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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영 Sep 13. 2024

전화 상담이 사라졌다.

판매자와 소비자가 상생하는 공간이 될 수는 없을까?  

전화 상담이 사라지고 있다. 포털 사이트, 카드사, 쇼핑몰 등 많은 곳에서 전화 상담을 없앴다. 아직까지 상담이 가능한 곳들도 연결되기까지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한다. 얼마 전에 카드사에 문의할 것이 있었는데 AI상담원 혹은, 스크린 터치 상담 중에 선택할 수밖에 없어서 몇 번을 끊고 다시 전화를 해야 했고, 그 과정이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기업들이 전화 상담을 없애고 있는 이유는 뭘까, 과연 실(失)보다 득(得)이 많을까?


판매자의 입장에서 타 기업들이 전화 상담을 없애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첫 번째로 상담원들의 고충이 크다. 자영업을 하다 보면 콜 포비아(Call Phobia, 전화 공포증)가 있는 나도 전화 통화를 피할 수 없는데 전화를 건 다수의 소비자는 자신을 밝히지 않고 다짜고짜 원하는 것에 대해서 얘기를 시작한다. 그러면 상담하는 쪽에서는 '성함을 말씀해 주시겠어요?' 하는 말로 대화를 시작하게 된다. 또한 자신의 용건에 급급해서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자르는 경우가 많다. 만일 상대방이 내 얼굴을 알고 있다고 가정하면 이렇게 전화 예절이 없을 수 있을까? 전화 예절에 관한 내용이 교과 과정에 없었나?를 반문하게 된다.


두 번째로 버리는 시간이 많다. 전화 상담에 최대 30분까지 소요된 적이 있었는데, 전화를 건 쪽에서는 한 번만 전화를 하는 것이지만 받는 입장에서 그런 통화를 여러 번 하게 되면 진이 빠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그 결과로 얻는 것이 많은가 하면 꼭 그렇지도 않다. 차라리 전화 상담을 없애는 편이 직원 보호 및 예산 절감 면에서 나을 수 있다. 상담을 하기 전에 '곧 연결될 상담원도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입니다'라는 말을 매번 들어야 하는 것도 한 편으로는 씁쓸한 일이다.


소비자의 입장으로 돌아가보자. 나 역시 준비되어 있지 않을 때, 모르는 번호로 걸려 오는 전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최근에는 스팸 전화도 많아서 070으로 시작되는 번호는 거의 받지 않는다. 전화보다는 문자가 편하고, 전화 알림을 무음으로 해놓기 때문에 일을 하느라 바쁜 시간에는 전화를 거의 놓치게 된다.

이런 여러 가지 면을 생각했을 때, 전화 상담이 없어지고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많은 것들이 AI로 대체되고 있는 현실에서 불편함과 당황스러움을 느낀다. 가끔은 고객과의 통화에서 느껴지는 반가움과 정이 그립기도 하다. 얼마 전에 고객분과 통화를 하다가 "좋은 하루 보내세요."라는 말로 마무리했는데, 고객분께서 아주 밝은 목소리로 "유 투~"라고 말씀하셔서 나도 모르게 기분 좋은 웃음이 났다. 카톡이나 인터넷 사용이 어려워서 전화를 했다는 말을 들을 때, 그리고 짧은 전화 상담으로 인해 큰 도움을 받았다는 말을 들을 때, 아직 우리는 전화 상담을 없애면 안 되겠구나. 다짐을 하게 된다. 얼마나 갈지는 몰라도.


서로 예의를 지키고 내가 고객의 입장이 되었을 때, 혹은 판매자의 입장이 되었을 때를 생각하면서 상대의 고충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면 서로가 상생하는 환경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AI에게 사람의 자리를 내어주지 않고서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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