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방영했던 드라마 '유미의 세포들'을 우연히 몰아보기 했다. 주인공 유미는 서른셋의 나이에 작가가 되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는 장면이 나온다. 사표를 내기 전, 고민하던 유미는 이런 말을 한다.
'나한테 그런 무모한 시도를 할 수 있는 용기가 있었다니.'
'멋진데?'
'세른 셋은 상상만 해도 끔찍하고 지루할 것 같았는데.'
'그래도 멋있는 포인트가 있네.'
결국 유미는 회사를 나오고 여러 번 공모전에 떨어지는 아픔을 겪고 작가로 데뷔한다. 서른셋의 '무모한 선택'이 '멋진 포인트'로 변해 그녀가 갖고 있던 작가 세포를 활성화시켜 인기 소설 작가로 성공한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끊임없이 선택하며 살아간다.
프랑스의 유명한 실존주의 철학자이자 소설가인 장 폴 사르트르가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인생은 B와 D사이의 C다.
인생은 생(Birth)과 사(Death) 사이에서 늘 선택(Choice)을 해야만 한다는 의미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죽는 순간까지 우리는 매 순간 선택을 하고, 현재의 나는 과거에 내가 했던 수많은 선택들이 모여 만들어진 것으로, 현재의 선택들로 미래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내 기억에 인생에서 첫 번째 중요한 결정은 대학 선택이었다. 19살 어린 나이에 대학을 선택했고, 대학을 졸업한 이후에는 교사가 되었으며 몇 번 학교를 옮기며 근무하다가 올해 잠시 쉬기로 선택했다. 그 사이에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다. 학창 시절에는 어떤 친구를 사귈 건지, 공부는 어떻게 할 건지, 동아리를 뭘로 할 건지 결정하며 살아왔다. 이런 일련의 선택들이 현재의 나를 만들었다. 결국, 인생의 순간순간 결정한 나의 선택으로 지금까지 온 것이다. 미래 역시 나의 선택으로 만들어질 것이다.
뇌과학자 박문호 박사는 한 영상에서 기억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기억이라 적고 감정으로 읽는다.'라고 말하며, 감정이 선택과 판단을 한다고 말한다. 우리의 일생은 판단과 선택의 연속이기 때문에 수많은 선택지 중에 좋은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풍부한 기억이 필요하다는 논리로 설명했다. 난 그것을 '좋은 기억'이라고 바꿔 말하고 싶다. 좋은 기억은 그저 행복했던 기억으로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성장하도록 돕는 일련의 모든 기억'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나의 최애 드라마 '무인도의 디바'에서도 박은빈의 대사가 가슴을 울린다.
"다음에 다음에 가 많아지믄요, '이래 불걸' '저래 불걸' 후회도 그만큼 많아져 불어요. 인자 지는 당장 하고 싶은 일을 할 거예요."
"포기가 용기 다고요? 그랬으믄 지 여기 읎어요. 무인도서 진즉에 죽어 불었어요."
15년 만에 무인도에서 구출된 박은빈에게 세상은 계속 선택하기를 요구한다. 큰 파도 같은 세상 앞에서도 위축되지 않고, 무인도에서 폭풍을 이겨낸 힘으로 당당함을 선택하는 박은빈의 눈빛과 미소가 날 빠져들게 한다. 박은빈의 선택은 무모해 보였지만 결국 좋은 선택이었다는 걸 증명하며 드라마가 진행된다. 어떤 선택을 하기 전에, 박은빈은 홀로 15년간 무인도에서 외로움과 싸우고, 두려움을 이겨냈던 그 기억들을 끄집어낸다. 그 기억을 바탕으로 통찰력 있는 선택들을 이어간다.
최근에 잠시 일을 쉬기로 결정했고, 갑자기 주어진 이 시간들을 허투루 쓰고 싶지 않아 책을 읽으며 글을 쓰기로 선택했다. 또 다른 세상을 발견하며 그동안 내가 보고 있었던 세상이 전부가 아니란 것을 깨닫게 된 것도 나의 선택 때문이었다. 작가를 꿈꾸게 된 것도 내 선택의 결과 중 하나가 되었다.
좋은 선택을 하기 위해 좋은 기억들이 필요하다. 책도 읽고 사색도 하고 조언도 듣는 과정을 통해 박문호 박사가 말한 풍부한 기억이 차고 넘칠 때 우리는 삶의 통찰력을 얻고 좀 더 좋은 선택을 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