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야 춤추는 연기왕 반장
아직 1,2편을 보시지 못하신 분들을 위한 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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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다시 이야기를 이어가 보겠다.
그렇게 말없고 소심한 아이였던 난, 어느새 초등학교에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린이집도 충분히 큰 세상인데 학교라는 세계는 얼마나 웅장하고 거대할까, 상상이 않갔다. 다른 아이들처럼 나 역시 설렜지만 한편으로 참 떨리는 마음도 있었다.
사실 '난 아직 말도 어렵게 하는데 학교 갈 자격이 있을까 생각했다'라고 쓰고 싶었다.
하지만 솔직히 그건 그냥 내가 쓰고 싶은 것이고 거짓말은 쓰지 않겠다. 그때는 난 그저 어리바리한 꼬마였으니까 그런 속 깊은 생각을 했을 리 없다. 오히려 두려웠던 것은 내가 아니라 엄마였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내가 첫째여서 자식 학교를 보내본 경험이 없으셨고 게다가
말없는 딸이니까 정말 걱정이 심하셨을 것 같다.(이런 생각을 하니 갑자기 죄송하다. ㅜ.ㅜ )
감사하게도 엄마는 날 끝까지 믿고 지지해 주셨다.
그렇게 난 초1이 되었고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친구에 관한 걱정은 첫날 가자 말끔히 사라졌다. 7살 때 가장 친했던 친구와 운 좋게도 같은 반이 되었고, 신기하게도 같은 아파트, 같은 층에 또래 여자아이가 이사 왔다. 그렇게 난 그 둘과 친하게 지냈다. 친구가 있단 것만으로 학교생활이 훨씬 수월하게 풀려나갔다.
학교가 끝나면 종종 엄마와 함께 놀이 치료를 받으러 갔다.
1학년이 돼도 변화가 없자 엄마께서 조금 초조하셨을 것 같다. 내 기억으로 놀이치료는 꽤 재밌고 즐거웠다.
이름대로 거의 노는 것이었고, 학습지를 푼다 해도 표정들을
맞는 것 같은 감정들에 붙여 넣는 그런 간단한 것들이었다.
무엇보다 치료 선생님이 정말 상냥하셨다. (당연히 무서우면 안 되겠지만 ㅎ)
슬프게도 학교를 들어갔다고 변화가 막 갑자기 찾아오진 않았다. 그런데 변화가 우리를 찾아오는 게 아니라 우리가 변화를 찾아가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역시 모든 것에는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
갑자기 생뚱맞은 곳으로 이야기가 새어버린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
그렇게 1년은 꽤 빨리 지났다. 그럭저럭 뭐 괜찮았던 것 같다.
잘 기억은 안 나지만 2학년 때 조금은 나아졌던 것 같다.
생각해 보니 내가 2학년이었던 2020년에는 코로나19가 한창 유행할 때였다. 일주일에 최소 2번은 EBS 교육 프로그램이나 비대면 수업을 들어서 누군가와 대화할 기회도 많진 않았다. 그리고 2학기 때부터 엄마께서 나의 자신감을 키우시려고 스피치 학원을 등록해 주셨던 기억이 난다. 논술 학원 같은 것인데, 매일 어떤 글 하나를 읽고 그에 대한 생각을 공유하고 그에 대한 글을 써서 발표하는 수업으로 진행되었다. 가끔 시간이 남으면 초성 퀴즈나 잼말놀이 할 것도 내주셔서 재밌었다.
자, 2021년이 오고 난 3학년이 되었다.
이제부터 본론이다. 기대하시라.
첫날 교실로 들어서 주변을 둘러보자 어라, U양이 보였다. 나의 반응은 그냥 오 반갑네, 였다. 소설에서 많이 나오는 것처럼 속에서 복수심이 끓어올랐다거나 하는 감정은 없었다. 그래도 3년이 지났는데, 이미 화도 다 풀린 상태였다.
그런데 조금 웃긴 것은 우리 둘의 위치가 뒤바뀌었단 점이다. 원래 조용한 아이는 나였고 U양은 좀 더 활발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3학년을 보내면서 난 조금씩 변해갔다.
하루는 도덕시간에 차례로 두, 세 명씩 돌아가면서 상황극을 했다. 나는 숙제를 못해와서 우는 아이였고, 상대역을 맞은 애는 날 달래주는 연기를 해야 했다. 상황극이 시작되자 난 얼굴을 감싸 안고 우는 연기를 했다. 이때 잠깐, 보통 애들은 우는 연기를 한다 하면 '흑흑'이라 말하며 한다. 선생님도 그렇게 생각하셨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하는 연기는 그저 작은 상황극일 뿐이니까.
그래도 나는 연기를 좋아하고 꽤나 진심이었던 터라, 진짜로 흐느껴 우는 연기를 했다. 뭐랄까, " 흐으으.. 윽... 흑... 으으..'
이런 느낌(?)이었다. 당연히 모두 대충 할 것이라 생각했는지 내가 그렇게 하자 모두 놀란 눈치였다. 오~ 하는 감탄사도 몇 번 들렸다. 상황극이 끝나자 모두들 한 마디씩 칭찬을 해줬다. 어떤 애는 진짜 우는 거였냐 해서 너무 뿌듯하고 좋았다. 그뿐만 아니라, 나중에 연기 수업에서 마지믹 날에 연기왕 상장을 딱 다섯 명에게 주셨다. 모든 애들은 책상에 엎드려 있어야 했다. 난 '에이 설마...' 하고 있었는데 고개를 드니 상장이 보였다. 너무나도 기뻤다. 그래서 가족들이 종종 날 연기왕이라고 장난스럽게 불러댔고 요즘도 그런다..( 이제 4년 전인데 )
또 다른 변화는 자신감이 꽤나 지나치게(?) 올랐단 점이다. (사실 요즘엔 조금 줄어들었다 ) 갑자기 발표를 많이 하면서
우수한 학생이 되고 싶다는 왠지 모를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 거의 늘 손을 들며 발표를 해대니까 목소리도 점점 커졌던 것 같다. 더 이상 목소리가 작다는 말을 들으면 예전과 달리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또 회장선거에 도전해 봤다. 그냥 처음 해봐서 재밌을 것 같았다. 1학기 때는 적은 표와 같이 떨어졌는데 마냥 즐거웠고, 2학기 때는 붙었다! 게다가 부회장도 아닌 회장으로. 정말 행복하고 뿌듯했다. 지금 생각하니 투명인간에서 회장이라니, 그래도 꽤 놀라운 발전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뿐만 아니라 춤도 잘 추게 되었다. 여기서 잠깐, 오해하면 안 되는 것 이 있다. 내가 춤을 잘 추었단 건, 잘 추었다는 게 아니다. 그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은 막춤을 선보였던 것뿐이다. 하루는 음악시간에 선생님께서 회장 부회장들에게 나와서 어떤 노래에 맞추어 춤을 춰보라 하셨다. 나를 포함한 세 명이 나갔다. 회장인 내가 그래도 모범을 보여야지 싶었고 이상하게 그때는 딱히 창피함이 없었다. 혼신의 힘을 다해 즐겁게 막춤을 췄다. 다하고 나니까 약간 창피했는데 옆에서 부회장 남자애 한 명도 나랑 똑같이 격하게 해서 안심이 되었다. 나머지 두 명이 조심스럽게 살랑살랑 출 때, 나랑 그 부회장은 아무 생각 없이 팔락 팔락 췄다는 ㅎㅎ;;
그래도 좋았던 것은 그 애들은 또다시 춰야 했고 우리 둘은 자리로 들어가게 해 주셨단 것이다.
약간 아쉬운 점은 이젠 때와 장소를 많이 가리게 됐단 점이다. ㅎ
어쨌든, 아까 U양과 나의 위치가 바뀌었다 말했었다. 사실 U양이 조금 얌전해진 건지 내가 좀 날뛰었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둘 다 일수도) 가을에 한번 학교 놀이터에 나가서 돗자리를 펴고 시를 쓰는 시소풍을 했다. 난 친한 친구들이 있었기에 같이 그 애들과 앉으려고 했다. 그런데 선생님이 U양을 데려오시더니, U양과 같이 앉아주라고 부탁하셨다. 알고 보니 U양은 친하게 지내는 친구가 반에는 없었다. 솔직히 처음에는 좀 고소했다. 쌤통이다 하고 생각하다가 내심 좀 불쌍한 마음이 들었다. 친구들과 못 앉는 것은 아쉬웠지만 하는 수 없이 같이 U양과 돌아다녔다. U양도 이젠 나를 살갑게 대했다. 그래서 조금 더 마음이 풀렸다.
이번엔 꽤 긴 글이 된 것 같다. '투명인간에서 회장까지' 시리즈는 이쯤에서 마무리하도록 하겠다. 하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니 글을 나가지 않으시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작은 메시지 하나만 읽어보시길.
To. 독자분들
지금까지 '투명인간에서 회장까지' 에피소드 시리즈를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언젠가 한번 꺼내보고 싶던 이야기를 이렇게 일찍 꺼내니 정말 좋네요.
이 이야기가 예전의 저 같은 자식을 가지신 분들께 희망을 심어줬으면 합니다. 사실 엄청난 해결책은 없어요. 시간이 답인 듯해요. 이 모든 걸 경험했던 저로서 그런 아이가 얼마나 괴로울지, 말을 꺼내는 것 자체가 얼마나 힘든 것인지 알거든요. 물론 부모님들께서도 힘드시겠지만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꾹 참고 뒤에서 열심히 응원해 주시면 아이도 점점 용기를 낼 거예요. 생각해 보니 거의 모든 문제의 답은 시간인 것 같네요. 시간이 흐르고 나면 많은 게 변해져 있으니 조금만 힘내세요!
또 한 가지 추가로, 물론 시간이 지나면 자신감이 조금씩 생길 것이고 말도 편하게 할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어릴 때부터 뼛속까지 내향적이었던 아이를 외향적으로 바꾸긴 힘들 거예요. 제가 3학년 때 좀 날뛰었다고 써놓아서 약간 오해하실 수도 있는데, 전 그때도 참 조용한 아이였어요.
그래도 그때부터 지금까지는 말을 못 하는 게 아니라, 그저 거의 말하고 싶지 않아 말을 아낀 거라는
확연한 차이가 있죠.
이제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다 쓴 거 같습니다.
지금까지 제 글들을 쭉 읽어주시고 지지해 주시는 독자분들,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조금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