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갈
'롱테이크'라는 유튜브를 요즘 즐겨 보고 있다. '지식Play'로 유명한 김지윤 박사와 그녀의 친구 전은환 씨가 이런저런 주제로 이야기하는 내용이 주가 되는 프로그램인데, 이 프로그램에 너무 빠진 나머지 지난 팟캐스트 에피소드들도 찾아서 챙겨 듣고, 또 듣고 하는 정도가 되었다. 이 프로그램을 보고 들으면서 놀라는 것은 이 두 여인의 방대한 지식과 세련된 유머인데, 아무리 검색 엔진의 도움을 받는다 해도 한 주제에 관해 저렇게 심도 깊은 썰을 풀 수 있는 두 분의 지적 면모에 감탄에 감탄을 하게 된다. 이제 40중반을 넘어 50을 달려가는 나에게 단연코 롤모델이 되어준 두 분이다. 김향안과 김환기, 마리아 칼라스와 재클린 오나시스, 반 고흐, 페기 구겐하임, 메리 스튜어트와 엘리자베스 여왕 등등 다양한 분야의 흥미로운 인물들에 대한 뒷이야기를 듣다보면 나도 몰래 뭔가 유식해진 마음이 들면서 이런 똑똑해진 내가 웬지 그냥 혼자 멋있어진 느낌에 슬그머니 변태스럽게 미소짓게 하는 프로그램이다.
특히나 이 팟캐스트를 통해 팬이 된 전은환 씨의 미술에 대한 관심과 지식, 흥미로운 뒷 이야기들 덕분에 다시금 미술 전시에 가고 싶은 생각이 슬금슬금 들어 친구와 함께 예술의 전당 마르크 샤갈 특별전에 다녀왔다. 얼마만의 예술의 전당이던가. 에르베 튈레의 색색깔깔을 보겠다고 아이 둘을 데리고 다녀온 이후 처음인듯 했다. 아이 교육이 아닌 성인의 문화 생활이 참으로 오랫만이었다. 경기도에서 버스를 타고 서울로 혼자 가는 길은 왜 이리 설레는지. 30분이면 가는 서울이건만 왜이리 서울 들어가는 길은 알 수 없는 장벽에 막혀있는 느낌인지. 경부고속도로의 휑한 벌판조차 혼자 타고 가는 버스에서는 운치있게 느껴지는지.
샤갈은 처음 작품을 접했을 때 부터 이 작가를 사랑하게 되겠군 이라는 생각이 든 작가였다. 이 작가의 이름을 기억해야겠군 싶었던 작가였다. 자신의 부인과 둥둥 떠다니는 모습, 커다란 닭인지 비둘기인지 모를 새 앞에서있는 신랑과 신부의 모습, 고개를 꺾고 사랑하는 여자에게 키스하는 모습. 기존에 미술책에서 봐왔던 그림들과 뭔가 달랐다. 색감이 아름다웠고, 꿈을 꾸는 느낌이었다. 그 이후 고흐, 클림트, 모네 등등의 많은 화가들의 그림을 보았고, 좋아하게 되었지만, 개인적으로 샤갈은 첫사랑 같은 느낌이 있다.
이번 전시에서 샤갈의 소위 제일 잘 알려진 작품들을 보진 못했지만, 그럼에도 그의 작품들은 아름다웠고, 인터넷 상의 사진으로 보던 그림을 실제로 보았을 때의 특별함, 감동, 울림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파리 오페라 가르니에의 천장과 하다사의 스테인드 글라스는 직접 그 장소로 가서 그의 작품을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작품들이었다. 달걀 흰자 등의 염료를 이용하여 질감이 느껴지는 작품들 앞에서 AI가 아무리 미술 작품을 카피한다 해도 이런 느낌까지 따라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파리 위의 신부 라는 커다란 작품 앞에서 작품들에도 영혼이 있는 것인가. 무엇이 이 작품을 이렇게 아름답게 했을까. 시간만 허락한다면 이 작품을 하염없이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왜 예술작품을 감상할까? 나는 왜 경기도에서 버스를 타고 예술의 전당까지 와서 전시를 보고 감동하는가? 단순히 아름다움을 보고 감탄하는 것인가? 허영인가? 문화생활을 하고 있다는 자기만족인가? 챗지피티는 철학적 관점으로 존재의 의미와 진리 탐구, 심리적 관점으로 감정 해소, 자기 이해, 공감, 사회적 관점으로 소속감, 문화적 코드, 계급, 진화적 관점으로 생존, 적응, 유전적 이점, 미학적 관점으로 본능적 쾌락, 패턴의 즐거움 때문에 인간은 예술 작품을 향유한다고 설명했다.
알래드 보통은 그의 책, '영혼의 미술관: 예술은 우리를 어떻게 치유하는가'에서 예술의 일곱 가지 기능으로 기억, 희망, 슬픔, 균형회복, 자기 이해, 감상을 꼽았다. 내가 샤갈전에서 그의 작품들을 보고 감탄한 것은 사랑에 대한 기억, 희망, 자기 이해, 감상이라는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을 듯 하다. 하지만 전시회의 그 울림을, 떨림을, 그리고 전시회에 들어가기 전의 나와 전시회를 보고 나온 나의 달라진 무언가, 바뀐 무언가를 설명하기란 쉽지 않을 듯 하다. 그럼에도 무언가를 느꼈고, 말 못할 방식으로 영향을 받았고, 변화가 생겼다., 여전히 아이들을 학교 보내고, 집안일을 하고, 아이가 학교에서 벌인 일들로 속을 썩이고, 답답한 남편 뒤에서 한숨을 쉬고, 일상의 지지부진함에 지루해하기도 하는 아줌마이지만 이런 일상에 예술은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음에는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