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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 서연 Oct 04. 2023

꿈처럼 아름다운 발레 작품 <장미의 정령>

꿈속에 나타난 남자 요정

애초에 발레는 남성중심이었다. 루이 14세만 보더라도 최초의 스타 발레리노였다. 귀족들의 사교댄스에서 전문 무용수들의 영역이 된 뒤에도 한동안 발레리노들이 발레의 흐름을 주도해나갔다. 발레리노들이 들러리로 전락하게 된 계기는 요정같은 이미지의 발레리나 탈리오니가 등장하면서 부터이다. 탈리오니가 불면 날아갈 것 같은 이미지로 요정처럼 가볍게 공중을 떠다니는 모습에 파리 시민들은 열광했다.


낭만주의 시대가 저물고 고전주의 발레가 시작된 뒤에도 발레리노들의 시대는 오지 않았다. 오히려 발레리나들의 더 짧아진 스커트로 인해 테크닉의 제약이 없어지면서 발레리나들의 비르투오소 시대가 온 것이다. 여기에 클래식 발레의 아버지 마리우스 프티파가 발레리나들이 현란한 테크닉을 구사할 수 있는 안무들을 작품 안에 정교하게 집대성을 한 뒤부터 발레리나들은 무대 위에서 초절기교의 절정을 보여주었다.


다시 남성 시대의 서막을 연 발레리노는 니진스키였다. 비록 불꽃처럼 활활 타오른 후 금방 꺼졌다하더라도 그 강렬함은 발레의 역사에서 눈부셨다. 동시대에 러시아는 여전히 마리우스 프티파를 중심으로 비르투오소 발레리나들이 구사하는 초절기교에 열광을 했지만 파리에서는 혜성처럼 나타난 니진스키의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수완이 좋았던 발레 뤼스의 설립자 디아길레프는 니진스키의 시대를 열어주었다. 사람 보는 눈이 있었던 디아길레프는 니진스키를 비롯한 재능이 있는 무용수들과 실험정신이 강한 안무가들을 발굴했는데 그 중에는 미하일 포킨도 있었다. 미하일 포킨은 발레 뤼스를 위해 여러 중요한 작품들을 만들었고, 전설의 발레리나 안나 파블로바를 위해 <빈사의 백조>를 안무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스트라빈스키의 발레 음악 <불새>, <페트루슈카>를 안무하기도 했던 포킨은 니진스키를 위해 베버의 <무도회의 권유>를 발레 음악으로 사용하여 <장미의 정령>을 만들었다.


<장미의 정령>이 나오기 전까지 발레 작품에서는 언제나 여자가 초자연적인 신비스러운 존재였고, 남자는 언제나 인간이었다. 그러나 포킨은 다르게 생각했다. 미하일 포킨은 프랑스의 시인인 데오필 고티에의 시 ‘나는 장미의 요정, 어젯밤 무도회에 당신이 나를 데려가 주었다.’를 바탕으로 작품을 만들면서 남자를 요정으로 만들어 버렸다.     


칼 마리아 폰 베버의 피아노곡인 <무도회의 권유>를 베를리오즈가 관현악으로 편곡한 곡을 사용하여 20세기의 불세출의 발레리노 니진스키를 위해 만든 이 작품은 세계 초연을 했던 날 니진스키가 보여준 믿을 수 없을만큼의 점프력과 날아오르는 듯한 발롱을 보여줘 당시 사람들을 열광시켰다. 그리고 그 사건은 오늘날에도 전설로 남아있다.     


장미의 정령

안무 : 미하일 포킨

재안무 : 루돌프 누레예프

(오늘날에는 거의 대부분 누레예프 버전을 사용한다.)

세계 초연 : 1911년 4월 19일 모나코 몬테카를로 극장, 발레뤼스

초연 무용수 : 타마라 칼사비나, 바슬라프 니진스키

작곡가 : 칼 마리아 폰 베버

안무시 : 데오필 고티에

줄거리 : 무도회에 처음 참석한 소녀가 집으로 돌아와 장미 한 송이를 들고 무도회를 떠올리다가 의자에 앉아 스르르 잠이 든다. 잠이 든 소녀의 손에서 장미가 떨어진 순간 소녀의 꿈에 장미의 정령이 나타난다.


장미의 정령은 화려한 왈츠로 소녀를 유혹해 무아지경으로 도취되어 끊임없이 춤을 춘다.


춤이 끝나자 장미의 정령은 소녀를 다시 의자에 눕히고 그녀에게 키스를 하고는 커다란 도약을 하면서 달빛 속으로 사라진다. 잠에서 깨어난 소녀는 꿈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바닥에 떨어진 장미를 들고 입술에 댄다.



https://naver.me/Gl7t8sk6

장미의 정령으로 나온 발레리노의 폴드브라가 매우 아릅답다. 장미 넝쿨을 표현하듯이 부드럽게 뻗는 팔과 손끝의 움직임, 그리고 마치 ‘당신에게 사랑의 향기를 전할게요.’하는 듯한 아름다운 폴드브라는 두고두고 여운이 남았다.


https://naver.me/5MSP4xSo

내가 본 <장미의 정령> 중에서 단연 최고다. 아름답고 우아하게 등장한 발레리노가 힘차게 도약을 하며 소녀의 방안으로 들어오는 모습을 본 순간 니진스키의 모습을 상상했다. 장미의 정령을 연기한 발레리노의 신체는 매우 아름답고 우아했으며 상체의 기립근과 목선이 놀라울만큼 유연했다. 하체의 근력까지도 좋아서 작품의 안무에 사용된 모든 동작들을 아름다우면서 매우 좋은 동작들을 보여주었다. 신체가 민첩하면서 근력이 좋으니 당연히 점프력도 좋았다.     


특히 소녀와 함께 춤을 추면서 음악의 리듬에 맞춰 끊임없이 섬세하게 움직이는 발레리노의 폴드브라와 손끝은 발레리노의 뛰어난 음악성을 짐작할 수가 있었다. 발레리노의 아름답고 감각적인 폴드브라는 시각적으로도 장미 문양의 아르누보가 연상될만큼 매우 화려해서 감상하는 내내 정말 즐거웠다.     


게다가 하체로는 매우 힘차게 점프하면서 폴드브라는 아주 섬세하고 부드럽게 구사한 발레리노의 완급조절을 보고 감탄했다. 발레리노가 동시에 표현한 남성성과 여성성은 미하일 포킨이 연출하고자 했던 중성적인 이미지를 완벽하게 재현한 것이었다. 아마도 연출가와 발레리노가 니진스키의 모습과 자세를 많이 연구한 후 여기에 맥락을 잡고 춤을 만들어 나간 듯 싶다.      


미국의 무용 역사가 린 가라폴라는 “자신만의 공간에 찾아온 초현실적인 존재인 황금 노예와 장미의 정령은 여성의 입장에서 바라본 사랑의 환상”이라고 말했다. 


심리학에서는 ‘환상’을 인간이 자신의 환경에 처한 현실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쓰는 방어기제라고 말한다. 특히 사랑을 이상화해서 방어기제를 쓰는 경우 부모의 삶을 그대로 닮는다고 심리학자들은 경고하고 있다.     


어쩌면 낭만적인 사랑은 이 세상에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현실에서 가능하지 않으니 그에 대한 방어기제로 낭만적이고 환상적인 사랑을 꿈꾸는지도 모른다. 현실에서는 오히려 사랑의 환상을 꿈꾸는 사람보다는 현실을 수용할 줄 아는 사람들이 더 안정적이고 예쁜 가정을 만들어나가는 경우를 많이 봤다. 이것은 연애도 마찬가지다. 결혼 생활만 현실인 것이 아니라 연애도 현실이다. 다만 연애할 때에는 그것을 못 보거나 인정하지 않는 것 뿐이다.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환상적인 사랑. 한 편의 꿈처럼 아름다운 발레 작품 <장미의 정령>을 감상하면서 잠시 작품 속에서 꿈꿔보는 것은 어떨까.     



https://naver.me/xNm9EuX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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