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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플지기 May 26. 2022

계란말이가 물란말이? 폭리를 취하는 계란말이집의 진실

계란 마는 프로의 공임은 얼마인가.

안녕하세요, 전국 10만 명 자영업자분들의 멘토로 활동 중인 주식회사 창플 한범구 대표입니다.

☞ https://brunch.co.kr/@15ea0603649c465/1




자동차를 수리할 때 생기는 공임비라는 것이 있다.  

때론 부품비보다 공임비가 더 나오기도 한다.  

쉽게 교체되는 부분은 공임비가 적겠지만 난이도가 있는 부분은 더 나오기 마련이다.  

수리 기사의 클래스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같은 시간이라도 초보는 최저시급이지만 숙련 기사는 더 많이 받는 식이고 업장마다 공임비도 천차만별이라 딱히 뭐가 정답이라고 할 순 없다.  

그렇기에 부품 값이 5만 원인데 공임비가 10만 원 나왔다고 해서 폭리 취했다고 따지진 않는다.  

대체로 그렇구나, 그 정도이구나 한다. 공임을 정하는 건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외식업계에서 이 '공임비'를 무시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일명 '물란말이' 사건이다. 계란말이에 물을 엄청 넣었다고 물란말이라 비꼬아 부르는 것이다.  

원래는 서초동의 '장꼬방'이라는 오래된 김치찌개 집에서 파는 계란말이인데 이것이 가게의 명물이다.  

철판 위에 얇은 계란물을 활짝 펼쳐 익혀서 철 주걱으로 한 번에 말아 밀푀유 같은 겹겹의 조직을 가진 계란말이다. 얇게 펼쳐야 하기에 물을  섞어야 하고 이 때문에 색깔이 좀 옅다.  

비꼬아 말하는 사람들은 오래된 철판에서 철 성분이 나와서 철분이 많다고도 하고, 야채도 많이 안 들어가고, 계란에 물을 탔으니 원가는 낮은데 그 가격을 받는 것은 순전히 사기다, 거저 빤다는 식으로 멘트를 던지곤 했는데 이것이 고발성 사건으로 불거졌던 것이다.


장꼬방의 계란말이는 물이 어느 정도 들어가야 얇게 펼 수 있고, 야채가 없어야 얇게 잘 말리고, 얇은 층이 여러 겹으로 쌓여야 그 식감이 나게 된다.  

핵심은 바로 막 한 것이어야 그 맛이 난다는 것이다.  

막 해 놓은 계란말이는 탱탱하게 부푼 채로 맛있는 향을 풍기지만, 해놓고 한참 있으면 계란층 사이를 폭신하게 지탱하고 있던 뜨거운 증기가 빠지면서 숨이 죽어 더 이상 먹음직스럽지 않을 뿐 아니라 그만의 독특한 식감도 줄어든다.

이런 음식은 역시 바로 먹어 줘야 그 맛이 제대로 나는 것이다.  

그것이 장꼬방의 계란말이가 8천 원인 이유다.  

주문이 들어와야 제조가 들어가는데 이것이 바로 외식업에서 당당히 '공임비'로 청구되어야 할 포인트다.


대구에는 참 맛있는 기사식당이 많은데  

그중에서 최고로 손꼽히는 기사식당 한 곳은 계란 프라이를 바로 해서 내놓는다.  

그 옆집의 기사식당도 계란 프라이를 주긴 주는데, 바로 해주는 것이 아니라 미리 해놓는다.  

이것이 두 곳의 기사식당을 판가름할 수 있는 엄청난 차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기껏해야 '계란 프라이'지 않은가.

이렇게 한 사람 한 사람 바로 해서 주려면 무조건 계란 프라이 전담 이모님 한 분이 계셔야 한다.  

'기껏'이라고 얕잡아 부르는 계란 프라이 하나 때문에 사람 한 명을 더 써야 하는 것이다.  

계란 프라이 전담 이모의 하루 일당 10만 원이라고 쳐보자.  

손님 200명이 와서 계란 프라이를 먹는다면 10만 원을 200개로 나누면 계란의 원가 이외에 프라이 한 개당 500원의 인건비가 들어가는 것이다.  

계란 한 알에 200원인데, 500원 공임비가 들어간다는 것.


가성비 좋다고 소문난 한식 뷔페집을 가면 이것저것 메뉴가 다양하고 푸짐한데  

이런 곳의 특징은 손님이 올 시간보다 훨씬 전, 새벽부터 나와서 반찬을 미리 준비해놓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수십 개의 반찬이라도 사람을 많이 쓸 필요가 없어서 공임비가 크게 들지 않는다.  

홀 서빙 직원도 많이 필요치 않으니 한식뷔페에는 직원들이 많지 않다.  


베이커리도 비슷하다.  

손님이 와서 주문하는 대로 그때부터 빵을 만드는 게 아니라 미리 만들어 놓는다.  

빵이 많이 나가면 좀 더 일찍 나와서 많이 굽고, 더 많이 나가면 오후 2시쯤에 다시 또 한 번 구우면 되기 때문에 직원 한두 명으로 가능하다.  

만약 손님이 주문하는 대로 바로 만들어 주는 빵이 있다면 당연히 비싸질 것이다.


천 원 김밥을 그 가격에 팔 수 있는 이유도 미리 만들어 놓기 때문이다.  

미리 만들어놔야 하기 때문에 종류도 많지 않다.  

꼬마김밥이 싼 이유도 미리 아침에 해놓고 냉장고에 넣어 둘 수 있어서다.  

차가워도 괜찮기 때문에 주문 들어오면 참기름 바르고 깨만 뿌려서 나갈 수 있다.


그에 비해 '바르다김선생'같은 프리미엄 김밥집은 어떠한가?  

주문이 들어오면 바로 만들어 나가는 방식이다.  

손님이 한 명씩 차근차근 들어와 주는 것도 아니고, 한 번에 몰려버리거나 30개 단체 주문은 바로 해달라고 하면 손끝에 불이 나도록 말아야 한다.  

10명의 손님이 10개의 메뉴를 부를 수도 있다.

"와사비 참치 김밥 하나, 크림치즈 호두 김밥 하나, 매콤 장아찌 김밥 하나, 새우튀김 김밥 하나, 돈가스 김밥 하나 … 주세요!"

뭐든 즉석에서 바로 시작하려면 그만큼의 공임비가 들기 마련이다.   

백화점 식당에 가면 그 좁은 주방에서 10명 가까이 일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그렇다면 장꼬방 계란말이를 다시 생각해 보자.   

'물란말이'라며 조롱당한 그분들은 어떤 마음일까?  

관련 영상을 한 번 보면 몇 년에 걸친 고수들, 프로의 작업이란 것을 대번에 알 수 있다.  

알바에게 교육 잘 시킨다고 나올 수 있는 계란말이가 아니다.  

최적의 계란말이를 만들기 위해 알맞게 농도를 맞추고 최적의 타이밍과 빠른 손놀림으로 계란을 말아 최고의 식감을 선사하는 프로의 계란말이는 기껏 1~2분 이면 완성된다.  

또 완성되자마자 후다닥 손님상으로 내 가야 한다.

사람들은 기껏 1~2분 만에 만드는 계란말이를 8천 원이나 받아먹느냐고 하기도 한다.

 

만약에 치과에 가서 충치를 뽑는데 의사 선생님이 2초 만에 충치를 뽑았다면 "2초 만에 끝나는 걸 몇 만 원씩이나 받습니까?"라고 의사에게 항의할 것인가?  

이런 환자를 본 의사라면 '이 녀석 1시간 동안 슬로우 모션으로 천천히 뽑아줄 걸 그랬다'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물란말이라고 혹평 받는 그 일을 하시는 분이 없다면 장꼬방은 앙꼬 빠진 호빵이 되지 않을까 싶다.   

정말 숙련된 누군가가 해야만 되는 일이라 리스크 큰일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다른 사람이 하면 맛이 달라지기 때문에 마누라한테도 못 맡기는 일이다.  

이런 일은 티는 별로 나지 않으면서 우직하게 해내야만 하는 일이기에 해낼 수 있는 사람 자체가 귀하다. 그만큼 공임비 비중이 큰 것이다.


근래에 요리 프로그램도 많이 생기고, 직접 해 먹는 문화도 생기고, 직접 음식 재료를 사서 음식 원가까지 알게 되는 시대가 되다 보니까 태클 거는 일이 많아졌다.  

자기가 직접 할 수 있는 음식들이 많아지니까 나도 좀 할 줄 안다 이런 식으로 접근해서 1차원적인 해석을 하는 사람들이 생기니 이런 답답한 사건이 생기고야 말았다.

다른 건 몰라도, 자영업자라면 고수들의 공임비는 제대로 알아보고 평가해야 한다.   

시간이 된다면 장꼬방에 가서 김치찌개와 계란말이를 먹으며 자영업자들의 공임비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좋겠다. 게다가, 장꼬방의 계란말이는 정말 맛있으니까!



다른 사람이 하면 맛이 달라지기 때문에 마누라한테도 못 맡기는 일이다. 또 이런 일은 티는 별로 나지 않으면서 우직하게 해내야만 하는 일이기에 해낼 수 있는 사람 자체가 귀하다. 그만큼 공임비 비중이 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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