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붉은여우 Oct 10. 2023

키오스크 사용 실수와 반성

빠르게 변하는 문명의 속도에 적응하기

 얼마 전 서울역 근처에서 여행 다큐와 관련한 특강이 있었다. 다큐 분야는 사진의 작품 주제와도 연관되어 있어서 관심 분야이기도 했다. 강의장에 들어와 보니 얼마 전까지 함께 여행작가학교에 다니던 동기들이 몇 사람 참석해 있었다. 공통 관심사 때문에 이렇게 우연히 만난다는 것도 신기한 일이었지만, 무엇보다 졸업 후에 자주 볼 수 없었기에 만남 자체가 반가웠다.

 특강이 끝난 뒤 누군가 함께 차 한잔하자고 제안했다. 그냥 헤어지기가 아쉬워서인지 모두 흔쾌히 동의해 주었다. 먼저 교육 장소가 있는 서울역 근처의 카페를 찾았다. 역 앞에 넓은 카페가 있었지만, 너무 소란스러웠다. 게다가 여러 명이 함께 앉을만한 자리도 없었다. 결국 서울역사 내부에 있는 카페로 가기로 했다. 하지만 서울역 카페들은 이미 문을 닫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영업 종료 시각이 함께 앉아 이야기하기에는 너무 짧았다. 게다가 우리가 필요로 하는 자리도 없었다. 몇 군데의 카페를 더 들러보았지만 결국 찾은 곳은 햄버거 가게였다. 일반 카페들과는 달리 늦게까지 영업했다. 다행히 우리 일행이 앉을 수 있는 자리도 있었다.


‘아이스크림 네 개, 커피 두 잔(찬 것과 뜨거운 것), 햄버거 한 개’

늦은 저녁이라 커피보다 아이스크림 주문이 많았다. 혹시라도 잊을까 봐 휴대전화 메모 기능에 주문을 기록하고 매장 한쪽에 있는 키오스크로 향했다. 키오스크가 안내하는 대로 주문을 시작했다. 햄버거 가게의 키오스크 화면은 익숙한 화면이 아니었다. ‘커피/아이스크림’이라고 표시된 메뉴가 가장 먼저 보였다. 메뉴를 누르니 다시 상세 메뉴가 나왔다. 컵에 아이스크림이 담긴 사진이 보였다. 사진을 눌러 아이스크림을 선택했다. 카페인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을 선택하라는 안내가 떴다. 잘 시간이 가까우니 카페인은 빼야겠다고 생각하며 카페인이 없는 메뉴를 선택했다. (아이스크림에 카페인이 있는지 아닌지를 물어보는 것이 맞는가? 이때 주문을 잘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나머지 메뉴도 선택하고 안내에 따라 결제까지 무사히 마친 뒤, 테이블로 돌아와 자리에 앉았다. 일행 중 누군가 재미있게 농담을 건넸다.


“키오스크를 쓸 줄 모를 것 같아 따라갈까 했어요. 호호호”

“저 아직 그렇게 나이 많지 않아요. 평상시에도 많이 써봤어요. 하하하”


웃음으로 맞장구를 치며 일행과 졸업 후 지내왔던 이야기들을 잠깐 나누었다.


‘딩동’.

 주문한 메뉴가 나왔다는 알림을 받고, 제품들을 받아 조심스럽게 들고 일행이 있는 테이블로 가져왔다. 아이스크림을 주문했던 분들에게 하나씩 전달해 드릴 때였다.


“어! 이것은 아이스크림이 아닌데요. 혹시 주문이 잘못된 것이 아닐까요?”

 “네? 제대로 주문했는데요.”

“이건 아이스크림 커피 같아요.”

“아이스크림은 이것밖에 없었어요. 이상하다. 메뉴 다시 확인해 볼게요.”


 고개를 갸우뚱하며 키오스크로 가서 다시 한번 주문했던 순서대로 화면들을 눌러보았다. 이상은 없었다. ‘커피/아이스크림’ 항목을 누르면 앞서 주문할 때의 화면 그대로 나타났다. 가장 위에, 컵에 아이스크림이 담긴 사진이 보였다. 주문을 잘못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다시 처음부터 순서대로 진행해 보았다. 그때 잘못된 것을 발견했다. 아이스크림이라 생각했던 사진 아래에 '아이스크림 라테'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본 것이다. 그림만 보고 아이스크림이라 생각하고 아래에 적힌 메뉴 이름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주문한 것이 화근이었다. 기계는 다를 줄 알았지만, 머릿속에서 잘못된 판단을 하고 자세히 내용을 들여다보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원래 주문해야 할 아이스크림은 디저트 메뉴에 있었다.


‘우리 모임에 키오스크 학습반 개설이 필요한 것 같아요. 까르르’

‘아래 직원에게 시키기만 하고, 직접 안 해봐서 그런가 봐요. 하하하’

‘안경 쓰셔야겠어요. 노안으로 글씨가 안 보였나 보다. 호호호’


 나의 실수를 비난하기보다는 재미있는 농담과 웃음으로 무마해 주셔서 고마웠다. 그리고 잘못 주문된 메뉴가 있었지만 남은 시간 즐거운 대화들로 그날 만남을 마무리했다. 지금도 그 순간을 떠올리면 모두에게 미안한 마음이 크다. 새로운 문명에 잘 적응하고, 사용도 잘한다고 생각했지만, 조금 더 신중하지 못했던 것을 반성해 본다.


 키오스크로만 주문을 받는 곳이 많아졌다. 키오스크 사용이 많아졌음에도 여전히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키오스크를 사용해 주문하면서 몇 번을 실패하고, 어찌할 바를 몰라 화내는 분들도 보았었다.

 흔히들 세상이 너무 빠르게 변한다고 한다. 그 속에서 새로운 문명을 하나씩 배워간다. 하지만, 그 문명에 익숙해지기도 전에 새로운 것들이 나온다. 적응할 시간조차 주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스스로 빠르게 변화에 잘 대응한다고 생각하지만, 아직 체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영역의 문명들은 너무 많다. 새롭게 바뀌는 문명들은 안주를 허락하지 않는다. 더욱 새로운 것들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삶이 뒤처진다고 경쟁을 부추기는 듯하다.

 하지만 그렇게 따라가는 것만이 좋은 것일까? 그 속도를 따라가면서 놓치고 있는 내용은 없을까? 내가 실수했던 것처럼 조금 더 신중하게 들여다보아야 할 것들은 없을까?


속도와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잠시 머물고 싶다.

오늘은 재래시장에 반찬이라도 사러 가봐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버려진 것들의 고독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