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라이킷 17 댓글 2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팔공산

[八公山]

by 장한 Mar 04. 2025
아래로

#4 팔공산

'능선이 아름다운 산'

브런치 글 이미지 1


산행지 : 팔공산(대구)

산행일 : 2021.09.04(토)

산행코스 : 한티휴게소 - 삼갈래봉(834m) - 파계봉(991m) - 가마바위봉(1,054m) - 서봉(1,150m) - 비로봉(정상 1,193m) - 동봉(1,167m) - 염불봉(1,036m) - 신령봉(997m) - 삿갓봉(931m) - 은해봉(882m) - 노적봉(887m) - 관봉(갓바위 852m) - 갓바위지구 (총거리 대략 17km)

난이도 : 다소 어려움

브런치 글 이미지 2

코로나19 확산 초기에 한 장당 1~2백 원 하던 마스크가 최고 4천 원까지 올랐던 때가 있었다. 이후에 가격이 2천 원 안팎으로 되자 '엄청 싸졌다'며 구매했었다. 사실 10배 가깝게 비싼 가격이었지만 그때는 2천 원에 마스크를 구매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감사한 일이었다.


사람의 심리는 참 이상하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집합금지, 집합제한을 하자 밖으로 더 나서고 싶어졌다. 내향형인 편이라 평소 사람 만나는 걸 즐기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여행이냐 산이냐'를 고민하다 결정한 게 산이었다.


평소 산을 좋아하기는 했지만 일 때문에 자주 다니지 못했다. 코로나19 이후 산을 다니기로 결심하면서 전에는 생각하지도 않았던 지리산종주가 하고 싶어졌다. 지금도 도전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코로나 때는 화대종주(화엄사에서 대원사까지) 대략 50km나 되는 거리를 하루에 도전하는 사람이 꽤 많았다. 대피소 이용 제한 때문에 종주를 하려면 어쩔 수 없기도 했다. 지리산 종주를 하루에 하는 건 엄두가 나지 않는다. 지리산 종주에 대해 알아보던 중 지리산종주 준비산행으로 팔공산종주를 추천하는 글을 봤다. 거리도 비슷하고, 중간에 하산할 수 있는 코스가 많아 힘들면 하산할 수도 있으니 무리한 산행을 안 해도 된다.  지리산에 도전하기 전에 팔공산을 한번 가보기로 했다.


팔공산 종주라고 하면 가팔환초(가산-팔공산-환성산-초례봉) 총 46Km를 산행하는 글이 많다. 가팔환초를 해야 어디 가서 '팔공산 종주했다' 말하는 분위기다. '뱁새가 황새 쫓아가다 가랑이 찢어진다'는 속담이 괜히 있을까. 섣불리 나설 거리가 아니라고 생각해 우선 팔공산 종주(대략 18km)만 해보자 마음먹었다.


팔공산은 대구시, 영천시, 경산시, 칠곡군에 걸쳐있는 1,193m 높이의 산으로 2023년 12월 31일에 제23호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팔공산을 처음 갔을 때는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기 전이었다.


한티재에서 가마바위봉까지 (이정표가 거의 없는 등산로)


집에서 새벽 2시에 출발. 6시 넘어서 한티휴게소에 도착했다. 잠을 제대로 못 자니 시작하기 전부터 피곤했다. 잠깐 쉬다가 간단히 정비를 한 후에 출발했다. 한티휴게소 고도가 700m 정도라고 한다. 출발하는 고도가 높으니 거리가 긴 종주 시작지로 좋았다.


이른 아침 한티휴게소에는 사람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사람이 없으니 조금 으스스하다.

한티휴게소한티휴게소

 

한티재 입구에는 '팔공산 소원길 생태탐방로 조성공사 시행으로 일부 구간 부분 통제' 안내가 있었다.  

한티재 등산로 입구한티재 등산로 입구


한티재부터 첫 봉인 삼갈래 봉까지 완만한 오르막으로 등산로는 이어진다. 아침 해가 어스름히 드는 길을 홀로 걷는 게 무섭기보다는 고요하고 좋았다.


첫 봉인 삼갈래봉에 도착했다.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이후에 추가 정비가 되었을지는 모르겠지만 팔공산은 조금 불친절했다. 산이 아니라 이정표가 불친절했다. 이정표가 의외로 없다. 팔공산종주를 하는 길이 복잡하지는 않아 꼭 필요하진 않다. 하지만 간간이 이정표가 있어서 정상까지 남은 거리라던가 지금 내가 가는 길이 맞는 길이라는 정보를 제공해 주면 더 좋았을 텐데. 팔공산은 이정표가 거의 없고 현재위치 표지판만 자주 나왔다.

삼갈래봉도 모르고 지나갔다. 드물게 나오는 이정표가 있어서 사진을 찍었는데 후기를 쓰려고 사진을 보다 누군가 분필로 적은 글씨를 보고 삼갈래봉임을 나중에 알았다.

삼갈래봉에 있는 이정표삼갈래봉에 있는 이정표


한티재에서 삼갈래봉까지 등산로가 조금 가팔랐다면, 삼갈래봉부터 시작되는 능선길은 적당한 경사와 등산로 중간중간 멋지게 자리 잡은 바위와 어우러진 걷기도 좋고 보기도 좋은 예쁜 길이다. 인적 없는 이른 아침 햇살이 내리쬐는 길은 신비로운 느낌마저 준다.

삼갈래봉부터 등산로는 걷기 좋은 길이다.삼갈래봉부터 등산로는 걷기 좋은 길이다.


파계봉(991.2m)에 도착했다. 파계봉 아래에는 파계사把溪寺의 명칭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파계사는 '계곡의 물줄기를 잡는다'라는 뜻을 지닌 절이다. 원래 절 주위에 아홉 갈래나 되는 물줄기가 흘렀는데, 땅의 기운이 흩어지는 것을 방지하려고 절 아래에 연못을 파고 물줄기를 한데 모아서 이름이 유래되었다 한다.

파계봉 정상석파계봉 정상석
파계봉에서 보이는 풍경파계봉에서 보이는 풍경


한티재에서 삼갈래봉, 파계봉 그리고 앞으로 가야 할 가마바위봉까지, 오솔길 같이 걷기 좋은 예쁜 길이다. 다만 풍경이 트이는 길은 아니다. 경사도 어느 정도 있다. 중간중간 로프 아니면 지나갈 수 없는 절벽 같은 길이 간간이 나오지만 대체로 너덜바위 구간도 없어 걷기에 좋다.

로프구간이 간간이 나오는데 꽤 가파른 편이다.로프구간이 간간이 나오는데 꽤 가파른 편이다.



처음 도락산에서 백대명산 인증을 시작 한 뒤로 조령산, 주흘산, 두타산 그리고 팔공산까지 날씨가 내내 흐렸다. 정말 구름을 몰고 다니는 것 같다. 이쯤 되면 날씨요정이 아니라 날씨요괴란 별명이 어울린다. 삼갈래봉을 갈 때만 해도 분명 해가 보였는데 거짓말같이 구름이 해를 가렸다.


팔공산 산행을 준비하면서 가장 기대한 구간이 가마바위봉에서 보는 톱날능선이었다. 거칠게 솟아오른 바위들이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 보이는 비로봉 풍경이 너무 멋졌다. '가마바위봉에서 일출을 보면 금상첨화겠다' 싶었다. 하지만 일출산행을 하기에는 너무 멀었다. 밤샘하다시피 출발해야만 가능하고, 새벽부터 홀로 하는 산행도 부담스러웠다. 더군다나 지금처럼 구름이 많으면 노력에 걸맞는 일출을 보기도 어렵다.


가마바위봉에 도착했다. 무겁게 드리워진 구름에 부끄러운 듯이 몸을 숨긴 팔공산이 야속했다.

가마바위봉에서 보는 대구 방향가마바위봉에서 보는 대구 방향
가마바위봉에서 보는 파계봉 방향가마바위봉에서 보는 파계봉 방향

가마바위봉에서 비로봉까지 (거칠고 불친절하지만 멋진 풍경)


'구름이 걷힐 때까지 기다릴까?' 고민했다.

정상에서 바로 하산할 계획이었다면 구름이 걷히기를 기다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갈 길이 멀었다. 마냥 기다릴 수는 없었다.

'조금 만 기다려보고 이동하자.'


가마바위봉에서 잠시 머물렀다. 주변을 둘러보니 구절초 군락도 보인다. 9월 중하순이면 구절초도 많이 핀다고 한다. 어느 잡지에선가 9월에 가기 좋은 산으로 팔공산을 선정했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구절초였다.

가마바위봉에서 보는 비로봉 방향, 바위틈으로 구절초 군락도 있다 (가운데)가마바위봉에서 보는 비로봉 방향, 바위틈으로 구절초 군락도 있다 (가운데)


구름이 지나갈까 싶어 잠시 머물렀지만 점점 더 짙어지기만 한다.

'오늘도 망했다...'

어쩔 수 없이 가마바위봉을 내려갔다. 내려가는 중에  잠시 구름이 걷힌다.

'조금만 더 기다릴걸~'

구름 사이로 살짝 보이는 비로봉(정상) 풍경구름 사이로 살짝 보이는 비로봉(정상) 풍경


그래도 이 정도면 나름 괜찮다. 곰탕(백색 국물처럼 뽀얀 안개 때문에 풍경이 안 보이는 상황으로 등산 용어로 쓰이는 표현)이 아닌 게 천만다행이다.

톱날능선을 벗어난 후부터 구름이 점점 걷히기 시작했다.  

톱날능선을 벗어나서 본 비로봉톱날능선을 벗어나서 본 비로봉


한티재에서 서봉까지 오는 동안 처음으로 데크로 정비된 길이 나왔다. 정비 중인지 군데군데 작업 중이었다. 데크로 정비된 길이 서봉을 둘러서 설치되어 있다. 사실 이때 여기가 서봉인 줄 몰랐다. 이정표를 못 보고 지나쳤는지도 모르겠다. 이정표가 많이 없었기에 있었다면 분명 봤을 텐데, 여기가 서봉이라는 이정표가 없었다. 지금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니 이정표가 있겠지, 만일 없다면 있어야 한다.

서봉 아래 데크길서봉 아래 데크길


서봉인 줄 모르고 지나쳤기에 서봉을 오르지는 못했다. 정비된 데크길에서 비로봉이 시원하게 보이는 지점에서 비로봉을 찍어 보았다.   

서봉에서 본 비로봉서봉에서 본 비로봉


비로봉 사진을 찍고 산행을 이어갔다. 서봉을 내려가다 등산객을 처음 만났다. 한티재에서 서봉까지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서봉을 오르는 데크 길서봉을 오르는 데크 길


서봉을 내려와 비로봉으로 향했다. 비로봉을 앞에 두고 등산로 찾기 조금 어려웠다. 비로봉으로 바로 오르는 듯 한 길이 보여 따라가 보면 철조망 울타리로 막혀있곤 했다. 역시 이정표가 별로 없다. 몇 군데를 찔러보듯 오르내리다가 하산하듯 돌아내려가니 정상으로 가는 이정표가 보인다. 서봉에서 바로 비로봉을 가려면 정상에 있는 방송탑을 통과해야 하니 길을 막고 우회시킨 모양이다.

비로봉 시설물비로봉 시설물


정상인 비로봉(1,192m)에 도착했다. 서봉까지 오는 동안 만난 사람이 한 명이었는데 비로봉에 오니 사람이 정말 많다.  정상 주변 시설물 사이로 올라야 하는데 왠지 눈치가 보인다. '여기 올라가도 되는 거야' 싶다. 많은 사람이 거침없이 오르니 덩달아 오르기는 했다.


비로봉에서 보이는 풍경은 시설물 때문에 많이 아쉽다. 정상에 군시설이나 방송시설이 있는 산들이 몇 군데 있다. 용문산(양평), 가야산(예산), 모악산(완주), 화악산(가평), 감악산(파주), 무등산(광주) 등. 이런 산들은 정상 풍경이 참 아쉽다. 그중에 화악산, 계룡산(공주), 무등산 같은 산은 최고 정상이 통제돼서 진입이 안 된다. 그나마 정상을 일부 개방해 준 것에 감사해야 하는 건지도 모른다.

비로봉 정상석비로봉 정상석

비로봉에서 관봉(갓바위)까지 (예쁘지만 융통성이 없는 길)


비로봉에 짧게 머물고 동봉으로 향했다.


동봉에 다다르자 석조약사여래입상이 나왔다. 화강암석에 조각된 석조약여래입상은 높이가 6m에 이른다. 1988년 대구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서봉에 비로봉을 오르면서 보지는 못했지만, 비로봉에서 서봉 방향으로는 마래약사여래좌상이 있다고 한다. 동봉에는 입상이 서봉 쪽으로는 좌상이 있다. '약사여래 藥師如來'는 중생질병을 고쳐주는 약사신앙의 대상이 되는 부처라 한다.


팔공산이 보유하고 있는 문화유산이 많은 점도 국립공원 지정에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팔공산은 국보 2점, 보물 25점, 문화자원 92점이 있다고 한다.

팔공산 동봉 석조약사여래입상팔공산 동봉 석조약사여래입상


팔공산 동봉에 도착했다. 서봉보다 동봉이 비로봉 시설물들이 적나라하게 보인다.

팔공산 동봉팔공산 동봉
동봉 이정표동봉 이정표


동봉 이정표 아래 한 명 정도 머물만한 공간이 있었다. 그늘도 적당해서 여기서 점심을 먹었다. 멋진 풍경을 보며 먹는 식사는 언제나 즐겁다.

브런치 글 이미지 23
동봉에서 보는 대구 방향동봉에서 보는 대구 방향

동봉에서부터 염불봉, 은해봉, 노적봉, 관봉(갓바위)을 거쳐  하산해야 한다.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았다. 동봉에서 갓바위까지는 서봉에 비해 이정표가 많다. 등산로도 훨씬 편안하다. 무엇보다 탁 트인 능선이 많았다. 갓바위까지 가는 동안 중간중간 나타나는 트인 지점에서 보는 팔공산은 매 순간순간 정말 멋졌다.


다만 이른 아침부터 잠을 설치고 시작한 산행이다 보니 조금씩 산행이 벅차기 시작했다.

  

염불봉에서 가야 할 길을 봤다. 저 멀리 은해봉 노적봉이 보였다.

염불봉에서 보는 풍경.  사진 중앙에 있는 봉이 노적봉염불봉에서 보는 풍경.  사진 중앙에 있는 봉이 노적봉


염불봉을 지나 조금 가다 보니 팔각정으로 지어진 쉼터가 나왔다. 쉼터 주변은 정비 중인 모양이다. 이런저런 공사자재가 바닥에 쌓여 있었다.

염불봉을 지나면 나오는 쉼터염불봉을 지나면 나오는 쉼터
쉼터에서 보이는 풍경쉼터에서 보이는 풍경


더위를 피할 겸 쉼터에 올라 잠시 쉬었다.  쉼터에는 친구로 보이는 두 명의 등산객이 먼저 쉬고 있었다.  쉼터에서 보이는 경치가 시원스러워 경치를 보며 쉬기 좋았다.

"어디서 오셨나요?"

먼저 쉬고 있던 분들 중 한 분이 물어보신다.

"춘천에서 왔습니다."

"어이쿠야 멀리서 오셨네"

"두 분은 근처에서 오신 건가요?"

"나는 대구 살고, 이 친군 딴 곳 사는데 오늘 같이 올랐어요"

낯가림이 심한 편이라 산에서 사람을 만나도 가벼운 인사 외에는 말을 안 하는 편인데, 오늘은 새벽 2시에 집을 나와 거의 11시간을 말없이 걷다 보니 대화가 하고 싶었나 보다. 이쯤이면 보통 대화를 끝내려고 '즐거운 산행 하세요'라며 마무리할 텐데 이야기가 더 하고 싶었다.

뜬금없이 지도에서 대구와 포항이 가까웠다는 게 생각났다.

"그런데 혹시 여기서 바다가 안 보이나요? 포항하고 가깝던데" 물었다.

어설픈 질문이다. 바다가 보일리가. 이건 '한라산 꼭대기에서 공을 던지면 바다에 빠지나요?' 하는 수준이다.

어이없는 듯 웃으며 대답하신다.

"대구가 완전 내륙인데 바다가 안 보이죠. 포항은 한참 가야 나오는데  ㅎㅎㅎ"

"아, 그런가요"

멋쩍은 웃음으로 분위기를 덮어본다. 몇 마디 더 오고 갔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조금 더 쉬고 싶었지만 창피해서 다 쉰 듯 짐을 꾸리고 일어났다.

"그럼 즐거운 산행 하세요"

예정된 멘트를 하고 자리를 일어났다.

바보 같은 질문을 할 수도 있는 거지 그게 창피하다고 자리를 일어나는 내가 또 바보 같다.


쉼터에서 1시간 정도를 더 가니 삿갓봉이 나왔다. 발음이 비슷해서 갓바위(관봉)인 줄 알고 좋아했는데 아니었다.

삿갓봉삿갓봉


삿갓봉에서 지나온 길이 한눈에 다 보인다. '아 진짜 멀리도 왔다' 싶다. 저 멀리 솟아오른 안테나 탑이 있는 곳이 비로봉일 텐데.

삿갓봉에서 보는 팔공산삿갓봉에서 보는 팔공산


삿갓봉에서 40분 정도 더 걸어 은해봉에 도착했다.

산행이 벅차지기 시작했다. 잠을 못 자기도 했고 장거리 산행을 하기에 체력도 부족했지만, 무엇보다 등산로가 '융통성'이 없었다.

"하... 정말 융통성이라고는 1도 없네" 짜증 섞인 혼잣말이 쏟아져 나왔다.

동봉에서 갓바위까지 등산로는 고개를 우회하지 않고 넘어간다. 이름도 없고 올라도 딱히 전망이 보이지도 않는 봉이라면 오르지 않는 우회길을 만들어도 좋을 텐데 그런 융통성이 없었다. 오롯이 고개를 오르고 내리며 넘어가니 체력 소모가 컸다.

브런치 글 이미지 30
은해봉은해봉


은해봉 이후로는 정말 걷기가 힘들었다. 몸이 힘드니 풍경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융통성 없는 팔공산 등산로는 꾸역꾸역 자잘한 봉을 오르고 내리게 했다.

브런치 글 이미지 32


노적봉에 도착했다. 노적봉 아래 마당같이 넓은 바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잠이 쏟아졌다. 사실 체력부족 보다 수면부족이 더 큰 문제였다. 맞은편에 아름답게 자리 잡은 선본사를 멍하니 바라보며 꽤 오래 쉬었다.

노적봉에서 보는 선본사노적봉에서 보는 선본사


한참을 쉬다 다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내려가는 중간에 돌아보니 노적봉이 의젓하게 손을 들어 인사해 주는 것 같다. '다음에 또 보자' 하는 것 같다.

노적봉노적봉


작은 봉을 몇 개 더 넘어 관봉(갓바위)에 도착했다. 암릉사이로 데크길이 나오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갓바위가 나온다.

브런치 글 이미지 35


관봉(850m) 정상에 있는 갓바위는 불상 머리 위에 넓적한 바위를 갓처럼 얹은 모습을 하고 있다. 정성껏 빌면 한 가지 소원은 들어준다는 소문이 있는데  학사모처럼 생긴 갓을 쓴 모양 때문인지 수험생을 위한 기도를 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동봉에서 오는 길 이정표에도 관봉이 아니라 갓바위로 적혀있다. 애초에 관봉이란 이름도 갓바위 때문에 바뀌었다고 한다. 갓바위는 1965년에 보물 제431호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관봉 석조여래좌상. 팔공산 갓바위로 더 유명하다.관봉 석조여래좌상. 팔공산 갓바위로 더 유명하다.

석조여래좌상 표정은 심드렁해 보인다. 비우기 위함이 아니라 채우기 위한 간절함을 계속 들어서 일까.


브런치 글 이미지 37

드디어 하산 시작이다.
스마트폰 배터리가 방전 직전이다. 하산 후에 저녁 약속을 잡아놓아서 서둘러 내려갔다.  갓바위는 올라오는 것도 내려가는 것도 고행이다 싶을 정도로 경사가 가파르다. 설악산 오색구간을 연상시키는 가파른 계단을 50여 분을 내려가서 산행을 마쳤다.






작가의 이전글 주흘산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