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꿈은 목욕이었다

by 아진

초등학교 6학년 무렵부터 난

할머니와 할아버지 밑에서 자라게 됐다

형편이 넉넉하지는 않더라도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사춘기를 겪는 나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분들이셨고

내가 사랑받는 손녀라는 것을 충분히 느끼게 해주셨다

단 하나 내가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건 냄새였다

할머니는 물건을 쌓아두는 버릇이 있었는데 얼마나 오래됐는지 모를 짐들 덕분에

집안 전체에 베여버린 묵은 냄새는 어떤 수를 써도 빠지지를 않았다

엄마와 함께 살 때는 섬유 유연제 향이 나는 옷을 입었다

빨래를 하면 어떤 냄새가 나는지 알고 있었지만 할머니 집은 빨래를 해도 그런 냄새가 나질 않았다

나는 그게 마치 내 명찰 같았다

조손가정 자녀.

엄마와 같이 살고 있었던 친구들한테서는 그런 냄새가 나지 않았으니까.

용돈이 생기면 탈취제를 가장 먼저 샀다

누군가의 향은 그 사람이 살고 있는 집에 가면 똑같은 향이 난다

이제는 '내 냄새'가 돼버린 그 냄새를 가리기엔 탈취제는 소용 없었다.

옷에서는 냄새가 나더라도 자주 씻을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안타깝게도 우리집은 보일러를 넉넉히 틀 수 있는 형편이 안됐다

집은 너무 추워서 한겨울에는 세 겹씩 옷을 입고 지내야 했다

나는 매일 상상했다

언젠가 내가 어른이 된다면

내가 쓰고 싶은대로 돈을 쓸 수 있을 만큼 돈을 벌어

매일 밤 따뜻한 물로 샤워를 마치고 소파에 앉아서 우유를 마시는 내 모습을 말이다.

그때는 그런 내 모습이 아주 부자가 돼야지만 이룰 수 있는 아득한 꿈처럼 느껴졌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타지로 나와 생활한지 벌써 수 년이 지났다.

이제는 '내 집'이라고 부를 수 있는 전셋집이 생겼고, 여기에서는 따뜻한 물에서 몇 번이고 씻을 수 있다.

빨래에서도 이제는 섬유유연제 향이 난다.

더 넓은 집으로 이사를 오고 처음 내 돈으로 산 소파에 누웠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진짜 샤워를 마치고 소파에 누웠구나'

마음이 마구 벅차올라 소파에 누워 한참을 울었다

이제는 매일 샤워를 마치고 소파에 앉아서 쉬지만 이 자연스러운 모습이 나에겐 아주 먼 옛날부터 간절했기에 더 감사했다

지금은 또 다른 꿈이 생겼다.

멋진 야경이 보이는 곳에서, 전셋집이 아닌 진짜 내 집에서, 아주 좋은 스피커로 재즈를 듣는 내모습이다.

그때의 나는 힘들었지만,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 생각은 나의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고 지금의 내가 됐다.

다음 꿈을 이뤘을 때도 지금의 내가 고마울 수 있도록 단단한 마음을 가지고 차근차근 자라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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