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로 서야 누군가를 돌볼 수 있다
강아지와 일주일을 통으로 보내고 출근하는 날. 우리 부부는 둘 다 밖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월-목요일에는 시가에서 강아지를 봐주신다. 금요일 저녁에 강아지를 데리고 와서 주말을 같이 보내곤 하는데, 이번 주는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휴무였던 터라 금요일에 5시간 정도만 집에 두면 주말까지 데리고 있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남편은 일찌감치 출근을 했고, 나는 그보다 출근이 늦어서 조금 더 같이 있다가 나갈 수 있었다. (둘이 함께 나가면 강아지는 자기를 버리고 가는 줄 알고 더 불안해한다)
실외 배변을 하는 강아지라 출근 전에 밖에서 한 번 더 오줌을 누이고, 노즈워크 장난감에 간식을 넣어 시선을 분산시켰다. 다른 곳에 집중하고 있을 때 잽싸게 나올 심산이었으나 문을 닫기 전에 한 번 더 눈에 담겠다며 핸드폰을 여는 바람에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내가 나가는 것을 눈치챈 강아지는 여느 때보다 의지를 강하게 내뿜으며 안겨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했다.
따뜻한 온기, 부드러운 털결...
하... 너를 두고 어떻게 가니?
우리 집에는 홈카메라도 없는데.
혼자 두려 하니 어찌나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지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 전에 "죄송합니다."를 외치곤 뛰쳐나왔다. 현관을 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안기는 강아지를 끌어안고 눈을 질끈 감으며 다시 한번 문을 닫았다.
"우리가 이걸 지금 안 하면 평생 못할 거야."
그렇게 강아지를 두고 일을 하러 간다. 빨리 끝내야 빨리 집에 갈 수 있으니 집중도가 높아진다. 그렇다고 일의 효율이 마냥 높아지냐면 그건 아니다. 신경이 온통 핸드폰에 가 있고(무슨 연락이라도 올 것 같아서) 홈카메라가 집에 없음을 아쉬워하다가, 만일 있다면 30초마다 그것만 들여다봤을 거라며 자위한다.
드디어 퇴근 시간. 집에 가는 길에는 장애물이 있다. 현대백화점에는 신선한 채소를 팔고 더군다나 오늘은 돈가스 아저씨가 오는 금요일이다. 돈가스는 그렇다 치더라도 못 보던 차가 와 있네? 그것은 바로 순대차. '어제 남편이 순대 먹고 싶다고 했는데.. 간은 뚱자가 잘 먹으니 조금 기다렸다가 사갈까? 지금 손님이 한 명 있으니 이건 금방 살 수 있을 거야.' 그런데 갑자기 순대 파시는 아주머니에게 걸려온 전화. 순대를 써시는 손이 느려진다. 못 산다. 이건. 그래, 못 사는 거야.
일도 예상보다 빨리 끝냈고, 돈도 굳었지만, 심장은 빠르게 뛴다. 집에 무사히 있는 강아지를 보기 전에는 이 불안이 가라앉지 않을 것 같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와 드디어 복도. 집 문 앞에는 이마트에서 배달온 물과 식재료가 도착해 있다. '배달 오는 소리 날 때 뚱자는 무서워서 짖는데 아까도 그랬겠네.' 하고 잽싸게 문을 여니 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었던 듯이 낑낑거리며 안기는 작고 따뜻한 생명체.
"미안해.. 언니가 너 혼자 두고 나가서 미안해..."
물을 먹은 흔적도, 사료를 먹은 흔적도, 오줌을 싼 흔적도 없다. 혼자 얼마나 불안해하면서 나를 기다렸을까 그런데 나 역시 오늘 아무것도 먹지 않았네. 분리 불안은 너한테만 오는 것이 아니었나 보다.
강아지를 키우면서 알게 된다. 강아지를 키우는 것은 영원히 자라지 않는 아기를 키우는 것과도 같다.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뭐든 챙겨줘야 하는 생명을 키우는 일이란 결코 쉽지 않다. 강아지를 키우면서 부모님의 마음 또한 헤아리게 된다. 강아지를 잠시 두고 나가는 것조차 이리 불안할진대, 인생의 갈래에서 내가 어떤 선택을 할 때마다 그저 지켜보며 응원해주셔야 했던 부모님의 마음은 얼마나 불안했을까.
가방이고 배달온 음식이고 다 그대로 두고 일단은 강아지를 데리고 나가 오줌을 누인다. 그제야 심장의 떨림이 잦아든다. 같이 씻으러 화장실에 들어가서 너 한 번, 나 한 번 물을 끼얹는다. 하지만 말릴 때만큼은 내가 먼저 몸을 말린 뒤에 너를 말릴 거야. 너의 몸은 아주 제대로 잘 말려줘야 하니까. 비행기에서도 위급한 상황일 경우는 먼저 마스크를 쓰고 옆 사람을 도와주라고 하잖아. 일단은 내가 바로 서야 너를 도울 수 있을 테니 앞으로도 이 불안함을 조금 내려놓고 담대해지기를 바라본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싶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