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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경선 Sep 21. 2024

나비처럼 날아서 -18

18.

의외로 SNS 분석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틀 뒤 전수사관과 이실무관이 준혁의 자리로 왔다. 

“박혜진 사건 SNS 분석결과 말씀드릴까 합니다.” 전수사관이 큰 틀에서 요약하면 이실무관이 보충하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박혜진은 블로그와 페이스북 활동을 꾸준히 했고 사망 후 계정이 정리되지 않아 파악하기 쉬웠다. 이경수는 SNS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아 소속팀, 팬 카페 등의 일정, 동정을 보고 판단했다.

“이경수와 박혜진의 동선이 일치하는 지점은 두 곳으로 확인되었습니다. 하나는 사건 발생 전년도 7월 중순 인천 문학 야구장입니다. 이경수가 문학에서 경기를 하던 날 박혜진도 일행과 함께 야구장에 갔습니다. 

또 하나는 한달 뒤인 8월 중순 부산입니다. 박혜진이 부산 출장 가서 해운대 아침 바다 사진을 올려 놓습니다. 이경수도 사직구장 경기가 있어서 부산에 내려가 있었고요.” 이실무관이 빠르게 말을 해 나갔다.      

“9년전 일이라 찾기 쉽지 않았을 텐데 용케 찾았네요. 인천 문학 야구장과 부산 출장지라. 장소가 너무 광범위한데요.”

“부산의 경우 해운대와 이경수 팀 숙소인 온천장 농심 호텔간 연관관계는 찾지 못했습니다. 문학 야구장은 특이 사항이 좀 있었습니다.” 전수사관 말이 끝나자 바로 이실무관이 이었다.

“박혜진 블로그에 문학 야구장 후기를 사진 위주로 남겼는데요. 스카이박스석을 베경으로 찍은 사진에 직장 동료가 나옵니다. 김주연이라고요. 김주연 블로그를 가봤더니 같은 날 이경수와 찍은 사진이 올라와 있었습니다. 싸인볼 사진과 함께요.” 

“그 말은 야구장에서 박혜진과 이경수가 만났다는 말이잖아요.”

“당연히 그렇다고 봐야죠. 아마 스카이박스석 예약도 이경수가 해 줬을 겁니다. 가격이 5,60 만원쯤 하는데다 인기가 많아 구하기 힘들거든요. 동료까지 데리고 갈 정도면 둘이 꽤 가까웠던 것 같은데요.” 

준혁과 전수사관은 듣기만 했고 이실무관은 계속 했다. “여기서 이상한 건 김주연이었습니다. 그날 이후 김주연 동선과 이경수 팀 일정이 5곳이나 겹칩니다. 김주연 블로그, 페이스북에서 확인한 겁니다. 우연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주로 야구장 인근 맛집이나 장소 관련 글이었거든요. 심지어 지방 야구장도 있었고요.”

“박혜진 직장동료가?” 준혁은 혼자 말인지 물어보는 말인지 모를 말을 했고 이실무관은 무시했다.

“잠실, 목동 각 한번, 인천 한번, 대전 한 번이고요. 멀리 부산 사직 야구장도 있네요.”

“친구 이름이 뭐라고 했죠? 직장 동료.” 준혁이 다급히 물었다.

김주연이라고 말하자 서랍을 열어 내사보고서를 집어 들었다. 빠르게 몇 장 넘기다가 원하는 걸 찾았는지 귀퉁이를 접고는 앞에 내밀었다. 

“여기 나오네요 김주연. 경찰의 박혜진 회사 탐문조사 때 김주연은 이경수와 만난적이 없다고 했어요. 박혜진을 통해서 이름만 들었지 직접 만난적은 없다고 진술했는데요.”

준혁은 짐작이나 한 듯 놀라지 않았고 오히려 담담했다. 사건에 접근하면 할수록 새로운 사실이 하나씩 튀어나오는 것이 못 마땅하지는 않았다. 타인이 해 놓은 결과물을 검증할 때 오류를 발견해야 편안해지는 본능 같은 것이었다.  

“그러네요. 왜 김주연이 거짓말을 했을까요? 7월이면 사건 발생 10개월 전인데요. 박혜진과 같이 문학 야구장가서 이경수와 사진도 찍어 놓고선. 그러고보니 이경수 경기장을 쫓아서 따라다닌 것 같은데요.” 전수사관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말을 했다. 

“김주연이라. 이름이 되게 낯익어요. 흔한 이름이라 그런가? 예전에 다른 사건 관계로 부딪친 적이 있었나? 한번 찾아봐야겠네요.”

준혁은 자리를 정리하고 킥스 시스템으로 들어갔다. 사건조회 메뉴로 가서 피의자 이름을 ‘김주연’으로 검색했다. 김주연이 피의자로 된 사건 10여개가 떴다. 박혜진 친구 김주연의 주민번호 앞자리와 비교해보니 8번째 사람이 같았다. 사건번호를 클릭해서 들어가보니 담당 공판검사가 <민준혁>이라고 되어 있었다.



검사실 문이 열리며 전수사관이 김주연을 데리고 들어왔다. 숏커트 머리, 옅은 코발트 블루의 실크 블라우스에 타이트한 미니 스커트 차림이었다. 화려함은 여전했다. 검사실 안에 있는 조그만 회의실로 안내했다. 의례적인 인사말이 끝나자 준혁이 짧게 찔렀다. 

“저 기억나시죠?” 

“네? 제가 어떻게 검사님을. 처음 뵙는 것 같은데요.”

“예전 중앙지검에서 피고로 재판을 받으셨잖아요. 제가 그 사건 담당 공판 검사였어요.”

3년전 서울중앙지검 공판 검사 시절이었다. 주연은 음주운전 인명 사고로 조사를 받는 도중 대마초 흡입사실이 적발되었다. 동승자는 외국계 투자자문 회사에 다니는 유부남이었다. 수사 검사의 기소 후 공소장이 공판 검사인 준혁에게 넘어왔다. 주연은 재판을 통해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다. 

“재판이라면... 아 그때 검사님.” 당황했는지 목소리가 흔들리며 억양이 불안했다.

“요즘은 음주운전 안 하시죠? 예전 다니던 회사 아직도 계세요?” 주도권이 준혁에게 넘어왔고 주연은 양처럼 온순하게 답을 할 준비가 된 듯했다. 

“당연히 안 하죠 음주운전. 대일기획은 그 사건이후 바로 관뒀고, 지금은 조그만 광고회사 다녀요.”

“결혼은요?” “작년에 했습니다.”

박혜진 사건에 대해 간략히 말을 주고받고는 본격적인 질문을 시작했다. 

“당시 경찰한테 박혜진 동창인 이경수를 잘 모른다고 진술하셨던데요. 박혜진한테 들어서 이름만 안다고 말씀하셨던 거 맞죠?”

“정확히 어떻게 말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기록에 그렇게 나와 있다면 맞겠죠.”

“이경수와는 개인적인 친분도 만남도 없었다. 이런 말이 되는 거네요?”

“맞습니다.” 지체없이 답을 했지만 왠지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저희 쪽에서 김주연씨 예전 블로그를 쭉 살펴봤습니다. 사건 발생 10개월 전에 박혜진과 같이 이경수 경기 관람하러 인천에 갔었던데요. 스카이박스석 안에서 이경수와 사진도 찍고요. 근데 왜 전혀 모른다고 하셨을까요?” 말 중간쯤부터 주연의 얼굴은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뭐 그거야.” 주연은 잠시 뜸을 들였고 준혁은 기다렸다.

“당시엔 진짜 겁이 났습니다. 친한 동료가 죽었는데 있는 그대로 말을 할 수가 없었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괜히 말했다가 말이 돌까 봐 저도 모르게.”

“말이 돌다뇨? 무슨 일이 있었길래 소문나는 게 두려웠단 말입니까? 문학야구장 이후 이경수 경기 있을 때 혼자 가서 응원도 하고 만나고 그랬죠? 블로그에 다 나오던데요. 이경수와 어떤 관계까지 갔습니까?”  

“...”

“김주연씨. 이제는 말 하셔야 합니다. 지금 바른대로 말하지 않으면 정식으로 소환 들어갑니다. 남편도 알게 되고 예전 음주운전 사건도 자연스럽게 알려지게 될텐데요. 사고 당시 동승자가 누군지 알려지면 난처해질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음주운전 사건을 남편한테 숨기고 있을 것이라고 넘겨 짚었다. 짐작은 맞았다. 주연은 한숨을 길게 쉬고 나더니 말을 시작했다. 

“그날 혜진이는 집에 급한 일이 생겨 중간에 먼저 갔어요. 혼자 남아 경기마저 보고 집에 가려는데 경수가 자리로 왔더라고요. 그래서 사진도 찍고 밖에 나가서 술도 마시면서 친해지게 됐습니다. 경수, 혜진이 본인들 말로 둘이 단순한 동창 사이라고 해서 거리낄 게 없었죠. 

어쨌거나 그 날 이후 연락 주고받으면서 많이 가까워졌어요. 경기장 근처로 가서 만나고, 시합 없는 날은 가끔 놀러 다니고 그랬습니다. 그러다 좋아하게 되었고 깊이 빠진 겁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진짜 나쁜 놈이었어요, 혜진이와 동창 친구라고 해놓고선 그게 아니었습니다.”

“친구가 아니면?”

“애인이었던 거예요. 한 마디로 경수가 양다리 걸쳤던 겁니다. 그것도 친한 직장동료 사이에서 말입니다. 우연히 경수 카톡을 보고 알게 됐어요. 혜진이가 경수를 사랑한다고 톡을 보냈더라고요. 둘이 친구가 아니고 사랑하는 사이였던 거였죠.”

“둘이 연인이었다고요? 이경수는 뭐라고 말 하던가요?”

“분통이 터져 따지려고 했다가 그냥 말았습니다. 답이야 뻔하잖아요. 오해였다, 카톡 잘못 본거다, 혜진이가 친구로서 사랑한다는 말을 한거다 등등. 그래서 그냥 넘어갔죠. 제가 좀 쿨한 편이라.”

“이경수는 언제까지 만났어요?”

“혜진이 죽고 나서는 안 만났습니다. 연락도 안 왔고 저도 굳이 만나고 싶지 않더라고요.”

삼각관계인 걸 알면서도 왜 계속 만났는지 의아했지만, 사건과 관련 없는 것 같아 묻지 않았다. 



“국과수에서 박혜진 최종 부검 결과와 DNA 검사 결과 왔습니다.” 다음 날 오후 전수사관이 문서 두 개를 건넸다. 

“국과수 규정에 요청기관에 회신한 결과를 서버에 보관하도록 되어 있더라고요. 그래도 오래된 사건이라 오늘 오전에서야 찾았답니다.”

“내용은 보셨죠? 뭐라고 되어 있던가요?”

“새로운 사실이 또 드러난 듯합니다. 정리되는 느낌은 안 들고 자꾸 빠져드는 것 같네요. 먼저 최종 부검 결관데, 사망 3,4일 후 나왔던 1차 부검결과와 다르게 나왔습니다. 1차에서는 목에 맨 스카프에 체중이 실리면서 기도가 막혀 질식사 한 걸로 나와요. 외부의 힘이 작용한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다는 거 였습니다. 

그런데 최종 부검결과에는 삭흔, 즉 목에 가로로 난 상처가 주저흔인지 반항흔인지 확인하기 어렵다고 나옵니다. 죽음을 주저하다가 난 흔적인지, 외부의 힘에 반항한 흔적인지 단언할 수 없다고 하는 겁니다.”

“자살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건데, 최종 부검결과가 1차와 이렇게 다를 수가 있나? 최종 부검결과가 나온 뒤에 사건을 종결하든가 했어야지 참나. 어쨌거나 자살을 뒷받침하는 유일한 근거가 없어져 버린 겁니다. 이제 타살 가능성에 초점을 두고 사건을 다시 들여다봐야 할 것 같네요.” 

“그게 맞을 듯합니다. DNA 검사결과도 형사 말이 맞았습니다. 모발과 이경수 콧물의 유전자 염기서열이 일치한다고 나와있어요. 박혜진 옷에 이경수의 머리카락이 묻어 있었다는 말이 되는 거죠.”

“그렇다면, 둘이 연인 관계라는 김주연 말이 틀리지 않았네요. 이런 연장선 상에서 최종 부검결과를 보면 어느 정도 그림이 그려집니다. 박혜진 죽음에 이경수가 관여되어 있는 게 분명해 보입니다.”

“태아 DNA도 국과수 데이터베이스에 보관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제 이경수가 DNA 채취 동의만 하면 태아와 친자관계가 바로 확인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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