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으로 마음을 입다 | EP.18
아무 일도 없던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는 색
“거창하지 않아도 돼
오늘은 숨부터 새로 시작하자.”
창가에 얇은 빛이 눕는다.
머그 가장자리에서 김이 한 번 피어오르고,
달력의 첫 칸에 연필 끝이 가볍게 스친다.
큰 이유는 없다.
지금의 맑음이
등을 조용히 미는 것뿐.
ㅡ
파란 하늘에
우유 한 방울을 떨어뜨린 듯,
분진 없이 맑게 가라앉은 파우더 블루.
어제의 말들을
빛에 한 번 헹궈 내리고,
마음은 새 페이지의 결처럼
반듯하게 펼쳐진다.
ㅡ
실내는 미지근,
창밖은 약간 서늘.
화분 잎끝의 물방울이 또르르 굴러 떨어지고,
빛줄기 위로 먼지가 잔음처럼 춤춘다.
나는 계획 대신 호흡을 적는다.
“지금, 여기.”
그 한 줄부터 시작한다.
ㅡ
거창하지 않아도 시작은 시작이다.
시작은 북소리보다
연필의 사각거림에 가깝다.
맑음이 미는 쪽으로만
오늘의 나를 살짝 기울인다.
창문을 더 열고,
숨을 한 번 고르고,
책상 모서리 하나를 비워 두는 일.
파우더 스카이는 떠들지 않는다.
덜어낸 자리에 오늘이 앉는다.
ㅡ
맑음이 걷혀도,
시작해 둔 마음은 쉬이 흐려지지 않는다.
https://youtu.be/nzDO6tAB6ng?si=z2Z4ZKh98NIsMh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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