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 알레르기를 가진 아이와 함께 한 10년의 세월
아이가 8개월쯤 됐을 때 알게 된 계란알레르기... 사실 처음에 알게 되었을 때는 계란알레르기는 보통 5-6살이면 좋아진다고 해서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었다. 두 돌이 되면서 기관에 보내야 할 때 대학병원에 가서 혈액검사를 한 후에야 아이의 계란 알레르기 수치가 꽤 높다는 것을 알았다. 수치는 꽤 높았지만 철저하게 제거식을 한 탓인지 다행히도 이렇다 할 사고는 없었다. 물론 얼굴이 붓거나, 복통을 호소해 소아과에서 한 번 의식을 잠깐 잃은 적이 있지만 그때도 119 대원들이 오셔서 아이를 안으니 눈을 번쩍 떠서 해프닝으로 그쳤다. 물론 엠뷸런스를 타고 인근 대학병원 응급실에 가긴 했었다.
어린이집, 학교 등 기관에서도 잘 케어해 준 덕분에 아이는 알레르기 수치에 비해서 기특하게도 잘 지내주었었다. 하지만 가정보육을 하는 것과 기관에 보내는 것은 천지차이였다. 어린이집에서는 아이가 먹는 음식의 대체식을 해줄 수 없다고 했다. 나는 어린이집의 월별 식단표를 미리 받아서 어린이집에 계란 알레르기가 포함됐을 법한 음식을 표시하고 그 음식들을 대신할 대체식을 싸서 보냈다.
어린이집 상담 시 그 부분은 협의가 됐던 거라 억울할 것도, 속상할 것도 없었다. 도시락을 싸 보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할 뿐이었다. 어떤 기관에서는 외부음식도 받아주지 않는 곳도 있으니까... 그래도 사고는 생겼다. 앞에서 언급했던 응급실 행은 심한 케이스였고 어린이집을 다녀오며 얼굴이 갑자기 부어올라 인근 소아과에 급하게 간 적도 있었다.
이제는 초등학교에 입학할 시기가 되었다. 초등 1학년에 입학하기 전 겨울방학부터 대학병원에서 제안한 덕분에 머핀부터 면역치료를 시작하였고 2-3학년이 되어가며 구운 계란까지 먹을 수가 있었다. 물론 많은 양은 아니지만 한 입 잘못 먹은 계란 때문에 기관에서 쇼크까지 이어지는 사고는 면할 수 있겠구나.. 하고 안도할 수 있었다. 학교 가기 전 아이가 어느 정도 상태인지 한 번 더 점검할 수 있어서 의미가 있었던 것 같다.
이러한 상황 때문에 나는 전근 시 만기 이동점 수로 다른 교사들이 선호하는 지역을 선택하지 않고 아이와 같은 학교로 근무신청을 했다. 같은 학교에 근무하게 되니 지근거리에서 응급상황을 대비할 수 있어서 심적으로 안심이 되었고 아이의 담임선생님, 보건선생님도 같은 학교에 내가 근무하고 있음에 안심하는 것 같았다.
물론 학교에서도 수업 중 보건실에서 메시지를 몇 번 받긴 했다. 아마도 조리도구 등에 계란성분이 미량 들어가서 목이 가렵거나 복통을 호소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심각하지 않은 증상들이었다. 미리 보건선생님께 항히스타민제를 드렸고 어떤 증상일 때 먹어야 하는지 등을 포함한 대학병원 의사소견서를 제출해 놓아 메뉴얼대로 케어를 해주셨다.
면역치료를 시작한 후 초등 2-3학년까지는 구운 계란 2/3개까지 먹을 수 있었고 실제로 혈액검사 결과가 좋아지는 것이 보였다. 서울의 소아알레르기로 유명하다는 교사님을 처음 찾아갔을 때 당시 아이는 5살쯤 됐었는데 아이의 혈액검사 결과를 보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이 혈액검사 결과를 보니 수치가 다른 아이들보다 상당히 높아서 보통 6-7세 이전으로 계란, 우유 알레르기는 좋아지는데 이 아이는 학교 들어갈 때까지 좋아지기 힘들어요."
교수님 옆에 인턴으로 보이는 분들이 열심히 기록을 하고 있었는데 내 눈치를 슬쩍 보는 것이 느껴졌다. 그때 마음을 굳게 먹기로 다짐했던 것 같다. 뭔가 긴 여정이 시작될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고 그 여정은 장거리코스일 수 있겠다는 생각에 엄마로서 강해져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팬데믹 기간 동안 아이의 알레르기케어도 멈추어 있었는데 팬데믹이 끝나자마자 소아 알레르기로 유명하다는 또 다른 교수님을 찾아갔다. 그때가 6-7세쯤 됐던 것 같다. 아이가 병원에 대한 거부감을 한참보일 때라 교수님한테 주사 맞는 거냐... 오늘 뭐 하는 거냐... 질문이 많았는데 그때 교수님은 더 절망적으로 말씀하셨다.
"아이가 기질이 예민해요. 알레르기 수치도 많이 높고요. 괜히 아이 힘들게 하지 말고 계란 등 알레르기 유발식품들 철저히 제거식하세요. 중학교 들어가면 좋아지는 아이들도 많아요."
워낙 바쁘신 분이라 그런지 진료 거부 아닌 거부를 당했던 것 같다... 당장 고쳐달라는 것도 아니고... 상담만 하러 간 건데 아무것도 하지 말라니...
그래도 나는 그 상황을 긍정적으로 해석할 부분이 있나 살펴보았다. 그 교수님 말씀을 듣고 알레르기 아이들의 심리적인 문제들을 찾아보니 정신과치료를 받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분 덕분에 아이의 기질과 예민도를 반영하여 알레르기를 케어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내가 놓치고 있는 부분이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되돌아보니 정말 중요한 포인트였던 것 같다. 계란알레르기는 주변 분들 말씀대로 나이가 많아질수록 자연스럽게 좋아지는 경우가 많다(물론 우리 아이는 아직 아니지만). 하지만 성격 및 기질 형성에 관한 부분은 특정 기간이 지나면 돌이킬 수 없다.
아이생일에도 아이는 자기 생일축하 케이크를 먹지 못한다. 그래서 어린이집에는 떡케이크나 계란 없는 특수케이크를 주문해서 보내기도 했다. 아이들이 흔히 먹는 쿠키, 빵 모두 계란이 들어있을 수 있다. 우리 아이는 간식시간마다 친구들과 다르게 자기만 다른 것을 먹는 경험을 하면서 자라왔다. 그 나이 아이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때 뒤통수를 세게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 아이의 마음을 그동안 읽어주지 못했던 것 같아서 미안했고 죄책감이 들었다.
지금은 싱가포르에서 그동안 겪어온 많은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아이를 좀 더 나은 방법으로 케어하고 있지만 아직도 나는 부족한 것이 많은 엄마다. 하지만 그동안 잘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어려운 시기마다 '짠'하고 나타나서 아이를 도와주는 은인 같은 분들 덕분이다. 그분들은 나에게 항상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OO엄마! 혼자 아니야! 아이 돌보는 건 우리가 같이 도와줄게 힘내! 그리고 지치지 마...!!"
아이가 받는 사랑과 배려에 아이는 지금까지 잘 성장해 왔고 나도 아직 좌절하며 무너지지 않고 잘 버티고 있다. 계란 알레르기가 있는 아이와의 10년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이었다. 고통스러운 순간을 긍정적인 의미로 풀어내고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좀 더 발전적으로 지내려 노력하다 보니 어느덧 10년이란 세월이 훌쩍 지나갔다. 이제는 그 시간의 발자취를 다른 분들께 나눠보려고 한다. 어두운 터널을 지나가고 있다고 느낄 누군가에게는 혹시 한줄기 빛으로 다가갈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