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의 시대, 잃어버린 것이 있다면, 낭만! 왜일까요?
리더스 다이제스트
2024.4.24.
봄비가 인왕산 위로 촉촉이 내리네. 이럴 때 잔잔한 호숫가로 떨어지는 빗 방물 소리를 들으러 어느 카페에 앉아 옛 생각에 젖으면 딱 좋은 풍경 아니야?
혹시, 펜팔(pen-pal)로 편지를 쓰신 기억이 있어? “그런 세대가 아니라고요, 죄송합니다.” 맞다. 그걸 기억하는 세대라면 7080 마지막 낭만 세대라고 할 수 있으니까.
풍요의 역설이라는 말이 있어. 영국 경제학자 케인스(Keynes)가 한 말 “풍요 속 빈곤”, 인간의 본성을 언급한 말이지. 인간은 궁핍을 사색하지, 풍요를 탐구하지 않아.
세상을 행복한 사람으로 가득 채워 놓으면 행복해지지 않아. 세상을 건강한 사람으로 가득 채워 놓으면 건강해지지 않아. 세상을 예쁜 사람으로 가득 채워 놓으면 예뻐지지 않아.
왜? 일상화되었으니까. 모두가 똑같아서 어떤 가치를 느끼지 못해. 인간은 본능적으로 희소성에 반응해. 지독히도 불행한 사람, 지독히도 운이 없는 사람, 지독히 지질한 사람. 이런 사람이 화제가 되잖아?
우리가 늘 상위 1%, 상위 5%에 반응하고 격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어. 언제나 존재하는 상위 1%, 상위 5%. 수(數)를 없애지 않고는 존재 해. 그래서 막 그들을 공격하여 끌어내려 놓아도 또 금세 상위 1%, 상위 5%는 채워져. 왜? 통계이니까?
내가 대학에 다닐 때 ‘리더스 다이제스트’라는 4X6판짜리 작은 책이 유행한 적이 있었어. 난 물론 1년치 정기 구독자였고. 거기에는 펜팔 주소가 적혀있었어. 그 주소로 편지를 쓰면 대략 열에 서너 통은 와.
자기 주소와 이름을 전국에 공개한다고? 언빌리버블! 지금이라면 개인정보라고 난리난리 처벌받았겠지. 그때는 전 국민이 아니라 전 세계에도 공개되었어.
중학교에 가니 영어 선생님이 영어에 도움이 된다고 외국 펜팔을 강추하기도 했으니까.
이제 그 자리에 누가 들어와 있느냐고? 펜팔 애독자들이 페북이나 인스타로 다 몰려왔지. “플랫폼”이 다르니 다른 것처럼 느낄 뿐 본질은 같아.
내 일과 중 하나가 외국인 페북 친구 신청을 삭제하는 일이야. 그러려니 하지만 거기에 혹시 모를 해커가 있을까 봐. 해커와 일반인의 차이는 없어. 의도가 실행되는 순간 해커로 바뀔 뿐.
지금이 그런 시대야. 뭔가 뜸을 들이는 일이 없어. 째깍 이루어지는 시대. 펜팔을 쓰고 한 달이나 지나야 답장을 오는 시대, 기다림이 그리움이 되는 그 시간이 사라졌으니, 숙성될 감정도 없고 그저 내뱉는 배설문화만 떡하니 자리를 잡을 수밖에.
<천자문>에 이런 말 있는 거 알아? 제111구 '牋牒簡要(전첩간요), 顧答審詳(고답심상)'이라. 보내는 편지는 간단하게 용건만 쓰고, 답장 편지는 자세히 살펴 묻고 답해야 한다. 삼선 평어는 “SNS 시대에 편지도 없고 펜팔도 없고 연애편지도 없다. 사라진 것은 형식이 아니라 낭만이다.”
그래, 편지 예전에는 척독(尺牘)이라 했어. 길이가 한자 정도 이내에 글을 썼으니. 옛 어른들이 격식을 갖추고 쓴 논(論)이나 기(記), 제문(祭文)보다는 척독이 더 재미있어. 요기에는 할 말 못 할 말이 좀 들어있거든. 박지원이나 이덕무, 박제가의 척독 읽어봐. 책에 나와 어른처럼 보이지만 다 똑같은 우리의 모습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