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에 버스에서 내리면 24시간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가 보인다. 집에 들어가기까지 10분 남짓인데 그냥 걷기에는 심심하던 차에 문을 열고 들어갔다. 목표가 아이스크림 하나라면 마트에 가는 것보다 이 가게가 구미가 당긴다. 이곳에는 여러 종류의 아이스크림이 있고,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것들이며 둘러보고 싶은 만큼 봐도 눈치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도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는다. 다른 손님들이 차례로 들어와서 아이스크림 냉장고를 둘러보기에 마음에 드는 아이스크림 네 개를 고르고 그 자리에서 초코 빵빠레의 뚜껑을 벗겨 입에 문 뒤에 포장은 버리고 가볍게 밖으로 나선다. 문을 여는 순간, 별천지의 아이스크림 가게와 사뭇 다르게 펼쳐지는 풍경이 있다. 맞은편 구두 가게에서 열심히 구두를 닦고 있는 사장님. 문득 드는 생각은 이랬다. '아이스크림 가게 사장님은 자리에 없는데도 돈을 벌고, 구두 가게 사장님은 시간을 팔아서 돈을 버는구나.'
자신이 가진 기술로 돈을 버는 자영업자는 시간이 돈이다. 건강도 돈과 직결된다. 하지만 무인 가게를 운영하는 자영업자는? 영업시간 동안 그 자리를 지키지 않아도 되며 다른 곳에 시간을 쓸 수 있다.
기술을 팔 경우의 장점은 무엇일까. 버는 돈이 온전히 내 것이 된다. 또한 그 기술에 만족한 고객에게 있어선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될 수 있다. 아이스크림 가게 사장님의 경우, 아이스크림을 파는 돈이 온전히 내 것이 되는 것이 아니며(매입가가 있기 때문에) 그곳의 아이스크림은 언제든 다른 제품으로 대체될 수 있다.
기술을 파는 것과 공산품을 파는 것. 두 가지의 리스크는 극명하게 드러난다. 시간을 들여야만 돈을 만들 수 있는 전자는 시간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돈을 들여야만 돈을 만들 수 있는 후자는 언제든 대체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된다는 것은 의외로 쉬워진다. 기술이 들어간 공산품을 파는 것이다. 이미 만들어진 상품에 기술을 얹거나, 새로운 기술이 들어간 공산품을 팔면 된다. (물론 이 때는 누구나 수급하기가 쉽지 않은 제품이어야 한다.)
대체될 수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은 어렵지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기술이 없다면 내가 세상에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를 생각하라. 그것은 꼭 기술이 아니어도 되며, 다른 곳에서는 제공하지 않는 서비스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이미 가지고 있던 한 가지에 다른 하나만 결합해도 특별해진다. 나 역시 공산품을 파는 자영업자로서 판매하는 제품이 쉽게 대체되지 않는 가치를 가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것은 아마도 많은 자영업자들이 바라는 것일 터다. 작품을 쓰는 동안 자신이 꾸준함과 고유함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는 한강 작가의 수상 소감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