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붉은여우 Oct 31. 2023

나는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지 못할 거예요.

 휴대전화기를 두고 아침 산책을 했더니 그사이 전화가 와있었다. 부재중 전화에 이름이 저장되지 않은 발신자 번호가 찍혀있었다. 퇴사한 이후로는 처음 보는 번호로 걸려 온 전화는 받지 않았다. 부재중 전화가 왔어도 전화를 걸어 누구인지 어떤 일로 전화를 했는지 확인하지 않았다.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면 모르는 번호의 전화도 받았었다. 명함을 주고받았던 사람도 많았고, 지인을 통해 전화번호를 알아내서 이런저런 비즈니스를 해보자는 전화도 많았다. 혹시라도 전화를 받지 않아 좋은 비즈니스 기회를 놓칠 수도 있었기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어도 반드시 통화를 해야 했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아니다. 누군가에게 전화번호를 새롭게 알려줄 이유도 없어졌고, 모르는 전화번호로 확인 전화를 걸 필요도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걸려 오는 전화도 없어졌다. 나를 찾을 사람도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대게 모르는 번호는 잘 못 걸려 온 전화였다. 이 부재중 전화도 잘못 걸린 전화라고 생각했다.


 외출 준비를 다시 하고 영화관으로 향했다. 좋아하는 배우가 형사역으로 출연한 영화를 선택하고, 좌석번호가 적힌 자리에 앉아 전화기를 잠시 꺼두었다. 독립영화인데도 상영관에는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다. 영화는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소녀가 주인공이었다. 춤추는 것을 좋아하던 밝은 소녀가 대기업 콜센터로 현장실습을 갔다가 끝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다는 이야기였다. 욕설이나, 폭언과 같은 정신적 스트레스, 실적에 대한 압박, 잘못된 직장문화를 따라야 하는 부담 등이 그녀를 어둡게 만들어 갔다. 회사생활의 어려움에 대해 선생님과 상의해 보았지만, 소녀에 대한 걱정보다는 학교의 취업률을 높여야 하므로 참고 견디라고만 했다. 어른들과 학교로부터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소녀는 끝내 세상과 이별을 한다. 한 형사가 사건을 맡아 조사한다. 하지만 소녀가 부족해서 벌어진 일로 치부해 버리는 것 등을 보고 형사는 결국 사회에 분노하게 된다는 내용이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음에도 소녀의 죽음 이후에도 사회는 변하지 않았다.


 영화를 보고 난 뒤, 내가 담당했던 부서 중 고객을 직접 응대했던 고객만족팀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기록을 위해 녹음된 내용 속에 남겨졌던 폭언과 욕설은 영화 속 내용과 비슷했었다. 하지만 고객을 응대하던 직원이 받았을 상처를 보듬어 줄 시스템은 어떤 것도 없었다. 대부분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일이라 생각했었고 회사의 관심도 적었다. 심리치료 프로그램을 도입해 봐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실행에 옮기기도 전에 나는 그 부서와 이별을 해야 했다. 해준 것 없이 떠나야만 했기에 다시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제품 개발과 마케팅을 담당하기 전 나는 생산 부문에도 근무했었다. 생산 부문은 영화 내용처럼 고등학교 신분의 현장실습생도 많이 뽑았다. 회사에 어린 실습생들이 어렵지 않게 그리고 빠르게 적용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장치들이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매출의 압박과 촉박한 생산 일정은 그들도 평일 시간 외 근무와 주말 근무를 하도록 만들었다. 배려보다는 납기일정을 맞추어 생산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것은 다른 직원들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업무를 지시하는 사람으로 그 속에 있었다. 영화 속 어른의 한 명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부끄럽기도 했고 마음이 아팠다.


 불편하고 무거운 마음을 안고 영화관을 나오며 휴대전화를 켰다. 앞서 부재중 전화로 왔던 동일한 번호가 두 번 더 찍혀 있었다. 잘 못 걸려 온 전화가 아닌 것 같았다. 궁금함이 통화 버튼을 누르게 한다. 낯선 목소리가 나를 맞이해 주었다. A선배다. 대학 동아리 선배지만 친분이 많지 않았다. 졸업 후에도 교류 없이, 조그만 회사를 창업했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가 선배가 운영하는 회사 생산 부문에 도움을 주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꺼냈다. 생산 부문 현 상황에 대한 설명과 도움이 될 만한 내용들도 말해 주었다. 제안을 생각해 보고 답을 주겠다고, 연락해 줘서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통화를 끝냈다.


생산 부문 업무를 떠나 오랜 공백이 있었지만, 당장 제안받은 일을 한다고 어려울 것도 없었다. 익숙한 일이었고 누구보다도 잘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일을 잘한다는 것은 매출과 납기를 맞추던 과거의 일을 능숙하게 한다는 의미였다. 그것은 다시금 과거의 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고, 영화 속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내키지 않았다. 그 일을 다시 하는 나의 모습에 강한 불쾌감이 느껴졌다. 다시는 하지 말라고 마음이 이야기하는 듯했다. 답변을 오래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선배 미안해요.

사람들에게 예전처럼 일을 시키지는 못할 것 같아요.

나는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지 못할 거예요.

작가의 이전글 어느 배우가 만들어준 변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