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기일

by 김삼일

오늘은 3년전 돌아가신 아버지 기일이다. 그간의 아빠 기일에 무얼 했는지 도무지 생각나지 않는다.


나의 아빠는 무뚝뚝하고 술을 좋아하는 경상도 남자였다. 대부분은 먼저 말을 하는 법이 없었으나 성격이 불같아 버럭 화내거나 고함을 지를 때는 많았다. 그런 아빠가 무서웠지만 그럼에도 나의 아빠였기에 좋았다. 3층 빌라에 살 때 계단을 올라오는 아빠의 비염 가득한 킁 소리가 들리면 아빠를 맞으러 다다다 현관으로 뛰어갔다. 그러면 집에 들어온 아빠는 양말을 벗어 “선물이다” 하고 나와 동생에게 주었다. 우리가 놀다놀다 집구석 어딘가에 쓰러져 잠들면 우리를 안아 이불 위에 눕히는 것도 아빠였다. 그때 아빠에게 안기는 느낌이 좋아서 자는척 하곤 했다.


이런 훈훈하고 아름다운 추억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은 데면데면한 부녀사이였다. 무뚝뚝한 아버지와 애교없는 딸은 안녕히 주무셨어요, 다녀오세요, 다녀왔습니다, 안녕히 주무세요 같은 인사말 외에는 별로 말을 섞지 않았다. 때로 술취해 혀가 꼬부라진 아빠가 우리를 앉혀놓고 들려주는 아빠의 개똥철학이 우리 사이 대화의 대부분이었다. 그 때는 그 시간이 참 싫어서 잠든 척 하기도 했었는데 돌아보니 참 고마운 시간이 되어버렸다.


기고만장하고 빳빳했던 우리 아빠가 내가 뉴질랜드로 떠난 2012년 경부터 약해지기 시작했다. 운전을 힘들어했고, 걷다가 갑자기 휘청대곤 했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아빠도 나이를 먹나보다 생각했다. 하지만 아빠는 갈수록 몸을 가누기 힘들어했다. 2년후 아이를 낳고 한국에 잠깐 들어왔을 때 아빠의 힘빠진 모습을 보고 조용히 놀랐다. 밥먹을 때 젓가락과 숟가락이 덜덜 떨렸으며 지팡이를 짚고 걸었다. 5년후 우리가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아빠는 기저귀를 찼고 그 후로는 목에 구멍을 뚫고 식사를 주사로 맞는 생활을 하게 되었다. 엄마와 두 동생들은 10년을 점점 시들어가는 아빠를 간병했다. 힘은 없지만 성질머리는 남아있던 우리 아빠는 베개를 던지거나 동생의 머리끄댕이를 잡기도 했다.


외국에 있다는 핑계로, 또 아이를 키운다는 핑계로 나는 철저한 방관자였다. 도울 수 있는 방법도 몰랐고, 알아보려 노력도 하지 않았다. 엄마가 아빠한테 묶여있어도, 동생들이 퇴근 후 지친 몸을 끌고 아빠 몸의 상처를 소독하고 드레싱해도 나는 내 안위가 우선이었고, 내가 힘든 게 젤 아팠다.


어찌보면 아빠의 죽음은 정해진 수순이었다. 10년을 그렇게 아파갔던 아빠는 어느 날 자고 일어나보니 조용히 숨이 멎어있어다. 집에서 돌아가셨기에 경찰이 왔고 구급차가 왔다. 동생의 전화를 받고 무슨 일인가 웅성거리는 사람들 사이로 관계자가 되어 사건 현장이 되어버린 우리 집에 들어갔다. 동생 얼굴을 보자마자 울음이 왈칵 쏟아졌다. 꺼이꺼이 우는 건 이런 거구나. 동생을 끌어안고 울었다. 아빠의 얼굴은 참 평안해 보였다. 그렇게도 병원을 들락날락해도 끈질기게 버텼던 우리 아빠는 그렇게 조용하게 세상을 떠났다. 그 전날 갑자기 아파트 단수가 되어 들러 본 아빠 모습이, 나 집에 갈게요 하고 말하니 웃으며 손 흔들어주던 아빠 모습이 마지막이었다.


철없게도 나는, 이기적이게도 나는, 아빠가 죽으면 다른 가족들의 삶이 편해질 줄 알았다. 이제 그 지긋지긋한 병간호에서 벗어나 엄마도 훨훨 날아다닐 수 있을 줄 알았다. 동생들도 여유로워 질 줄 알았다. 철저한 방관자였던 나는 눈도 꿈쩍 안할 줄 알았다. 하지만 일년을 엄마는 울고 울었다. 별일 아닌 거에도 울고 짜증을 냈다. 동생은 심리 상담을 한동안 받았다고 뒤늦게 말했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갔지만 가끔씩 나도 모르게 오열을 했다.


작년, 재작년 기일에는 무엇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올해 기일을 앞두고는 괜시리 가슴이먹먹했다. 어제는 가족들과 식사를 했다. 보통의 식사였다. 아빠 얘기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무언가 아빠에 관한 이야길 헤볼까 하다가 말았다. 눈물을 멈출수 없을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와 아이들을 재우고 와인을 마셨다. 평소보다 더 마셨다. 웬지 아빠 기일을 핑계로 술을 마셔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조용히 잤다. 오늘은 아무 것도 못할 것 같아 평소하던 운동을 취소했다. 아이들을 보내고 우두커니 침대에 앉아 핸드폰 오락을 했다. 영혼이 없는 사람처럼 앉아서 테트리스를 했다. 아이들이 돌아오고 정신없는 오후를 보내다보니 먹먹한 감정이 조금씩 사그라들고 이렇게 하루를 버텨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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