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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격과 관능을 넘나드는 고전동화의 재해석

앙줄랭 프렐조카주의 <백설공주>

by 아트 서연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 못지않게 매튜 본, 앙줄랭 프렐조카주 역시 고전동화 비틀기의 고수이다. 차이점은 마이요는 어느 정도의 선 안에서 클래식 발레의 아름다움을 지키고 있고, 매튜 본의 작품들은 B급 정서가 있으며 프렐조카주의 안무는 그야말로 파격과 혁신이다. 언제나 고전동화를 파격적으로 재해석해서 새로운 움직임을 창조하는 프렐조카주의 작품들을 보면 무용수들의 근육이 발레 근육이 아님을 알게 된다.


컨템포러리 발레를 표방하는 프렐조카주 발레단. 보통은 '발레단'이라는 명칭을 내세우는 컨템포러리 무용단이라면 클래식 발레와 발레의 역사를 넘어선 움직임의 범위를 경계 너머로 오고 가겠다는 뜻으로 어필을 하는데, 프렐조카주의 작품들은 고전 발레의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프렐조카주는 어째서 자신의 무용단 이름을 '발레단'이라고 붙였을까. 프렐조카주가 말하는 '발레'는 보통 발레하면 자연스럽게 떠올리는 클래식 발레가 아닌 '춤을 추다'는 넓은 의미로 가져다 쓴 것 같다. 프렐조카주는 유년 시절에 발레 훈련을 받은 경험이 있음에도 안무가로서 발레의 역사를 지키는 것보다는 언제나 새로운 무용 언어를 창조하는 혁신을 더 중요시하는 듯 하다.


따라서 프렐조카주의 작품들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안무가가 어린 시절 발레 훈련을 받은 경험이나 '프렐조카주 발레단'이라는 명칭보다는 '누벨 당스(Nouvelle danse)'의 선구자였던 경력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더 쉽다. '새로운 춤'이라는 뜻을 지닌 누벨 당스는 20세기 후반 프랑스에서 불기 시작했던 새로운 시도로 현대 무용의 중심축을 프랑스로 되돌려 놓는 등 말 그대로 기존의 판도를 뒤집었던 혁신이었다. 경계를 지우면서 태어난 누벨 당스는 영상, 기술, 서커스 등과 창조적인 융합을 통해 안무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철학과 세계관을 작품 속에 녹여내는 것을 더 중요시했다. 안무가의 생각이 곧 작품이 된 누벨 당스라는 새로운 장르는 이제 안무가는 단순히 춤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작가라는 인식으로 방향전환이 된 계기가 되었다. 현대 무용 역사에서 20세기 후반에 프랑스, 벨기에를 중심으로 불기 시작한 이 새로운 바람은 프렐조카주가 확실히 뿌리내리게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림 형제 동화의 플롯을 재해석해 백설공주가 어린 아이에서 여인으로 성숙해가면서 사랑에 눈을 뜨는 과정과 질투에 눈이 먼 왕비의 사악함, 죽은 백설공주를 끌어안고 오열하는 왕자, 죽음에서 깨어난 백설공주와 왕자의 강렬한 파드 되, 공주와 왕자의 결혼식과 함께 무사들에 의해 뜨겁게 달구어진 쇠구두를 강제로 신고 죽을 때까지 춤을 추는 새 왕비의 모습 등 잔혹 동화로 거듭 태어난 이 작품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질 여러 감정들을 담고 있다. 여기에서 맨발로 자유롭게 춤을 추는 무용수들은 일부분을 발췌해서 다시 촘촘하게 엮은 말러 교향곡의 선율을 타고 의상 디자이너 장 폴 고티에가 부여한 상징적인 의상들로 더욱 입체적인 캐릭터가 되었다. 거의 맨살을 드러낸 순백의 하얀 의상을 입은 백설공주는 관능미를 품은 순수함으로 표현했고, 롱부츠와 코르셋 등 거의 블랙으로 무장한 계모는 더욱 가학적인 캐릭터가 되었다.


연기가 자욱한 음침한 어둠 속에서 왕비는 만삭인 배를 잡고 힘들게 걷다가 산통이 오자 이내 쓰러진다. 곧이어 말러 교향곡 2번 부활 5악장의 도입부 선율이 불길하게 울려퍼지면서 공주가 탄생한다. 죽음과 동시에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알리는 음악으로 말러의 부활이 선택된 것이 참 상징적이다. 어느새 아기는 소녀가 되어 아버지와 숨바꼭질 놀이를 하고, 아버지와 함께 놀던 소녀는 드디어 숙녀가 된다. 공주의 성인식을 축하하는 무도회(말러 교향곡 2번 2악장)에서 백설공주는 왕자와 처음 마주친다. 그러자 왕자는 공주에게 빨간 스카프를 건네고 첫번째 파드 되(말러 교향곡 9번 2악장)를 추기 시작한다. 한창 분위기가 즐겁게 무르익은 순간 말러 교향곡 5번 2악장이 울려퍼지면서 새 왕비가 도발적인 모습으로 등장한다. 장면이 전환되고 어여쁜 숙녀가 된 백설공주는 숲에서 왕자와 무반주 파드 되를 춘다. 고요함 속에서 추는 두 사람의 춤은 서로의 끌림으로서로를 탐색하면서 알아가는 설레임을 감상자에게 오롯이 전달하고 있다. 잠시 뒤 아다지에토 못지않게 낭만적인 선율이 돋보이는 말러 교향곡 4번 3악장이 흘러나오면서 두 사람의 감정은 더욱 깊어진다. 사랑에 빠진 두 연인은 서로에게 장난기 어린 행동을 하는 등 사랑에 빠지면 유치해지고 순수해진다는 진리를 말러의 음악으로 표현한다. 다시 장면이 전환되고 잔혹한 새 왕비의 심복들이 등장을 한다.(말러 교향곡 6번 4악장) 자아도취 성향이 매우 강한 왕비는 거울 앞에 서서 말러 교향곡 5번 3악장의 변조된 선율에 맞춰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가장 예쁘니?"라고 묻는다.(이 장면 정말 재미있다. 말러의 음악이 진짜로 말하는 것 같고, 안무가의 재치가 끝내준다.) 하지만 왕비가 듣고 싶었던 대답을 듣지 못한 왕비의 얼굴은 심하게 일그러진다. 왕비는 세 명의 군인들에게 공주를 죽이라고 명령을 내리지만 공주를 죽이지 못한 군인들은 사슴을 대신 죽이고 그 심장을 왕비에게 바친다. 숲에서 백설공주가 잠이 든 사이 말러 교향곡 1번 3악장이 흘러나오면서 난쟁이들이 절벽을 타고 내려오는 장면은 서커스같다. 장송행진곡처럼 시작되는 선율을 타고 현란한 공중 군무는 뭔가 웅장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난쟁이들은 잠이 든 백설공주를 발견한다. 잠에서 깬 백설공주는 난쟁이들과 동심으로 돌아가 즐겁게 놀이한다. 이때 말러 교향곡 3번 3악장이 흘러나오는데 선율이 밝은 부분을 발췌해서 공주의 동심어린 놀이를 표현한 이 장면에서 안무가의 음악성을 또한번 느꼈다. 한편 백설공주가 살아있음을 알게 된 새 왕비는 노파로 변장을 한 후 독사과를 들고 공주를 찾아간다. 다정하게 빨간 사과를 권유하면서 공주를 유인한 새 왕비는 드디어 살기를 품고 공주의 입 속에 독사과를 넣는다.(말러 교향곡 8번 2악장) 공주가 죽음에 이르렀을 때 죽은 왕비가 레이어를 달고 무대 천장에서 내려온다. 죽은 왕비는 백설공주를 데리고 공중으로 들어올린다. 죽은 백설공주를 발견한 왕자는 오열을 한다. 어떻게든 공주를 일으켜 세우려하지만 번번히 쓰러지는 공주를 붙잡고 괴로워하는 왕자의 마음은 말러 교향곡 5번 4악장 아다지에토의 선율이 되어 그 간절함과 애틋함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그러다가 눈을 반짝 뜬 백설공주는 자신이 깨어났음을 왕자에게 알려준다. 처음에는 믿지 못하는 왕자에게 백설공주는 자신의 숨결을 불어넣으며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준다. 하마터면 죽음이 갈라놓았을 두 사람이기에 연인이 추는 춤은 그 어떠한 파드 되보다도 더 진한 감정이 되어 아다지에토 선율 속에서 퍼져나간다. 드디어 백설공주와 왕자는 결혼식을 올린다. 이때 백설공주의 웨딩 드레스가 공주풍 드레스의 끝판왕 크리놀린 드레스의 버팀대를 모티프로 한 디자인으로 "이렇게 해서 공주와 왕자는 행복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라는 전형적인 동화 속 결말을 보여주고 있다. 결혼식 장면에서 흘러나오는 말러 교향곡 9번 4악장의 선율 역시 의미심장하다. 곧이어 새 왕비가 끌려나오고 무사들에 의해 불에 달궈진 쇠구두를 강제로 신는다. 불에 타오르는 듯한 구두를 신은 새 왕비는 죽을 때까지 춤을 추는데, 이때 흘러나오는 말러 교향곡 3번 3악장 코다부분은 감상자로 하여금 강렬한 카타르시스를 체험하게 한다.

산통이 오자 쓰러진 백설공주의 친엄마
자기 과시를 하면서 도발적으로 등장하는 새 왕비
백설공주가 살아있음을 알고 살기를 품은 새 왕비
백설공주를 죽이기 위해 노파로 변장하려는 새 왕비
아다지에토 선율 속에서 번져나가는 두 연인의 애틋한 파드 되


“스노우 화이트’를 즐기기 위해선 감정에 본인을 맡겨야 한다. 무용수들과 함께 말러의 날개를 타고 꿈꾸듯 여행해보길 바란다.” - 앙줄랭 프렐조카주 -


https://youtu.be/EXmb1nrHxlM?si=dGWd7QMhObu7KHqP



** 작품에 사용된 말러 교향곡들 **

https://youtu.be/ID5b0rStx3g?si=EegZ2JBwXZM5wcOF

왕비의 죽음과 동시에 백설공주의 탄생

https://youtu.be/YiKISo7tThc?si=XampS24RF8BazZQf

백설공주의 성인식을 축하하는 무도회 장면

https://youtu.be/D2JVkSjAM8Y?si=nu57d-UCaoksCFGT

공주의 독무 및 왕자와 처음 추는 파드 되

https://youtu.be/m3NiCOt_K0w?si=sCdbZLurLnrsLorY

사악한 기운을 뿜으며 계모가 등장

https://youtu.be/eo3V6R3KRhs?si=XioDlT6vVtvWAYo9

관능적이면서 동화적인 풍경

https://youtu.be/tn5-8XrKXR4?si=_hvqh2OpfxAWWs4L

백설공주와 왕자가 서로에게 장난을 치면서 추는 파드 되

https://youtu.be/1s36hpQjNxc?si=qDeycSqdzDmIuyV9

계모의 심복들이 등장

https://youtu.be/_OVmMULSHco?si=b8y6FlO1QJ_UhCGm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https://youtu.be/RntbEwnb0mM?si=DR-Oloi0DZXm8OJa

난쟁이들이 내려오면서 공중군무를 스펙터클하게 보여줄 때 나오는 음악

https://youtu.be/oGyvl9McMGs?si=FIbsbFlTcKv3Wktr

잠에서 공주가 깨어나고

https://youtu.be/duPimGFi22s?si=U2scL5AKR5iL2jBl

동심으로 돌아가 난쟁이들과 즐겁게 놀이하는 공주의 순수한 마음을 표현

https://youtu.be/m2YaPj0uZ0Q?si=r2E93gVGjZrlcw1p

계모가 독사과를 들고 공주를 유인하는 장면에서 나오는 음악

https://youtu.be/75YmlDR92UQ?si=mBPugRX1MIwqGdYE

왕자의 간절한 마음, 두 사람의 깊은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아다지에토

https://youtu.be/PzvS_Dkcd9s?si=5ngp8m5Du0igrHsL

공주의 결혼식을 축하하는 조신들의 군무와 왕자와 공주의 춤

https://youtu.be/oYu-uKyCMsE?si=x0CtxuySjHDiTx3y

새 왕비가 불에 달궈진 쇠구두를 신고 죽을때까지 춤을 출 때 나오는 선율은 17:00분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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