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이해하는 작은 기록 | EP.16
그럼에도 우리는 앉는다.
가끔 내 글이 싫을 때가 있다.
그토록 정성을 들였는데,
막상 다시 읽어보면 마음이 식어 있다.
그때의 문장은 나를 닮았지만,
지금의 나는 그 문장 속에 없다.
그래서 낯설고...
어쩐지 부끄럽다.
머리는 멀쩡한데,
마음이 따라오지 않는 날이 있다.
손끝은 멈춰 있고,
문장은 도망가고,
빈 화면만 나를 뚫어지게 바라본다.
그럴 때면 나도 묻는다.
“굳이 오늘도 써야 할까?”
“이 감정으로 써도 괜찮을까?”
ㅡ
사람들은 말한다.
“하루에 한두 편씩 쓰는 거, 정말 대단하세요.”
그 말은 분명 칭찬인데,
요즘은 이상하게 조금 무겁게 들린다.
나는 대단해서 쓰는 게 아니라
멈추면 무너질까 봐 쓴다.
그건 하루의 습관이 아니라,
나를 붙잡는 리듬이다.
사람들은 결과만 본다.
올라온 글의 수, 랭킹, 반응.
하지만 그 안에는
매일 감정을 끌어올리고 식히는
보이지 않는 과정이 숨어 있다.
그건 단순한 꾸준함이 아니라,
감정의 무게를 견디는 인내다.
그래서 내 글은 고요하지만,
그 고요 속엔
버티는 마음이 있다.
ㅡ
그럼에도 이상하게
결국 우리는 또 앉는다.
쓰지 않아도 되는 날인데
안 쓰면 더 허전해서.
아마 글은,
‘하고 싶은 일’이라기보다
‘살아 있다는 증거’에 가까운 일이라서일지도 모른다.
쓰기 싫은 마음까지 써내려갈 때,
그 문장은 조금 다르다.
화려하지도, 완벽하지도 않지만
유난히 진실하다.
그래서 오늘도 쓴다.
글이 좋아서가 아니라,
글이 나를 떠나지 않길 바라서.
ㅡ
모든 열은 결국 식는다.
그건 슬픈 일 같지만,
식음은 사라짐이 아니라
남음의 시작이다.
감정이 가라앉은 자리엔
비워진 공간이 생기고,
그곳에야 비로소
빛이 들어온다.
한때 불타올랐던 마음이 지나간 후,
남는 것은
그 감정이 스쳐간 결의 흔적이다.
마음이 한 번 흔들렸다는 증거,
그 흔적이 우리를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든다.
그래서 이제는 안다.
감정이 식을 때마다
조용히 나를 들여다보는 일,
그것 또한 글쓰기의 일부라는 걸.
뜨거움 대신 맑음이 남고,
불꽃 대신 투명한 온도가 남는다.
식은 감정의 자리에서야
비로소 우리는 안다.
사랑도, 슬픔도, 글도
결국은 남기기 위한 일이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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