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가평여행이었다. 우리 아이들과 같은, 9살, 6살의 형제가 있는 친구네와 1박2일 여행을 다녀왔다. 두어번 같이 놀러간 적은 있지만 여행은 처음이라 살짝 긴장했다. 다행히 오랜만에 만난 아이들은 즐겁게 뛰놀았고 덕분에 엄마, 아빠들도 여유롭게 대화를 나누며 쉴 수 있었다. 잠 잘 시간이 되자 어디서 잘지 결정하던 중, 친구가 아이들에게 “너희 넷이 같은 방에서 잘래?”라고 물었다. 한번도, 단 하루도 떨어져 자 본적 없는 아이들이기에 당연히 “아니요, 무서워요” 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신나하며 “네!!”라고 외쳤다. 요 4장, 이불 4장을 깔고 쪼르륵 누워 낄낄대는 통에, 오히려 떠들면 엄마, 아빠랑 자야한다는 협박으로 재웠다. 아이를 낳고 처음으로, 9년만에 남편과 단 둘이잠들었다.
놀라운 일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일어났다. 돌아오는 차에서 둘째가 “엄마, 집에 가서도 저 혼자 잘래요.” 라고 말해버렸다. 겁많은 첫째는 당황했다. 계속 “정말? 너 정말 혼자잘거야? 혼자잘 수 있어?” 동생에게 물어보았다. 그날부터 어찌저찌 하다보니 아이들은 아이들방에서 자게 되었다. 두번째 밤 따로 자다 새벽에 안방으로 온 첫째를 데리고 남편이 아이들방에서 잠들었는데 그 이후 남편도 아이들 방에서 자게 되었다. 아이들에게 치이고 눌리고 맞고 자다 갑자기 큰 안방에 덩그라니 혼자 자게 되었다. 얼떨떨하다. 이게 꿈이야 생시야 싶다.
사실 아이들을 따로 재워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불편했다. 마음 한구석이 켕기는 느낌이었다. 얼마전 둘째 유치원에서 실시한 부모교육 강사님이 “아이가 10살이나 되었는데 아직도 아이와 같이 자는 집 있습니까? 그러시면 안됩니다. 독립시켜야 합니다.” 라는 말을 듣고는 더 마음이 초조해졌다. 아이들에게, 특히 첫째에게 언제부터 따로 잘건지 계획을 세우라는 둥, 엄마, 아빠와 언제까지나 같이 잘 수 없다는 둥의 뻐꾸기만 귀에 딱지가 앉도록 날렸다. 이층침대가 있으면 따로 잘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에 초등학교 입학선물로 이층침대도 샀건만 아이는, 태어나서 엄마와 떨어져 자본 적 없는 아이는, 100살 되면 떨어져 잔다고 했었다.
아직도 아이들과 떨어져 자는 생활이 어색하다. 아이들 잠자리 독립을 시키면 후련하고 신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섭섭한 마음이 더 크다. “언제까지 이 방에서 자야해요?” 라고 묻는, 아직도 떨어져 자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큰 아이를 볼 때면 마음 한구석이 짠하고 아리다. 여름방학동안은 에어컨이 있는 안방에서 다시 다 같이 잘까 하고 마음이 약해지기도 한다. 오히려 주변의 엄마들이 이왕 시작한거 계속해야한다고, 다시 같이자면 또 언제 떨어져 잘 수 있을지 모른다고 성화다.
떨어져 자게 되면서 아쉽고 어색한 마음 외의 삶은 질은 완전 상승했다. 일단 자유시간이 늘어났다. 9시경 아이들을 재운다고 누웠다 잠들어버리는 일이 다반사였다. 일어나면 잃어버린 나의 자유시간이 아쉬웠다. 지금은 아이들이 잠들 때 까지 옆에 있어주긴 하지만 그 사이 이렇게 글도 쓰고, 책도 읽으며 자유시간을 누리고 있다. 아이들 때문에 중간에 깨는 일이 없으니 수면시간이 줄었어도 수면의 질을 좋아져서 자고 일어나면 상쾌하다. 기상시간에 눈이 바로 떠지는 신기한 경험을 하고 있다.
얼마나 갈지 모르는, 아직은 불안불안한 아이들의 잠자리 독립. 아예 독립시키는 것도 아니고 옆방에서 자는 것 만으로도 많은 생각을 하게된다. 따로 재우면 매정한 엄마일까봐 걱정스럽고 같이 자면 아이를 독립 못시키는 의존적인 엄마일까봐 또 걱정스럽다. 참 걱정도 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