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자료 1]
왜 꼭 아이디어는
샤워하다가, 설거지하다가,
딱 잠들기 직전에 오는 걸까?
종이도 펜도 없고,
메모앱조차 켜기 애매한 그 타이밍에!
아니, 대체 왜 하필 그때?
이게 바로,
내 글에 귀신이 산다는 증거가 아니면 뭐겠어?
그 귀신은 꼭 내가 제일 난처할 때 나타난다.
머리엔 샴푸 거품 묻은 채로
“오오 이거 대박이다!” 싶어도
수건 찾는 사이에 사라진다.
(그 영감, 지금 어디 갔냐고!!)
그리고 드디어 정신 차리고
메모앱을 켜고 쓰려는 순간-
띠링.
'인터넷 가입 스팸전화.'
아악!!어떡해.
방금 엄청난 문장이 생각났는데...기억이...
그 귀신은 나보다 타이밍을 더 잘 알고,
내가 진심일수록 더 방해한다.
현실과 영감 사이, 딱 그 틈에서 장난친다.
그리고 내가 책상 앞에 딱 앉는 순간,
갑자기 조용해진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나 그런 말 한 적 없는데?”
하는 표정으로 사라진다.
결국 나는 머리가 젖은 채로
아이디어의 흔적을 좇아
글을 쓰기 시작한다.
오..다행이야..생각났어..
한참 감정 몰입해서 쓰고 있는데
같이 사는 줄도 몰랐던 남편이 갑자기 등장한다.
“자기야, 근데 말이야...”
응? 지금?
굳이?이 타이밍에? 갑자기 너의 인생을 ?
나 지금 흐름 탔거든?
그러다 나의 집중하는 눈빛을 보며
서운한 눈빛을 남기고
조용히 방을 나간다.
(어쩌라고... 나 지금 빙의 중이란 말이야...)
흠...
아무래도 내 글 안에는 귀신 한 마리가
함께 살고 있는 게 분명하다.
ㆍ
《생활 밀착형 정령들》
1. 아이디어 귀신
갑자기 찾아와서 번뜩이는 한 문장을
던지고 사라진다.
샤워 중, 설거지 중, 잠들기 직전에 주로 출몰함.
※ 단점: 수건 찾는 사이, 잠들기 전에 다 잊음.
※ 대책: 체념.
2. 낚시 귀신
“오 이거 써야 해!” 하고 메모앱 켜려는 순간,
꼭 전화가 온다.
※ 그 순간, 영감도 전화기 너머로 같이 튀어버림.
※ 대책: 없음
3. 깃털 귀신
글 쓰겠다고 딱 앉는 순간,
“나 그런 말 한 적 없는데?” 하며 증발하는 유형.
자리 잡고 앉으면 절대 안 나타남.
※ 주의: 밤 11시 넘어야 다시 슬쩍 등장함.
※ 대책: 커피 한 사발 앞에 놓고 빌어봄
4. 방해 귀신 (a.k.a 남편)
한참 몰입해서 빙의 중일 때,
갑자기 말 걸며 수다 떨자고 다가온다.
대답 안 하면 서운해서 방에 들어감.
※ 대책: 그냥 무시
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