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보다 나은 내가 되는 법
초등학교 저학년의 나는 방학 숙제를 미루는 아이였다. 하기 싫어서 버티다 버티다 방학 전날 밀린 일기를 한 번에 쓰고 탐구 생활의 빈 페이지를 채우느라 엄마와 밤을 새우기 일쑤였다. 그러다 5학년쯤이었을까? 갑자기 엄마가 무슨 약을 먹이셨는지 정신을 차린 나는 숙제를 꼬박꼬박 하기 시작했다. 방학 내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쓴 일기장은 빼곡하다 못해 두툼했다. 가족과 다녀온 홍콩 여행에 대해서 기록한답시고 홍콩 주화도 일기장에 붙일 정도였던 열정이 기억난다. 그만큼 열심히 했으니 방학 숙제 1등을 기대할 법했고 선생님께 칭찬을 받을 생각에 개학을 기다렸다. 숙제를 제때 하면 그렇게도 삶의 활력이 생기고 열심히 사는 나 자신이 좋아지는 것이다. 그건 아무리 어린아이라고 해도 그랬다.
성인이 되어 등록한 내돈내산의 미싱 수업. 두 번째 시간에 선생님은 숙제를 내주셨다. 그때 내가 했던 말은 "숙제 내주셔서 감사합니다."였다. 혼자 하는 시간 없이는 실력이 늘 수 없으니 감사하다는 말은 진심이었다. 그런데 숙제가 많아도 너무 많아서 세 개 중에 한 개는 할 수가 없었다. '이건 못 한다' 하고 애초에 포기를 하면 될 텐데 자꾸 숙제를 하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으니 수업 시간이 다가오는 것이 싫었다. 해야 할 것, 하려 했던 것,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미루는 시간이 나는 무엇보다 괴롭다. 그래서 생각나면 뭔가를 더 빠르게 시작해 버리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시간과 실력의 한계로 결국 숙제 하나를 하지 못했다. '어떻게 말해야 할까?' 속으로 생각했지만 선생님은 그 숙제에 대해서 묻지 않았다.
그날 이후로 나는 되도록 숙제를 미루지 않는다. 미싱 수업은 두 시간 반 진행되며 개인 수업이라 등록비가 비싼 만큼 선생님은 빨리 진도를 나갈 수 있도록 숙제를 많이 내주신다. 수업을 듣고 배우고 온 날에는 녹초가 되어 아무것도 하지 못하지만 그다음 날 아침엔 꼭 미싱기 앞에 앉는다.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최대한 빠르게 숙제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숙제를 완성하면 다시 수업 시간이 기다려지고, 여유 시간에 나만의 다른 것을 만들 수도 있다. 브런치에 연재하는 날 안에 글을 꼭 써내려고 하는 것처럼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나와의 약속은 꼭 지키려고 하는 노력, 어제보다 나은 내가 되고 싶은 사람들에게 강추하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