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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Jul 15. 2024

7천 원에 속 쓰린 나이

배보다 배꼽

2주 전에 주문한 생수가 여태  도착하지 않았다.

'왜 이리 오래 걸릴까. 보통 3~4일 안에 도착했는데.'

몇 번 기다리다 기억 속에 가물가물해질 해질 무렵 전화가 걸려 왔다. 배송지가 10년 전 주소로 기입되어 있어 그 주소지로 생수가 배달됐단다.

"모든 귀책사유고객님에게 있으므로 반품배송비를 지불하셔야 합니다."

 상담직원은 이 모든 사태의 원흉은 너에게 있다며 '귀책사유'와 '고객님'에 꾹꾹 힘주어 말했다.

10년 전 주소지로 생수를 찾으러 가기엔 멀고. 끙. 업체에선 현 주소지로 다시 배송하려면 1만 4천 원을 추가입금하라고 한다. 생수값이 3만 원인데 추가로 지출하기엔 출혈이 크다. 취소하겠다고 하니 그래도 배송비를 7천 원 부담해야 된다고 한다. 하아. 한 번씩 이용하던 업체라서 주소지 재확인은 생각하지도 않았다. 당연히 현 주소지가 기입되어 있을 거라 생각하고 결제버튼을 눌렀던 것이다. 이런 낭패가 있나.

그래, 모든 잘못은 한 번 더 주소를 확인하지 않은 나에게 있다. 마지막까지! 최종적으로!! 끝까지!!! 한 번 더!!!! 주소를 확인했어야 했다. 자책하며 속 끓이다 아무 잘못 없는, 회사가 주는 월급 따박따박 받고 성실히 일하는 상담직원에게 불길이 치솟았다. 삐뽀삐뽀, 비상사태!! 엄한데 화풀이하려는 순간, 간신히 불길을 진압했다. 이성의 끈을 잡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럼, 취소해 주세요..."

짐승이 될 뻔하다가 겨우 인간으로 돌아왔다. 쓰린 마음 붙들고 배송료 입금을 마무리지었다. 숨만 쉬어도 통장잔고가 스쳐 지나간다. 오늘은 숨도 제대로 쉬지 않았는데 스쳐 지나가는구나. 다행히 요즘은 뒤돌아 서면 잊어버린다. 나이 들어 좋은 점도 있구나 싶어 툭 털고 일어난다. (그래도 여전히 속은 쓰리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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