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살 한글 떼기 도전기(1)
천천히 가도 괜찮아, 포기하지만 말자.
2월 말, 우리 반에 배정된 아이들 명단 속에 새로 특수학급에 입급 예정이라고 적혀 있는 아이가 한 명 있었다. 4학년이 되서야 특수학급에 입급되는 걸 보니, 아이가 학습적으로 크게 뒤떨어지는 건 아닌가 보다, 막연히 생각했다.
자리도 제일 앞자리로 미리 정해 두었다. 내 바로 앞에 앉혀서 부족한 부분을 도와줄 요량이었다.
첫날, 아이가 칠판에 적힌 글씨를 보고 따라 쓰길래 글씨를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혼자서는 전혀 쓸 줄 모르고, 씌여진 글씨를 보고 따라서 '그리는' 걸로 학교 생활 3년을 버틴 거였다.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아이에 대한 안타까움이었다.
읽고 쓰는 것에서 시작하는 학교의 모든 수업 속에 하루종일 까막눈으로 앉아 있었으니 얼마나 답답하고 힘들었을까 하는 안타까움이었다.
그 다음은 부모의 무심함에 대한 답답함이었다.
아이가 3년간 학교 다니면서 한글을 못 깨쳤는데 그냥 내버려 뒀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학부모 상담 기간에 전화 상담을 할 때 '학교에 특수반이 있다는 걸 몰랐다.'는 말로 변명 아닌, 변명을 하며 모르쇠로 밀고 나가는 엄마가 참 답답했다.
나는 당장 한글을 깨치는 게 시급하다고 여겨 방과 후에 무조건 남으라고 했다. 남아서 아주 쉬운 동화책부터 읽혀야겠다고 생각했다.
학교 도서관에서 글밥이 아주 적은, 얇은 그림책 몇 권을 빌려왔다. 받침 없는 동화부터 읽히고 싶었지만, 비치되어 있지 않아 아쉬운 대로 페이지마다 글밥이 한 줄을 넘기지 않는 그림책으로 빌렸다.
이건 읽을 수 있을 줄 알았다.
오산이었다.
받침 없는 쉬운 글자 '몇 개'만 읽고 나머지는 못 읽었다. 받침 있는 글자만이 아니라 받침 없는 글자도 모르는 게 태반이었다. 몇 번 시도 끝에 그림책을 내려놨다.
1학년 아이들이 처음 학교에 와서 한글 수업을 받을 때 사용하는 '찬찬 한글'교재 첫 페이지부터 시작했다.
'ㅏ, ㅓ,ㅗ,ㅜ'부터 읽었다.
'그래도 앞부분은 금방 넘어가겠지.' 내심 기대했다. 빨리 한글을 떼서 글 읽는 기쁨을 알게 해 주고 싶었다.
그. 런. 데. 벽을 만났다. 'ㅣ와 ㅡ'의 벽!!
'ㅣ'와' ㅡ'를 구별하지 못했다. 신기했다. 방금 'ㅣ'라고 읽어 놓고, 바로 이어서' ㅡ'라고 읽었다. 몇 번 반복하면 될 줄 알았다. 원인은 알 수 없지만, 아이에게 생긴 기억의 오류는 쉽게 바뀌지 않았다.
'기대치가 너무 높았던 걸까?'
매일 남아서 30분씩 읽는데도, 읽는 속도가 늘지 않았다. 속도뿐만이 아니라 계속 'ㅣ 와 ㅡ'를 헷갈려하는 걸 보면서 순간 계속해야 하는 건지 망설였다.
하지만, 몇 년 전에 맡은 2학년 아이 한 명이 결국 한글을 떼지 못하고 3학년에 올라갔던 기억이 떠오르며 좀 더 인내가 필요하다고 나 스스로 다독였다.
그렇게 한 달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