 등골이 바짝 서서 아직 모여있는 애들한테 달려갔다. 각자 랜턴을 켜고 캠핑장 바닥을 샅샅이 뒤졌다. 도둑맞은 걸까? 떨어뜨린 걸까? 이제 한국에 어떻게 연락하지? 포기하려다가 매점에 가서 물어보겠다고 했다. 브라이언이 의아해하며 매점에 그게 있을 리가 있냐고 반문한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매점 창문을 두드렸다. [아저씨, 정말 죄송한데요, 핸드폰을 잃어버렸는데...] 아저씨는 나를 위아래 훑어보더니 창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드르륵, 창문이 열리고 내 핸드폰을 보여준다. 이것은 금도끼 은도끼 남미판인가!!! 이것이 제 휴대폰이 맞습니다! 브라이언이 이건 말도 안 돼!라고 외쳤다. 


다음 날, 캠핑장에서 만난 북미 친구들이 끓여준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유럽인 여자애가 말을 건다. 

[너 한국인이니?] 

[어떻게 알았어?] 

[잠깐 기다려] 

그리곤 모델 같은 유럽 남자를 데리고 왔다. 


그 모델 같은 벨기에 남자는 어젯밤 화장실 앞에서 내 휴대폰을 발견했다. 배경화면을 보니 알파벳이 꼭 한국어 같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습득한 내 휴대폰을 매점에 맡겼다. 매점 아저씨에게 [한국인이 와서 휴대폰을 찾으면 전해주라] 고 했다고 한다. 


뭐?! 이 부분에서 모두가 기함했다. (이제 이 이야기를 듣는 사람은 아침에 도착한 미국인 케빈까지 7명으로 늘었다)


[나 그거 어제 가서 찾아왔어!] 


뭐?!!

그들은 매점 아저씨가 그 비싼 삼성 핸드폰을 슬쩍하지 않고, 한국인이 왔을 때 아주 순순히 내준 부분에서 다시 한번 놀랐다. 브라이언이 한 마디 보탠다. 

[난 물건을 잃어버리고 그게 매점에 맡겨져 있을 거라고 생각한 에비도 대단한 것 같아.]


그렇게 휴대폰 소동으로 만난 7인은 캐리비안 비치로 함께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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