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
정말 눈만 깜빡이면 머리가 새하예질 것 같았다. 눈을 부릅뜨고 헤드폰을 꼈다. 정말이지 이번이 마지막 기회였고 그만큼 너무나 간절했다. 이번 해를 마치면 싱가포르를 떠나니까 제발 잘 봐야 하는데...
시작에 앞서 내가 왜 이렇게 간절했는지, 대체 뭘 해야 됐는지, 애초에 EAL은 뭔지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설명해 드리겠다. EAL은 사실 'English as an Additional Language'의 약자이다. 이 말은 즉, 영어가 제2 외국어이고 영어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을 위한 영어 보충 수업이라 보시면 된다. 나도 해외살이가 처음이고 어쨌든간 영어 왕초보였기에 다른 애들이 정상적인 영어 수업을 들을 때, 나는 EAL 수업을 듣곤 했다.
EAL에서는 학기 중간과 끝마다 이 EAL을 벗어나 영어 초급자의 타이틀을 버리게 될 절호의 찬스가 주어지곤 했다. 바로 시험이었다. 그렇다, 시험만이 살길이었다. 윗글을 보셨으니 아마 예상하셨겠지만... 나는 그 절호의 찬스를 여러 번 놓친 자 중 한 명이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말이다, 말도 안 되는 수준의(= 내 기준) 시험 문제들이 그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곤 했다. 그래서 늘 EAL 합격자 명단을 보고 쓸쓸히 박수를 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나에게 6학년이란 새로운 해가 찾아왔다. 그리고 어느덧 대망의 시험 날이 다가왔다. 이번엔 기필코 통과하자고 다짐했다. 아니, 꼭 통과해야 했다. 6학년이 끝나면 우리 가족은 한국으로 돌아갈 계획이었고 이번 시험에서 떨어지면 내년 시험을 다시 봐야 하는데, 어차피 다음 연도에는 없을 거니 말이다. 그리고 솔직히 이번 시험에서 EAL 탈출도 못하면... 그래도 2년 넘게 살다가는 건데 그놈의 자존심은 또 지켜야 했다. 통과 못하면 그냥 국제학교는 없던 일로 하자는 계획과 함께 헤드폰을 끼고 시험을 시작했다.
총 듣기, 쓰기, 말하기, 문법, 읽기, 이렇게 다섯 파트로 구분돼있었다. 문법이 그나마 나았다. 오 꽤 괜찮은데 하고 여유만만했지만, 듣기 파트로 들어간 이후로는 웃을 수 없었다. 와.. 이것도 못 푼다고? 계속 못 푸네? 그래도 곧 산지 2년 되는데 실력이 왜 이따구냐? 정말 온갖 찍기 방법을 동원하며 문제를 푸는 내가 초라하고 한심했다. 그렇게 길고 긴 시험이 끝난 후 녹초가 되었다. 절망스러웠다.. 아.. 싱가포르에 갔다 왔다는 이야기는 꺼내지도 말아야지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엄마께서 이메일을 보시더니 나를 불렀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EAL' 합격이었다. 어?? 진짠가? 대박! 너무 감격스러웠고 놀랍고 행복했다. 분명 시험에서 똥칠을 해놓고 왔을 텐데 의아했다. 하지만 어찌 됐든 너무 기뻤다. 이제 중수던 고수던 초보는 아니라는 생각에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해외살이 출신을 자랑할 자격이 생겼다는 게 행복했다.
그 후론 나도 이제 영어가 모국어인 아이들과 정식적인 영어 수업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첫 수업이 끝나자 기쁨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동안 EAL에서 공부했던 건 정식 수업에 비하면 누워서 떡 먹기였구나.. 잠시 멘털이 나갔다. 프린트 물을 주셔도 글을 읽어도 도통 이해가 안됐다.
그렇게 초반에는 힘들었지만 나름 적응해 나가니 재밌었다.
그렇게 EAL을 무사히 탈출한 후에 뿌듯하게 귀국할 수 있었다^^.
아무리 EAL을 탈출했지만 아직 많이 부족하단 건 한국 영어학원에 와서 자연스레 깨닫게 되었다.
앞으로 더 열심히 해서 언젠간 영어 초고수가 되고야 말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