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에 스민 계절 | EP.08
가을밤은
유난히 조용하고
조용해서 자꾸 생각이 깊어진다.
불 꺼진 창가에 혼자 앉아 있으면
말을 걸지 않아도
마음이 먼저 스스로를 향해 묻는다.
오늘의 끝,
계절의 끝,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끝나버린 마음 하나.
ㅡ
가을밤의 공기는
차갑지 않지만 따뜻하지도 않다.
서늘한 온도 사이로
무언가가 천천히 멀어져 간다.
이별이라는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도
이별 같은 감각은
어느새 이 밤에 스며 있다.
ㅡ
슬프지 않다.
그저 조금 가라앉아 있을 뿐.
마음이 부서지는 게 아니라
조용히 흩어지는 느낌.
누군가가 떠난다기보다
내 안에 있던 무언가가
천천히 저물어가는 감각.
ㅡ
가을밤의 온도는
무언가를 다 안아주고,
조용히 보내주는 온도다.
감정을 붙잡지 않아도
미련 없이 흘러보낼 수 있게 만드는 기온.
그게 바로 이 계절의 다정함인지도 모른다.
붙잡지 않기에
오히려 더 오래 기억되는.
ㅡ
나는 이런 밤이 오면
괜히 혼잣말을 한다.
“잘 있었니.”
“그래도 괜찮았어.”
“이젠 보내줘야겠지.”
누군가에게 하는 말 같지만...
사실은
나에게 하는 말.
ㅡ
가을밤의 온도는
이별을 닮았다.
끝나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그땐 몰랐던 말,
그때는 하지 못했던 표정.
이 계절은
그 모든 걸
늦은 시간에, 조용히 되짚게 한다.
ㅡ
그러다 보면
조금은 괜찮아진다.
이별 같은 밤이 지나가고 나면
마음은
이름 붙이지 못한 감정 하나를
조용히 정리해낸다.
아무도 모르게,
나 혼자만의 속도로.
이별이 아니라
스스로를 조용히 떠나보내는 시간.
https://pin.it/296cuNMt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