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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바라기 Oct 25. 2023

인생은 계획대로 되는 게 아니야

 하지만, 해석하기 나름이지

  처음으로 수요 여성 예배를 가려고 준비해서 주차장에 내려갔다. 늘 직장에 다녔기 때문에 수요 예배를 갈 수 없었는데, 당분간 쉬게 되었다는 걸 알게 된 목사님의 권유로 고민하다 용기내서 가 보기로 했다. 정말 용기가 필요했다. 날 아는 분들을 만나면 '학교 안 가고 어쩐 일이냐' 물을 것이고, 난 거기에 또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 놓으며 쉬게 되었다고 설명을 해야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복잡해 망설여졌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단정한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차에 타서 시동을 걸자 '부르르~~ 틱 틱, 부르르~~ 틱 틱' 소리만 날뿐,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분명 그저께도 멀쩡하게 차를 사용했었는데, 밧데리가 나간 것이었다. 밧데리가 나간 건 이번이 세 번째라 많이 당황하진 않았지만, 예배 시간이 다 되어가고 있어 마음은 급했다. 보험 회사에 전화를 걸어 출동 서비스를 요청했고 근처에 있던 기사는 하고 있던 일이 마무리가 안 되어서인지 주차장까지 오는데 20분은 족히 걸렸다. 시동은 금방 켜졌지만 기사 분이 지금부터 1시간 정도는 엔진을 돌려야 한다고 하셨다.


  "사람들은 보통 30분 정도 돌리면 된다고 하지만, 저희는 1시간 정도 돌리라고 말씀드려요. 충분히 엔진을 돌려야 안전하거든요."


  1시간 동안이나 시동을 끄지 말란 얘기에 당황했다. 교회는 차로 10분 밖에 걸리지 않는 곳이라 주차장에서 한 시간 가까이  공회전을 시켜야 할 판이었다. J성향이 강한 나는 계획을 세우는 것이 일상이고, 예측되지 않는 상황을 매우 힘들어한다. 이런 나에게 갑작스런 변수는 달갑지 않았다.


  결국, 한 시간을 도로에서 버텨보자는 마음으로 무작정 나갔다. 나도 모르게 늘 출근하던 길로 차를 몰았다.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공원으로 목적지를 정했다. 공원의 꽃밭이 예쁘다던 얘기를 듣고 가을 초입에 가족들과 같이 가보자고 얘기만 하다가 못 가본 곳이라 혼자라도 가보기로 했다. 20분이면 가는 곳인데 일부러 먼 길로 돌아서, 돌아서 꼬박 한 시간을 채우고 도착했다. 주차장에 제법 차들이 많이 있었다. 공원 곳곳에 돗자리를 펴고 앉아 있는 사람들도 있었고, 다니며 사진 찍는 사람들도 많았다. 연인끼리, 가족끼리, 친구끼리 얘기하며 행복해하는 모습에 나만 혼자인 것 같아 왠지 서글프기도 했다.


  초등학생들도 꽤 많이 와 있었다. 돗자리 펴서 점심 먹고, 아이들끼리 뛰어 놀고 있는 걸 보니 체험학습을 온 듯 했다. 얼마 전, 체험학습 차량 관련 법이 갑자기 바뀌면서 일반 관광버스를 타고 갈 수 없게 되어 부득이하게 체험 학습을 취소하는 학교들이 많았었다. 이 학생들도 학교 근처에 걸어갈 수 있는 곳으로 체험 학습 장소를 변경해서 온 듯 했다. 우리반 아이들 생각이 났지만, 아이들을 생각하면 자책감과 미안함이 나도 모르게 스멀스멀 올라와 애써 외면했다.


  혼자 씩씩하게 꽃밭에서 사진도 찍고, 가을 정취도 마음껏 만끽하면서 밧데리가 나간 덕분에 콧바람을 쐬게 되었다며 나를 다독였다. 산책길을 따라 한 바퀴 돌다보니 만보기가 꽤 많이 카운트 되었길래 한번 돌았던 길을 또 돌면서 만보를 채우곤 나 혼자 뿌듯해하며 생각했다.


'그래, 내가 계획했던 대로 되진 않았지만 이것도 나름 의미있고 소중하지. 지금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가을을 놓치지 않고 누릴 수 있음에 감사하자.'


 '교권 침해를 당한 경험도, 학교를 쉬게 된 이 상황도 더 좋은 교사가 되기 위한 과정이라 생각하자. 상처가 아물어 딱지가 앉았다가 떨어지고 나면, 너무나 아팠던 상처들이 나를 성장시켰다고 웃으며 돌아볼 날이 오겠지.'


집으로 돌아오는 길,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브런치에 남길 이벤트(?)가 생긴 걸 감사하며 놓치지 말아야겠다 마음 먹었다. 역시, 인생은 해석하기 나름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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