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하면 끊어지고 느슨하면 못 쓴다.
무릇 딱 맞는 비유를 찾았을 때 드는 홀황(惚恍)한 기분은 꼭 글을 쓰는 사람만이 아니어도 같다.
“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닥아서다. 촛불을 꺼야 하리/ 꽃이 지는데”
조지훈의 <낙화(洛花)>다. 별이 지면서 ‘동글동글’ 구르는 소리, 귀촉도가 울면서 “소쩍소쩍”하는 소리, 촛불이 일렁이면서 “살랑살랑” 하는 소리에조차 꽃잎이 떨어지니 촛불을 꺼야 하고 귀촉도 울음도 그쳐야 하고 별이 지는 것도 멈춰야 한다.
좋은 문장이란 이러하다. 어느 하나를 덜어 보태고 눌러 내릴 수가 없다. 이것을 덜면 저것이 무너지고 이것을 보태면 저것이 뒤틀려 100% 겹따옴표만이 최선이다.
“하늘의 도는 활을 시위에 메는 것과 같다(天之道, 其猶張弓與)” (노자 제77장)
활은 대나무나 박달나무, 산뽕나무를 반달 모양으로 휜 다음 화살을 활시위에 걸어 몸쪽으로 바짝 잡아당겼다가 놓으면 자체 탄성으로 화살이 날아가는 무기다.
활을 쏘는 자가 너무 힘을 주어 당기면 활시위가 끊어지고 너무 느슨하게 당기면 활이 멀리 가지 않으며, 장마철 날이 눅지거나 겨울철 날이 건조하면 활시위가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하여 정확하게 과녁을 맞힐 수가 없다. 늘 팽팽한 긴장감, 과하면 쓰러지고 과하지 않으면 못 쓴다.
“높으며 누르고 낮으면 올리고 남으면 덜어내고 모자라면 보탠다(高者抑之, 下者擧之, 有餘者損之, 不足者補之)”
하늘의 도는 이러하다. 높이 올라가면 끌어 내리고, 낮으면 들어 올리고, 남음이 있으면 모자람에 보태주고, 모자람이 있으면 남음에 더해준다.
많은 사람은 이 장(章)을 해석하면서 부자는 세금을 깎아 가난한 사람을 더 가난하게 만들거나, 가난한 사람의 푼돈을 뜯어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든다고 비난한다.
모두 반쪽짜리 그럴듯한 논리로 이 장을 인용하니 <노자>도 참으로 통탄할 노릇이다.
해석은 자유이지만 팩트를 속여서는 안 된다. 가난한 사람은 부자가 낸 세금으로 부족한 소득을 이전받는다. 부가가 있어야 가난한 사람의 물건을 사 주며, "그들도 한때 이 좌판대에서 부자에게 물건을 팔아 지금의 이 자리에 올랐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과연 “하늘의 도리는 남음을 덜어 모자람에 보태준다”고 하였는데 무엇인가?
날이면 날마다 홍제 전철역에는 할머니가 나물을 판다. 지나가는 사람은 두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횅하니 지나가며 혹여 사려면 우선 가격부터 깎는다. 그런 사람이 옆에 있는 선글라스 할인 행사장을 보고 수십만 원짜리를 사면서 오히려 잘 샀다고 맛집으로 간다. 그 한 끼 식사비면 할머니 한 달 치 수입을 웃돈다.
관용을 베풀어야 할 사람에게는 관용을 베풀지 않아 인색함이 돋보이고, 관용을 베풀지 않아도 넉넉한 사람에게는 오히려 관용을 베풀어 넘치게 하는 이 역설은 또 무엇인가?
글쎄다.
무릇 모든 것에는 쓰임새가 있다. 못났으면 잘난 구석이 있고 잘났으면 못난 구석도 있다. 간장 종지면 간장 종지대로 호수면 호수대로, 간장 종지에 간장을 담으면 되고 호수에 너른 배를 띄우면 된다. 그냥 순응하면서 살아라? 언빌리버블!
우선 불시(不恃), 불처(不處), 불욕(不欲)이 먼저다. 베풀었다 하여 자랑질 말고, 이루었다 하여 자리에 머물지 말며, 어질다고 하여 욕심부리지 않아야 한다. 여기엔 부자, 가난한 자, 귀한 자, 귀하지 않은 자, 모두 같다.
그럼에도, 잘나서 많이 벌었다면 못나고 없을 때의 어려움을 잘 아니 인색하지 말아야 하며, 잘나서 높이 올랐다면 깔아줄 밑 계단이 있었으니, 교만하지 말고 베풀어야 하는 것도 도리다.
왜냐고? 수많은 인과에서 "너도 어려웠을 때 남의 도움을 받아서 여기까지 왔으니까" 그 마음을 잊지 말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