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에 스민 계절 | EP.09
찬 바람이 스치는 순간,
몸보다 먼저 마음이 움츠러들 때가 있다.
그 짧은 틈 사이로
어김없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이름을 부르지도 않았는데
추위는 이상하게도
따뜻했던 기억부터 불러낸다.
ㅡ
겨울의 차가움은
몸을 시리게 하는 동시에
마음을 오래전의 온도로 돌려놓는다.
손끝이 시려지면
누군가의 손을 잡았던 감촉이 떠오르고,
목까지 조여 온 코트 틈 사이로
옛날의 다정함이 아주 조용히 스며든다.
그 온도는 사실
그 사람이 남긴 흔적이라기보다
함께 머물렀던 시간을
내 마음이 기억하고 있는 방식에 가깝다.
ㅡ
생각해보면
우리는 따뜻함 속에서는 사람을 잘 떠올리지 못한다.
감정도 느슨해지고
기억도 부드럽게 흐려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차가운 순간엔
마음이 더 정직해진다.
지금 나를 감싸줄 사람이 누구인지,
지금 내 마음을 데워줄 기억이 무엇인지,
추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
대신 그것들을 조용히 보여준다.
ㅡ
그래서 겨울은
가장 솔직한 계절인지도 모른다.
내가 누구를 그리워하는지,
어떤 온도를 잃지 못하고 있는지,
어떤 마음을 여전히 붙들고 있는지,
추위 속에서는
그 모든 것이 더 선명해진다.
ㅡ
춥다고 느낀 순간,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그건 외로움이 아니라
한때 머물렀던 따뜻함이
아직 내 안에서 조용히 살아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온도를 떠올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
오늘의 겨울은
조금 덜 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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