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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 서연 Jul 04. 2024

발레 모더니즘의 시작 - 발레 뤼스

1909~1929년까지 약 20년이라는 기간동안 전유럽을 뒤흔든 발레 뤼스는 전통을 답습하는 러시아 황실 발레에 대한 반감에서 시작해 모던 발레의 토대를 이룬 발레의 역사를 바꾼 발레단이다. 러시아 발레단이라는 뜻을 지닌 발레 뤼스는 발레리나들의 공기같은 움직임과 우아한 발레 포즈에 경도되어 있던 파리의 관객들을 충격에 몰아넣은 그러나 정작 러시아에서는 단한번도 공연을 하지 않은 발레단이었다.


발레뤼스의 무용수들은 신체 조건도 러시아 황실 발레단의 무용수들과 달랐다. 안나 파블로바, 타마라 카르사비나, 미하일 포킨, 바슬라프 니진스키 등 디아길레프 호에 탑승한 발레 무용수들은 길고 고르게 발달된 근육과 은은한 관능성을 지녔다. 이는 당시 러시아 황실 발레단을 장악했던 마틸다 크셰신스카의 풍만하고 요염한 매력과는 정반대되는 것으로 어느 정도 발레 훈련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이기도 했다. 이미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미래의 디아길레프 무용수들의 대부분을 가르쳤던 엔리코 체케티는 이후에도 발레 뤼스와 함께 유럽을 누볐다. 그들은 체케티의 지도하에 더 나긋나긋하면서 유연해졌고 더 이상 묘기처럼 발레를 하지 않았으며 자신들이 가진 기술적인 능력을 스스로의 신체에 조각하는 한편 유려한 움직임들을 계발하는 데에 사용했다. 카르사비나의 교양과 품위를 겸비한 관능적인 매력, 파블로바의 물결치는 듯이 빛나는 날카로운 연약함, 니진스키의 동물적인 움직임은 미하일 포킨의 혁신적인 안무에서 숨겨진 매력과 에너지를 불러냈으며 쇠퇴해갔던 유럽 발레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이하일 포킨 안무의 장미의 정령에서 타마라 카르사비나와 바슬라프 니진스키
장 콕토가 그린 장미의 정령


발레 뤼스의 무용수들은 디아길레프의 지도하에 지적인 활동과 다양한 분야의 예술에도 관심을 가졌다. 풍부한 교양과 지적 호기심이 많았던 발레리나 카르사비나는 후일 회고록에서 자신의 팬들은 치렁치렁하게 차려입은 귀부인들이 아니라 학생과 지식인들이었다고 썼다. 특히 니진스키는 디아길레프의 관리 감독하에 미술관 관람과 음악가, 화가, 작가들의 타 예술분야의 사회에 소개되었고 덕분에 니진스키의 예술적 지평은 헤어릴 수 없이 넓어졌다. 후일 디아길레프가 발란신을 발탁했을 때 추진력이 좋았던 이 예술 기획자는 니진스키에게 했던 것처럼 발란신의 교육을 손수 맡았는데 이 젊은 안무가에게 유럽 회화와 예술을 공부하도록 압박했다. 이런 강요에 발란신은 한 이탈리아 성당에 앉아서 몇 시간 동안이나 르네상스 화가 페루지노의 그림을 응시해야했고, 디아길레프의 강압에 처음에는 분개했지만 나중에는 길이 감사했다고 회고했다.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모리스 라벨, 에릭 사티, 파블로 피카소, 마르크 샤갈, 장 콕토, 가브리엘 샤넬 등 당대의 내노라하는 예술가들은 대부분 발레 뤼스에 열광했으며 실제로 작품을 창작하는데에 참여했다. 이전의 발레 작품들은 수장격인 안무가가 대부분의 춤을 만들고 차석 안무가가 보조를 했다면 발레 뤼스의 창작 과정은 처음부터 집단 지성인들이 모여 토론하고 협의해서 만든 최초의 집단이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포킨의 <불새>, <페트루슈카>는 발레 뤼스의 대표작이 되었으며 니진스키의 <목신의 오후>, <봄의 제전>은 비록 초연 당시 수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지만 오늘날에는 시대를 앞서나간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발레 뤼스의 발레 작품에 참여하는 예술가들은 점점 더 국제적으로 변해가면서 20세기의 음악, 미술, 발레 의상 등 다양한 분야로 그 영향력이 뻗어나갔다.

https://youtu.be/AjkmX21VYeU?si=JrMzp30L4D7nihR6

기록에 의하면 안무가 미하일 포킨이 니진스키의 독특한 행동들을 원용해 페트루슈카의 이미지를 창조했다고 한다. 무표정, 어색한 행동과 제스처 등이 그것이다. 극 중 발레리나를 짝사랑하다가 죽임을 당하는 페트루슈카 역을 맡은 니진스키는 페트루슈카 그 자체였다고 기록되어있다. 위 영상물은 니진스키의 분신과도 같았던 페트루슈카를 파리 오페라 발레단에서 1976년에 제작한 것으로 페트루슈카 역에 루돌프 누레예프가 출연했다. 외롭고 공허한 표정, 기묘한 동작, 그래서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고통과 슬픔이 솟구쳐 올라오지만 꼭꼭 눌러담느라 눈으로만 표현하는 페트루슈카 역에 누레예프의 연기는 그야말로 혼연일체였다. 짧은 영상물이었지만 감상하는 내내 누레예프의 춤과 연기력에 찬탄하면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매지컬 모먼트를 경험했다.


https://youtu.be/pU2juDnSTTg?si=n12a37AIQ4m2EbYq

파리오페라 발레단의 목신의 오후. 감상 후 작품이 너무 짧은 게 아쉬울 정도로 갈증과 여운이 교차했다. 초연 당시에 수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으나 시대를 너무 앞서나간 탓이었다.


https://youtu.be/tWqeahU72-U?si=gHj4KkyNEOrNjfw8

안무가분이 목신의 오후 안무를 오마주하신 듯 하다. 니진스키의 봄의 제전 안무는 소실되었으나 목신의 오후 안무는 소실이 안 되었던 듯. 얼마나 다행인지.


아래는 <아폴로의 천사들 : 발레의 역사>에서 본문 발췌

<페트루슈카>는 구세계적인 러시아 전통의 매력적인 초상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이 발레의 진정한 의미를 보여준 것은 버려진 꼭두각시에 대한 니진스키의 인상적이고 사무치는 묘사였다....그는 이 음악의 역설과 불협화음을 이해했고, 그의 움직임들은 그 다급한 리듬을 납득시켰다.


"디아길레프의 지도하에 니진스키의 예술적 지평은 헤아릴 수 없이 넓어졌다."


그는 테크닉 연습을 엄청나게 했다....정적인 포지션과 우아한 포즈보다는 속도와 탄성, 긴장과 힘에 관심을 가졌다. 그는 압축과 집중을, 응축된 동시에 억제되었지만 갑자기 폭팔할 수 있는 움직임을 추구했다....그의 가장 동물적이고 원시적인 움직임들까지도 발레의 원칙에 대한 지독히 분석적이고 육체적인 재고의 산물이었다."


1912년 니진스키는 말라르메의 시에 붙인 드뷔시의 음악에 맞춰 <목신의 오후>를 안무했다....움직임의 새로운 언어를 창안하려는 진지한 시도이기도 했다. 이 발레의 리허설은 힘들었다. 무용수들은 엄청난 근육 단련이 필요한 비약적이고 팽팽한 움직임을 갖춘 이 딱딱하고 2차원적이며 장식띠같은 작품을 싫어했다.


<봄의 제전>은 그 어떤 전통적인 의미로도 발레가 아니었다. 이 발레는 대신 반복, 축적, 그리고 거의 영화적인 몽타주를 통해서 작동했다....니진스키의 안무는 무용수들이 도중에 멈추고 물러서서 방향을 바꾸거나 경로를 변경하게 만듦으로써, 마치 억눌린 에너지를 해방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들의 움직임과 가속도를 끊어놓았다....그것은 발레의 역사상 결정적인 순간이기도 했다......니진스키는 자신의 재능을 과거와의 단절에 전력으로 쏟았다. (스트라빈스키와 마찬가지로) 그가 작업하면서 보여준 열광적 흥분은 완전히 새로운 무용 언어를 창안하겠다는 격렬한 야심의 조직이었다. 이것이 그의 동력이었고, <봄의 제전>을 최초의 진정한 현대 발레로 만들었다.

- <아폴로의 천사들 : 발레의 역사>, 제니퍼 호먼스 지음,

 p. 368~377 -


하지만 디아길레프가 꼭 지켰던 원칙이 하나가 있었는데, 바로 안무가만큼은 반드시 러시아 출신이어야 했다. 디아길레프는 절대 유럽 출신의 발레 마스터들과 작업하지 않았다. 포킨과 니진스키가 사라지자 그는 러시아 출신인 레오니드 마신을 고용했으며 1925년에는 조지 발란신이 유럽에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를 찾아내기도 했다. 디아길레프는 늘 하던대로 새로 고용된 젊은 안무가들에게 다른 분야의 예술에 빠지도록 몰아넣었다. 레오니드 마신은 디아길레프의 지원하에 장 콕토가 대본을 쓰고, 에릭 사티가 음악을 맡고, 피카소가 무대 장치와 의상을 디자인한 작품 <퍼레이드>의 안무를 창작했다. 디아길레프가 발탁한 걸출한 안무가 발란신 역시 발레 뤼스를 위해서 주옥같은 작품들을 창작했다.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에, 샤넬이 디자인한 발레 의상을 입고 추는 발레 <아폴로>는 발란신에 의해서 새롭게 창조된 움직임들로 가득찬 아폴로와 뮤즈들의 춤으로 오늘날에 감상해도 음악, 의상 디자인, 안무 등 모든 면에서 혁신적인 발레 작품이다.

https://youtu.be/_Chq1Ty0nyE?si=lbDw0Q2itsbOOiCd

춤은 안보이고 의상만 보이는 작품. 피카소는 춤보다는 움직이는 육체에 큐비즘을 입히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

https://youtu.be/K5HqiGaCrQk?si=3lTY8k3AR7r4Zs5T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에, 샤넬을 입고 춤을 추는 발란신에 의해 창조된 아폴로와 뮤즈들


디아길레프가 발레사에 남긴 유산은 엄청나다. 러시아 출신이었던 그는 러시아 무용수들을 유럽으로 데려와 아방가르드 무용의 물꼬를 터서 모더니즘의 서막을 열었다. 또한 포킨, 니진스키, 마신, 발란신 등 유능한 안무가들이 동시대 작곡가들과 협업하도록 했으며 당대의 유명한 미술가, 패션 디자이너들도 끌어들여 장르를 넘나드는 새로운 예술세계를 그려나갔다. 디아길레프의 유산은 영국 발레의 초석을 세운 영국의 지식인들에게도 큰 영향을 주었다. 영국의 엘리트들은 영국 발레를 만드는데에 발레 뤼스에서도 실마리를 얻었다.

https://youtube.com/playlist?list=PLtqTM7RNG1Pb0WTB-QIP5mrkBPSr4QJiY&si=nfjmN3UaijoZNb7M



참고 및 인용한

<아폴로의 천사들 : 발레의 역사>, 제니퍼 호먼스 지음, 정은지 옮김, 까치

https://brunch.co.kr/@1645b8e591c6476/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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