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많은 에너자이저 1(큰아이)이 아침부터 시무룩하다. 무슨 일이 있었나? 누가 자존심을 건드렸나? 복잡한 마음을 숨기고 에너자이저 1(큰아이)의 장점을 떠올렸다. 입력도 하지 않고 갑자기 출력을 하려니 버퍼링이 생긴다. 모성은 없는 입출력도 짜낸다.
"우리 아들은 시낭송도 잘하고 오목도 잘하지. 마음도 따뜻하잖아."
"그것 말고. 진짜 나만 잘하는 게 없잖아."
평소 아이들 칭찬에 인색했나. 축 쳐진 아이 뒷모습이 마음에 걸렸다. 어떻게 다독여 줄까 고민했다. 활자로 보여주는 게 가장 효과적일 것 같았다. 오늘해야 할 목록에 '아이 장점 적기'를 추가했다.
노트를 꺼내 아이 장점을 적기 시작했다. 노트줄 개수대로 적으니 19개가 나왔다. 에너자이저 1(큰아이)만 적어주면 에너자이저 2(작은아이)가 서운할 것 같아 에너자이저 2의 장점도 적었다. 개수가 차이 나면 섭섭하니까 똑같이 19개로 맞췄다.
노트 3장에 휘갈긴 '사랑의 총알'
두 에너자이저의 장점을 빼곡히 적고 붙일 장소를 물색했다. 자주 가고 멍 때리는 시간이 많은 곳이 어딜까. 화장실이 1순위였으나 물에 젖거나 예기치 못한 이물질(?)로 훼손이 우려됐다. 2순위는 냉장고 문. 물이나 이물질이 묻을 염려도 없고 아이들이 가장 많이 여는 문이니 딱이다.
붙여놓고 보니 버럭씨(남편) 장점도 적어야 될 것 같다.노트를 한 장 더 찢었다. 적을 게 없을까 봐 염려했는데(?) 글이 쭉쭉 이어져다행이다.버럭씨장점도 아이들과 똑같이 19개로 맞췄다.
조금 수고로운 절차를 거쳤지만 뾰족한 마음은 솜사탕이 되었다. 가족에게 당연하게 여기던 감사와 사랑이 종이를 가득 채웠다.
사랑하는 가족이지만 칭찬에 인색할 때도 있었고 감사함을 잊기도 했다. 적당한 간격과 선을 지켜야 하는데 남보다 쉽게 상처줄 때도 있었다.
까칠한 마음이 가족을 향할 때가 있다. 분노와 스트레스는 밖에서 받고 엄한 가족은 가까운 존재라는 이유로 화의 타깃이 되었다.
감사의 마음으로 사랑의 총알을 장착한다. 잊고 있던 나의 사람들에게 사랑의 총알을 휘갈긴다. 마음을 종이에 풀어놓았더니 잊고 있던 행복이 찾아온다. 알아서 냉큼 가슴에 들어온다.
뾰족한 가시는 뭉툭하게 갈아서 연필로 만들까. 그런 다음 하나하나 정성 들여 사랑의 조각을 모으자. 깨진 것, 찢어진 것이라도 좋아. 모은 사랑을 연필로 적어보자.
가끔은 가족의 마음도 내 사랑도 잘 있는지 안부를 묻고 싶다. 별 일 없는 날에도 가끔은 잘 있나들여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