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아주 어릴 때부터 착한 아이였다. 내가 손해를 볼지 언정 누군가의 감정을 상하게 하기 싫었고, 싫은 소리도 못하는, 말 그대로 착한 아이였다.
사람의 성격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어린 시절의 나는 그 성격 그대로 성인이 됐다.
늘 착한 친구, 자녀. 또는 애인이었지만 착한 성격 뒤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는데, 늘 나를 낮춰서 상대방을 배려했다는 거다.
“쟤가 나보다 더 잘 나가니까 이해해야지...”, “쟤가 나보다 더 나으니까 내가 넘어가야지”이런 마음들 말이다.
그렇게 생각할 때마다 내 자존감은 저항 없이 깎아져 내려갔다.
이런 성격으로 사회인이 됐고 20대 중반에 첫 직장을 갖게 됐다.
난 원래도 사람을 좋아하고 모임도 좋아하는 성격인데 회사에서는 늘 술자리가 생겼다.
친구들은 잦은 회식에 힘들겠다고 했지만 난 좋았다.
잦은 회식들 덕분에 입사한 지 5개월 만에 8kg이나 불어났다. 매일 퇴근 후 2차, 3차까지 이어지는 술자리 안주는 나를 무럭무럭 살찌웠다.
옷이 좀 작아진 것 같았지만 그냥 모른 척했다. ‘빨래를 잘못해서 옷이 줄어들었나 보다’하고 말이다.
그러던 중 친구들과 여행을 떠나 ‘야 너 진짜 이거 인생샷이다’라고 찍어준 사진을 봤는데 ‘이게 잘 나온 사진이라고...?’ 충격 그 자체였다. 후면 카메라로 보는 내 모습이 진짜 내 모습이라고 하는데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살이 쪄버린 것이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PT를 받아야 하나 생각했지만 돈을 들여 운동을 시작하면 운동에 쉽게 질릴 것 같았다.
‘돈이 안 드는 운동부터 해보자’해서 시작한 게 달리기였다.
달리기는 아무것도 필요 없었다. 굳이 필요하다면 운동화가 전부였다. 어플을 통해 시작한 초보용 달리기 프로그램은 총 8주짜리였는데, 처음에는 30초도 겨우 달렸다.
뛰었다, 쉬었다 하는 인터벌 러닝으로 시작해 8주가 지난 후에는 30분을 쉬지 않고 달릴 수 있게 됐다.
자신감도 붙었겠다, 달리기를 시작한 첫 해에는 마라톤을 두 번이나 나갔다. 기록도 만족스러웠다.
마라톤이 끝난 후에도 꾸준히 달렸다. 아침에 달리지 못하면 밤에 달리기도 하고, 주말에는 시간과 상관없이 여유롭게 달렸다.
밤에 달리는 것보단 아침에 달리는 게 좋았는데 해가 뜨는 모습을 보며 달리는 내 모습이 이 세상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 있다는 기분을 느끼게 해 줬다.
하루에 5km씩 달리는 게 당연해질 때쯤 달릴 때마다 차츰 생각 정리를 하고 있는 나를 보게 됐다.
땅을 밀며 한 걸음씩 나아갈 때마다 나에 대한 누군가의 평가, 상대방과 비교하며 깎여진 자존감, 묘하게 신경 쓰였던 그 사람의 말과 행동... 이런 것들이 앞으로 나아가는 내 뒤로 아주 작은 점처럼 멀어지는 게 느껴졌다.
그 뒤로 업무에서 또는 관계에서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달리기가 생각났다. 달리기를 할 때는 온전히 달리는 순간에만 집중할 수 있었고, 달리기를 끝마치고 나면 내가 했던 모든 걱정들이 별 게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무엇보다 더 이상 나를 낮추지 않게 됐다. 가장 나쁜 버릇 중 하나였던 누군가와 비교하는 버릇은 이제 그 사람은 그 사람대로 멋진 사람이고 난 나대로 멋진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이제 남과 비교해서 내 행복을 찾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않는다.
대신 땀을 흘리며 달리는 내 뒤로 그런 어리석은 생각들이 떠나가게 내버려 뒀다.
난 이제 내가 잘하고, 좋아하고, 어울리는 게 뭔지 아는 사람이 됐다.
달리는 내 모습이 멋지다고 생각했는데, 난 실제로 멋진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달리기에 빠지고 나서 건강이나 운동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사람을 만나면 늘 달리기를 추천했다. 언젠가는 ‘달리기만 한다고 살이 빠지냐’라고 말하는 사람을 만난 적도 있다.
“살만 빠지겠나요”라며 웃고 넘기지만 대부분 그런 사람들은 단 한 번도 달려본 경험이 없다는 건 ‘안 비밀’이다. 나는 얼마를 준다고 해도 달리기를 몰랐던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혹시 이 글을 보고 자존감에 흠집이 났거나, 복잡한 생각을 떨쳐버리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지금 당장 운동화를 신고 달려보시길 바란다.
달리기 가장 좋은 시간이 있다면 바로 달리기가 생각난 지금 이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