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결 | EP.20 여유는 내가 만드는 것
일본을 싫어해서
단 한번도 여행지로
생각해 본 적 없던 내가,
예외로 둔 도시.
교토.
가끔 그런 생각까지도 한다.
혹시 나는,
예전에 교토의 귀족이었을까.
늘 피곤하고 흐릿하던 몸과 마음이
교토 시내에 들어서는 순간
마치 설정값처럼 말끔히 회복된다.
그러니, 어찌 안 좋아할 수 있을까.
하루 종일 숙소에서 뒹굴다가
슬쩍 저장해둔 맛집을 탐방하고,
카페에 앉아 조용히 나만의 시간을 즐긴다.
그런 순간들이
어느 치료보다 정확하게
나를 다시 살아 있게 만든다.
ㅡ
요즘은 카톡보다
구글 지도와 번역기를 더 자주 켠다.
길을 헤매도 불편하지 않고,
주문이 어색해도 낯설지 않다.
여기선 그조차 내 템포다.
가끔 한국어로 인사하는 직원과
짧은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그 짧음이 오히려
반갑고, 적당하다.
ㅡ
누군가는 그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여유가 있으니까,
여행도 가능한 거 아니야?”
그 말, 아프게 들리진 않는다.
하지만 조용히 말하고 싶다.
나는 더 많은 여유가 있었을 때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반대로
지금은 여유가 없지만
그건 결국,
핑계였다는 걸 안다.
쉼은 조건이 아니라 선택이었고,
여유는 외부가 아니라
내 안에서 만들어지는 감정이었다.
ㅡ
몸은 쉽게 닿지만,
마음은 천천히 여는 거리.
아침 10시에 집에서 출발해
천천히, 천천히 도착한 시간이
어느덧 저녁 7시.
비행기로 1시간 반,
열차로 1시간 40분.
그 외의 시간은 모두 기다림이었다.
서두름 또한 없다
그 기다림마저도
나 혼자만의 시간이라서
나는 좋았다.
ㅡ
갈수록 가방은 단촐해진다.
이곳은 뭘 더하려는 곳이 아니라,
평소의 나를 잠시 벗기 위해 가는 곳이니까.
더위를 타지 않는 나인데도
늘 날씨 요정마저 따라다닌다.
약간의 흐린 듯한 날씨마저,
마치 내가 좋아할 걸 미리 알고
준비해둔 것처럼 느껴진다
평일의 교토에는
한국어가 없다.
조금 더 조용하고,
조금 더 깊다.
오사카가 명동이라면
교토는 경주 같다.
그래서인지
이곳엔 한국인보다
서양인이 더 많다.
하지만 그런 비교조차
어느 순간 희미해진다.
이곳은 단지 나에게
정확히 맞는 속도와 공기를 가진,
나를 회복시키는 장소니까.
ㅡ
간절함이 없을 때는
많은 것들이 무의미해진다.
나는 지금,
간절함으로 쉼을 만들고
간절함으로 내 삶을 조율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쉬고 있지만,
도망친 게 아니다.
조용히, 나를 복원하는 중이다.
교토라는 이름은
내게 그저 도시가 아니다.
지도 위의 지명이 아니라,
내가 나를 복원하는 문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