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결] EP.02 바람 속에 핀 꽃
글 · 마리엘로즈
작고 어여쁜 화초 하나가 있었어요.
잎은 연두빛 유리처럼 투명했고,
햇살이 닿을 때마다 조용히 반짝였죠.
그 화초를 키우는 주인은
세상 무엇보다도 화초를 아꼈어요.
바람이 불면 얼른 집 안으로 들여놓고,
비가 내리면 우산을 씌웠어요.
"잎 하나라도 다치면 어쩌지?"
"이 비가 혹시 산성비면 어쩌지?"
그 걱정이 늘 마음 한구석에 있었죠.
그래서 화초는 늘 따뜻하고 조용한 실내에서
안전하고 조심스럽게 자라났어요.
ㅡ
그렇게 시간이 흘러,
화초에게 꽃이 피는 계절이 다가왔어요.
주인은 문득 생각했어요.
‘이 아이도 언젠가는
세상 바깥으로 나가야 할 텐데...
그곳엔 비도 오고, 바람도 불고,
눈이 내릴 때도 있을 텐데...
내가 없을 때도 잘 견디게 하려면,
지금부터 단련시켜야 해.’
그래서 그날부터
주인은 화초를 바깥으로 데려가기 시작했어요.
비 오는 날엔 일부러 내놓고,
바람 부는 날엔 잎사귀가 흔들리는 걸 가만히 두었죠.
심지어 겨울이 왔을 땐,
"눈도 맞아봐야지.
세상은 따뜻하기만 하지 않아."
말하며 화초를 추운 베란다에 내놓기도 했어요.
화초가 시들해 보이면 주인은 말했어요.
“이 정도로 힘들어하면
진짜 세상은 어떻게 버티려고 그래?
너는 너무 약해. 강해져야 해.
난 널 사랑하니까, 이렇게 하는 거야.”
화초는,
그게 사랑인 줄 알았어요.
그래서 더 말없이 견디려 애썼죠.
ㅡ
그리고 마침내,
화초는 바깥 세상으로 나가게 되었어요.
꽃을 피우기 위한 계절이 온 거였죠.
하지만 세상은 생각보다 훨씬 더 거셌어요.
바람은 더 날카롭고,
비는 더 차가웠어요.
화초는 자꾸 주인의 말이 떠올랐어요.
‘이 정도로 힘들어하면 안 돼.’
‘넌 나약해. 견뎌야 해.’
‘이깟 거쯤 아무것도 아냐.’
그 말들이 마음에 박혀서,
도움을 청할 용기도, 쉬어갈 자리도
화초에겐 허락되지 않았어요.
'나는 약한 화초야.'
'쓸모없는 꽃이야.'
'차라리 없어지는 게 낫겠지.'
화초는 그렇게 조금씩
잎을 닫고, 뿌리를 움츠리며
세상 속에서 스스로를 잃어갔어요.
ㅡ
그러던 어느 날,
햇살이 부드럽게 내리던 오후,
누군가 화초를 조용히 바라보았어요.
“많이 흔들렸구나.”
“잎도 다치고, 뿌리도 지쳤네.”
“하지만 넌 여전히 살아 있구나.
꽃을 피울 힘이 아직 남아 있어.”
그 손길은 따뜻했어요.
아무 말 없이 화초의 화분을 감싸 안고
햇살 잘 드는 창가로 데려다 주었죠.
“이젠 괜찮아.
이젠 네가 쉴 차례야.
바람을 맞고 싶을 땐 맞고,
햇살을 원할 땐 기지개를 켜.
누구도 너에게 시험을 요구하지 않을 거야.”
화초는 조심스레 잎을 펴보았어요.
햇살이 부드럽게 그 위를 쓰다듬었죠.
살아있다는 감각이, 처음으로 따뜻했어요.
그리고 아주 천천히,
화초는 그 자리에서 꽃을 피우기 시작했어요.
연약했지만, 진심 어린 꽃.
상처받았지만, 포기하지 않은 꽃.
그제야 화초는 알았어요.
꽃이 핀다는 건,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환영을 받는 일이라는 걸.
ㅡ
필요하다면, 주인을 다시 만날 날도 오겠지.
그때는 말할 수 있을 거야.
“나는 약하지 않았어.
나는 그냥, 사랑받고 싶었을 뿐이야.”
그리고 묻고 싶었어요.
"당신은 정말 나를 사랑한 게 맞나요?"
“당신은 어떤 주인인가요?”
바람을 막아준 사람이었나요,
아니면 사랑을 훈련으로 바꾼 사람이었나요.
아니면,
당신 역시
다정한 주인을 만나지 못해
아직도 마음 한구석이 시린
작은 화초인가요.
그렇다면,
이 이야기가 당신에게
잠시라도 따뜻한 햇살이 되어
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