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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에서 밥 먹고 싶어요

K며느리의 로또 당첨보다 어려운 바람

by 진아

드디어 글쓰기타임이다. 행복해라.

시댁에서 강제적(?) 의무를 다하고 전역했다. 하루쯤 외식으로 끝내면 안 되나. 엄니(시어머님)를 좋아하고 따르지만 폭염이 기승부릴 땐 식당에 가고 싶다.


조선시대 유교가 철칙인 시가(媤家)는 상다리 부러지는 수제상차림을 선호한다. 간단하게 하고 싶다. 제발. 로또 당첨보다 어려운 바람인가.

이번 엄니생신도 예외는 없었다. 불 앞에서 3시간째 비지땀이다. 6가지 모둠전은 넘지 못할 산처럼 정상이 아득하다. 그만하고 싶다고 투덜거리다 이제나저제나 언제 다하나 마음이 조급해졌다. 주어진 미션을 끝내야 고을 원님을 만날 수 있는 콩쥐처럼, 무도회에 참석할 수 있는 신데렐라처럼 을 동동 굴렸다.

할당량보다 몇 배는 많은 음식을 완성하면 데드라인에 늦지 않게 달려야 한다. 시댁이라는 성에 무사히 도착해야 한다.


나는 콩쥐도 신데렐라도 되고 싶지 않았다. 그저 주말은 한량이고 싶었다. 꿈과 현실의 간극은 멀고도 깊구나.

투덜대면서도 요리 몰입도는 최고다. 애호박전 청고추, 홍고추 데코레이션에 심혈을 기울인다. 별 다섯 개 레스토랑 셰프에 빙의한다.


별다섯개(?) 모듬전

"아, 다했다."


온몸이 끈적해지고 손발이 후들거릴 때쯤 음식이 완성되었다. 산더미처럼 쌓인 전을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 어느새 폰을 들이대고 인증샷까지 찍고 있다. 나도 모르게 빠져들어 행복해하고 있다.


반나절동안 기름냄새를 마셨더니 허기가 져도 입맛이 없었다. 수박과 오이로 최소한의 당과 수분만 섭취했다.

해가 떠서 시작한 미션수행은 달이 떠서야 마무리 되었다. 무사귀환하니 밤 11시다. 금의환향한 선비처럼 감격에 젖었다.


고요함을 벗 삼아 이른 아침을 맞이했다. 모두 잠든 새벽, 홀로 활자를 새기는 고고함이 좋다. 지금 이 순간을 위해 흘린 땀방울은 아깝지 않다.

두 에너자이저는 아직 꿈나라다. 주말이면 평소보다 1~2시간 이른 기상을 하던 아이들인데. 신나게 뛰어놀더니 피곤했나 보다.

아이들 숨소리와 작은 뒤척임이 BGM처럼 린다. 지금 여기는 글쓰기 맛집, 천상 카페다.



※주의사항※

-시댁 욕 절대 아님

-시댁식구 구독 금지 (특히, 버럭씨 남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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