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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거리감에 대하여

로맨스, 나를 다시 쓰게 하다 |EP.19

by 마리엘 로즈


사람은 누구나
사랑 앞에서 한 번쯤 ‘이해자’가 된다.

상대의 말에 이유를 달아주고,
행동에 맥락을 붙인다.


“그도 힘들었겠지.”
“그럴 수밖에 없었겠지.”


그렇게 이해를 쌓을수록
내 마음은 더 깊은 곳으로 끌려 들어간다.
상대의 감정을 대신 짊어지며
그것을 사랑이라고 착각한다.

그건 따뜻하지만
동시에 위험한 방식이다.



이해자는 결국,
사랑을 구원하려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 구원은
대개 나의 희생을 전제로 한다.

상대의 상처를 안아주다 보면
어느 순간 내 경계가 사라진다.


그의 슬픔이 내 아픔이 되고
그의 불안이 내 하루를 잠식한다.

사랑은 그렇게-
조용히 나를 닮은 상처로 번져간다.



그러다 문득,
관계를 조금 멀리서 바라보게 되는 순간이 온다.

그때 나는 ‘관찰자’가 된다.

관찰자는 차가운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그 거리를 통해
사랑을 오래 지켜보는 사람이다.


“그가 지금 불안하구나.”
“이건 사랑이 아니라 확인이구나.”


이렇게 한 발 물러나 바라볼 줄 아는 사람.



사람은 처음으로
이해 대신 ‘인식’으로 바뀌는 그 지점에서
자신을 지켜내기 시작한다.


관찰자는 상대를 덜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다.
다만,
사랑을 더 명확히 바라보는 사람이다.


불잡기보다 흘려보내는 법을 아는 사람.

그래서 관찰자는
이별이 와도 무너지지 않는다.
사랑의 끝을
통증이 아닌 ‘통찰’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결국,
거리의 예술이다.


너무 가까우면 타버리고,
너무 멀면 식어버린다.


그 사이의 온도를 지켜내는 일.
그게 어쩌면
사랑의 진짜 형태인지 모른다.



이해자에서 관찰자로
사랑을 잃지 않으면서
나를 잃지 않는 법을 배워가는 과정.

그게 어른의 사랑이고,
마음의 성장이다.

어쩌면 지금의 당신도
그 길 위에 서 있을지 모른다.

그 길 끝에서
당신 자신을
조금 더 다정하게 바라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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