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속하지 않는 자유, 속하지 못하는 불안

by 지니어스

캐나다 토론토에서 조금 떨어진 곳, 한 번은 터키 친구와 함께 와이너리에 간 적이 있다. 그는 그날의 주최자였고, 나를 자신의 친구들에게 소개하고 싶다고 했다. 그 제안을 들었을 때 나는 설렘을 감출 수 없었다. 처음이었으니까. 갑갑한 도심을 벗어나 차를 타고 달려, 생전 처음 와인 농장에 간다는 사실만으로도 들떴다. 옷은 뭘 입을까, 메이크업은 어떻게 해야 할까. 작은 고민들마저도 기분 좋은 긴장이었다.

그러나 도착하자마자 그 설렘은 서서히 불안으로 바뀌었다. 터키 커플 네 쌍이 이미 동그란 테이블에 앉아 있었고, 그들 사이에 끼어 앉은 나는 이상하게도 계속 동떨어진 기분이 들었다. 영어와 터키어가 뒤섞여 흐르는 대화 속에서 나는 어느 쪽에도 발붙이지 못했다. 내가 너무 긴장한 걸까. 스스로 묻고 또 물었지만, 답은 오지 않고 몸만 점점 위축되었다.

와인을 시음하고 치즈를 맛보며 농장을 둘러볼 때, 내 옆은 텅 비어 있었다. 친구는 자신의 친구들과 웃고 떠들며 바쁘게 어울렸고, 나는 혼자 걸으며 풍경을 구경했다. 커플들이 서로 사진을 찍어주며 웃고 있을 때, 나도 사실 찍고 싶었다. 하지만 부탁할 용기는 나지 않았다. 그들과의 거리감은 너무 멀었고, 내 안의 어색함은 너무 두터웠다. 애써 ‘여기서 사진이 뭐 중요하겠어’라고 스스로를 달래 보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아쉬움이 오래 남았다.

식사 자리에서도,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도 나는 대화 속에 끼지 못했다. 친구와 그의 동행이 대화를 이어가는 동안, 나는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만 바라보았다. 처음 이 자리에 오기 전에는 새로운 인연이 시작될 거라 기대했지만, 돌아오는 길에 남은 건 오히려 낯선 소외감과 스스로를 향한 부끄러움뿐이었다.

그날 나는 알았다. 설렘과 자유는 언제든 소속되지 못하는 불안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불안은 나를 가만히 옥죄며, 내가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시켰다.

자유는 언제나 해방의 얼굴만을 하고 다가오지 않는다. 그것은 동시에 방황의 이름으로 나를 흔들고, 소속되지 못한 자의 고독을 안겨준다. 집단 속에서 이방인으로 앉아 있을 때 느낀 서늘한 고립감은, 곧 자유가 갖는 이면이었다. 어디에도 묶이지 않기에 어디에도 안착할 수 없는, 그 모순적인 상태.

나는 그때 처음으로 자유와 불안이 사실 같은 뿌리에서 자라난 것임을 실감했다. 자유란, 타인의 시선과 규율에서 벗어날 수 있는 권리이지만, 동시에 소속이라는 보호막을 잃는 고독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불안은 그 고독이 드리운 그림자였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 불안 속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 있었다. 가장자리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중심에 서 있는 사람들은 결코 알지 못할 고독의 투명한 결. 그것은 때로 나를 무력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나만의 사유를 길러내는 토양이 되기도 했다.

어쩌면 나는 늘 이 두 세계 사이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 소속되지 못해 불안하고, 묶이지 않아 자유로운. 그 모순적인 흔들림 속에서만 나는 나 자신을 가장 선명히 느낀다.

그리고 문득 깨닫는다. 삶이란 결국, 소속과 자유라는 양극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는 일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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