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트 서연 Oct 04. 2023

20세기 최대의 화제작 <봄의 제전>

천재의 전설 바슬라프 니진스키

경찰이 출동하고 작곡가는 도망을 치고

1913년 니진스키가 안무한 작품 <봄의 제전>을 초연했던 날 객석에서는 비난과 야유가 쏟아져 나왔다. 급기야 관객들이 폭동에 가까운 거센 반응을 보이자 경찰들이 출두했다. <봄의 제전>을 추는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지금까지 아름다움만을 보여줬던 발레 작품들과는 전혀 거리가 먼 원시적인 춤사위였고,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은 듣기 불편한 불협화음으로 가득찬 소음처럼 들렸다. 중간에 퇴장해버리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는데, 그 중에는 작곡가 생상스도 있었고 <봄의 제전> 음악을 작곡한 장본인인 스트라빈스키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작곡가 스트라빈스키는 초연의 실패가 안무가 니진스키에 원인이 있다고 생각을 했다. 거의 반세기 후 그가 회고한 바에 의하면, 그가 청중의 반응에 받은 충격은 청중이 그 발레를 보고 받은 충격에 못지 않았다. 분명 청중을 자극한 것은 음악보다는 안무였을 것이며, 그 후 이 곡은 대개 발레로서가 아니라 연주회에서 연주된다.

“<봄의 제전>의 초연이 스캔들을 동반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으리라. 그러나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나 자신은 그러한 소요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오케스트라 리허설에 참여한 음악가들의 반응에서는 전혀 그러한 낌새를 느낄수 없었으며, 무대 스펙터클은 소동을 촉진할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마디는 규칙적으로 나뉘어 있지만, 첫 두 마디의 박들은 모두 같은 강도로 연주되면서 박자의 필수적인 강박과 약박의 위계질서를 부정한다. 이어 여덟 개의 호른과 더불어 악센트를 받는 화음은 박자의 규칙성을 완전히 파괴하는 예측할 수 없는 강세 패턴을 만들어 낸다. 청자로 하여금 박자감과 리듬감을 잃게 하는 이 음악은 그러나 발레를 위해 영리하게 착안된 것이다. 이 패시지는 여덟 마디의 악절을 이루는데 무용수들은 네 마디의 악구로 셈할 수 있다. 이렇게 박자를 단순한 박으로 환원하는 것은 음악에 원시주의의 느낌을 불어넣는 가장 강력한 요소였다. - <그라우트 서양 음악사> 하권, p. 270~271     



이처럼 1913년 초연되었을 당시에는 문제의 화제작이었던 발레 작품 <봄의 제전>.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작곡가 스트라빈스키는 위대한 작곡가로 거듭나면서 승승장구했고, 안무가 니진스키는 안무가로서 뿐만 아니라 발레리노로서도 쇠락의 길을 걸었다. 니진스키는 결국 잊혀진 채 정신 분열로 정신병원에서 죽어갔고, 그가 만든 <봄의 제전> 안무도 결국 소실되었다.     


발레 작품 <봄의 제전>이 남긴 유산

남성 시대의 서막을 연 불세출의 발레리노 바슬라프 니진스키. 그러나 그의 인생은 언제나 그늘져있었다. 그의 인생 스토리를 따라가보면 프랑스 야수주의 화가 라울 뒤피의 말이 떠오른다. “삶은 항상 나에게 미소 짓지 않았다.” 그러나 화가 라울 뒤피는 언제나 삶에 웃음을 지으려 했고, 위대한 천재 발레리노이자 안무가였던 니진스키는 정신 병원에서 알 수 없는 그림과 휘갈겨 쓴 일기들을 남겨놓고 생을 마감했다.     


그가 세상을 떠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세상은 그를 추모하기 시작했다. <봄의 제전>을 두고 역겹고 불쾌한 작품이라고 비난과 야유를 퍼부었던 세상은 이제 그를 천재로 추앙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아이러니한 세상인가.      

이후 미국의 조프리 발레단은 1987년에 <봄의 제전>을 공연했다. 이 공연은 소실되었던 니진스키의 안무를 복원하고자 노력했던 결과물이다. 물론 초연 당시의 니진스키 안무를 알아낼 수가 없어서 니진스키 안무의 특징과 습관 등의 몇몇가지를 근거를 토대로 조프리 발레단장이 양념을 많이 첨가했지만 이 사건은 발레사에서 아주 의미있는 일이었다.

1987년 조프리 발레단의 <봄의 제전> 공연


에곤 쉴레의 그림 속 인물들처럼 신체를 과도하게 꺾거나 구부리듯이 움직이고 발레의 기본인 ‘턴아웃’과 ‘푸앵트’가 아니라 ‘턴인’으로 걷거나 발을 ‘플렉스’ 상태로 만들어 뛰는 무의식같은 춤사위와 안짱다리로 무대 위를 이동하는 등 기존의 우아하고 아름다운 발레의 고정관념을 완전히 깨고 있다.


왕자와 공주의 아름다운 러브 스토리가 아닌 부족의 생존을 위해서라는 집단의 광기어린 심리. 그리고 선택받은 자가 가지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 추는 원초적인 춤사위는 타악기의 울림과 함께 보는 사람의 마음도 부정적인 매혹에 휘몰아치게 만든다.


<봄의 제전>이 원시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부정적인 매혹은 오늘날에도 해당이 된다고 생각한다. 문명은 발달했으나 인간의 본성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니진스키가 표현하고자 했던 바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시대를 앞서나간 천재 예술가 바슬라프 니진스키. 너무 시대를 앞서나갔던 탓에 당시의 사람들은 그의 천재성을 못 알아보았다. 그의 인생 여정을 따라가면서 개인적으로 마음이 참 아팠다. 죽고 나서 추앙받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긴 했지만 이렇게라도 니진스키의 천재성이 재평가되면서 그동안 소실되었던 <봄의 제전>을 복원해 감상할 수 있다는 것에 조금이나마 위안을 삼아본다. 발레사의 흐름을 바꿔놓은 위대한 무용가 하면 이사도라 던컨을 으레 떠올리지만 천재 발레리노이자 안무가였던 바슬라프 니진스키도 있었음을 꼭 기억해 두자.


https://naver.me/GXqh45Bn

<봄의 제전>은 발레의 기본을 깨는 작품이다. 그래서 발레 무용수들이 평소에 쓰지 않는 근육과 관절을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근육통과 부상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작품이다. 발레 무용수 입장에서는 매우 부담스러운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전 14화 꿈처럼 아름다운 발레 작품 <장미의 정령>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