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의 결혼 생활이 지루한 나탈리아 부인은 남편의 친구와 묘한 관계이다. 그러던 어느 날 무료한 나날이 계속되는 이 시골 저택에 벨리아프라는 매력적인 청년이 가정 교사로 온다. 그러자 저택의 하녀인 베라를 비롯해 저택의 모든 여자들이 벨리아프에게 관심을 보인다. 사실 나탈리아도 벨리아프에게 마음이 끌렸다. 벨리아프 역시 나탈리아에 대한 마음이 커져가는데...나탈리아가 두고 간 레이스숄에 벨리아프가 얼굴을 묻는 것을 본 나탈리아. 그런 벨리아프에게 나탈리아는 가슴에 장미꽃을 달아준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두 사람은 격정적인 사랑의 파드 되를 춘다. 한편 질투에 휩싸인 베라의 폭로로 두 사람의 관계가 밝혀지고 벨리아프는 저택을 떠난다. 나탈리아는 벨리아프가 두고 간 장미꽃을 보며 슬픔에 잠긴다.
이 발레 작품을 만든 프레데릭 애쉬튼이 쇼팽이 편곡한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 주제에 위한 변주곡’을 극의 초반에 사용한 것은 이 작품의 결말이 비극이어도 희극적이 요소도 있다는 것을 암시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동안에 애쉬튼이 안무한 다른 작품들 <신데렐라>와 <베이트릭스 포터 이야기>, <호두까기 인형>을 보면 극 전반에 유머와 재치 등의 코믹 요소가 언제나 있었다는 점이다.
비극적인 주제여도 너무 무겁지 않게 풀어내는 게 애쉬튼 작품의 특징이다.
다시 버셀, <시골에서의 한 달>, 로열 발레단, 2005
작품 전반에 쇼팽의 선율이 흐르는 가운데에 벌어지는 삼각관계. 오는 여자들을 안 막는 남자 벨리아프는 여자들이 끼 부리며 다가올 때마다 ‘파드 되’를 춘다. 그럼에도 그의 마음 속에는 아름다운 귀부인 나탈리아가 있었다.
여자들이 끼 부리며 다가올때마다 ‘파드 되’를 추는 벨리아프. 로열 발레단 <시골에서의 한 달>에서 매튜 볼(벨리아프)과 프란세스카 헤이워드(베라), 2019년 공연
오는 여자 안 막는 벨리아프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나탈리아와 벨리아프
서로의 마음을 알게 된 벨리아프와 나탈리아는 격렬한 ‘사랑의 파드 되’를 춘다. 분명 춤사위는 격정적인데, 분위기는 <카멜리아 레이디>처럼 애절하면서 슬픈 감정이 마음 속에 스며드는 느낌은 아니었다. 오히려 작품을 전체적으로 볼 때에 웃음이 새어나오는 작품이었다.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찰리 채플린의 명언이 생각나는 발레 작품이다.
나탈리아와 벨리아프의 격정적인 파드 되
<오네긴>이나 <카멜리아 레이디>는 무용수 자신이 맡은 배역의 감정선을 충실하게 표현을 하는 드라마 발레라면 <시골에서의 한 달>은 비극적인 주제에 희극적인 요소가 있어서 무용수들이 캐릭터를 소화하기에 난이도가 상당히 높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무용수들의 모든 춤선과 판토 마임은 극의 줄거리와 전개까지도 암시하고 있어서 로열 발레단의 무용수들은 연극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하고 있어야 춤을 출 수 있겠다는 생각이 확실히 드는 작품이다.
애쉬튼의 발레 스타일이 발란신 메소드 못지 않게 상체의 움직임이 섬세하고 활기차다. 하체 테크닉도 발란신 메소드처럼 다양하고 복잡한 스텝을 구사한다. 차이점이라면 애쉬튼의 발레 스타일은 영국의 연극 문화를 적극 도입해 연극 발레를 추구했다면 발란신 메소드는 감정선이 전혀 없이 오로지 춤선으로만 표현하는 춤의 추상주의와 움직임의 아름다움을 추구한 유미주의 발레라는 점이다.
아주 오래전에 미국에서 발란신 메소드로 발레를 배우고 모던 발레만 했던 뉴욕시티 발레단의 발레리나 알렉산드라 안사넬리가 로열 발레단으로 이적한 후 <시골에서의 한 달>에 출연한 적이 있었다. 이 작품에서 안사넬리는 나탈리아 부인 역을 맡아 비평가들로부터 혹평을 받았다고 한다.
<시골에서의 한 달>에서 나탈리아 역을 맡았던 알렉산드라 안사넬리
한국에서 바가노바 메소드로 발레를 배웠던 박세은 발레리나는 파리 오페라 발레단에서 프렌치 발레 메소드를 배우며 발레를 처음부터 다시 배웠다고 한다. 역시 국립 발레단의 수석 무용수였던 이은원 발레리나도 워싱턴 발레단으로 이적한 후 메소드가 전혀 달라 한동안 고생을 했다고 한다.
20세기 중반에 발란신이 이끄는 뉴욕시티발레단에서 모리스 베자르 발레단으로 잠시 이적해서 베자르의 작품들에 출연한 적이 있는 미국인 발레리나 수잔 패럴만이 메소드로 고생하지 않았다. 모리스 베자르 역시 오직 춤선으로만 음악을 표현했기 때문에 수잔 패럴은 베자르 스타일의 메소드와 발레 작품에 금방 적응했다고 한다.
이렇게 발레 메소드가 비슷한 경우에는 금방 적응하지만 전혀 다를 경우에는 아무리 실력이 뛰어난 프로 무용수들이라도 한동안 적응하느라 고생을 한다. 더구나 알렉산드라 안사넬리는 미국에서 모던 발레만 해왔던 연기를 전혀 해본 적이 없는 발레리나였기 때문에 로열 발레단에서 안 해 봤던 연기를 했으려니 무척 힘들었을 것이다.
무용수로서 상당히 이른 나이에 은퇴하고 제 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알렉산드라 안사넬리
이 작품을 초현했을 당시 영국 발레의 한 획을 그었던 발레리노 앤서니 도웰이 벨리아프 역을 맡았고, 역시 로열 발레단의 간판 스타였던 린 시모어가 나탈리아 역을 맡았다고 한다. 이 두 분이 출연한 그 날의 공연은 열광의 도가니였다고 한다.
영상 속 공연은 도쿄실황 공연으로 나탈리아 역으로 나온 전설의 발레리나 실비 길렘의 뛰어난 연기력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