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
저번 글에서 처럼 자잘하지만 곤란한 사건들이 터져버릴 때가 있었지만 그래도 어쨌거나 순조로운(?) 5학년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전편 '8. 쉿! 아니고 쉬이이—' 참고)
어느새 가을 감성은 개뿔 여름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 슬프게도 싱가포르는 1년 내내 여름이다) 10월이 다가왔다.
하루는 저녁을 먹고 뒹굴거리는데 엄마께서 핸드폰을 보며 말씀하셨다.
"어? 너네 학교에서 캠프 가네?"
응..? 캠프??
에이 설마, 자고 오는 건 아니겠지, 다가온 현실을 부정하며 엄마가 보시던 알림을 봤는데...
4박 5일.
잘못 써진 거 아닌가 몇 번을 의심했다. 아니, 고작 5학년인데 이렇게 오래? 네 밤이나 버티라고?
예전부터 가족과 떨어져서 자고 오는 건 질색해 왔던 사람으로서 심장이 쿵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물론 방에서 혼자 자긴 했지만 솔직히 말하면 혼자자기 시작한 지가 4학년쯤부터였다. 혼자 자는 것도 오래 걸린 데다가 어릴 때 가족 없이 할머니댁에서 잤을 때의 두려움이 약간의 트라우마로 남아있던 상태였다. 심지어 대부분의 아이들과 달리 난 친구네 집에서 자본 경험도 없어서 다른 아이들과 함께 잔다는 점에서 적잖은 멘붕이 왔다.
엄마도 그런 점을 아셨던 터라 내게 너무 싫으면 담임선생님께 못 간다고 전해준다 하셨다.
휴... 안심이 되었다. 하지만 '나만 안 가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들었다. 그럼 나만 겁쟁이 아냐? 이제 고학년인데... 그래도 새로운 경험을 피하기만 하면 좀 그렇잖아?
꽤 오랫동안 고민한 후, 엄마께 가겠다는 각오를 전했다.
며칠 뒤, 학교 강당에서도 캠프에 관한 사항들을 안내했다.
여기서 나의 굳다고 믿었던 각오가 꺾이려 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첫째, 캠프 장소였다.
당연히 난 그냥 30분 정도 걸리는 싱가포르의 숲 같은 곳으로 가려나보다 생각했다. 싱가포르가 얼마나 작디작은 나라냐면, 차로 거의 모든 곳을 30분 안에 간다. 1시간 정도 가면 국경을 넘는다.(농담 아니고 정말이다.) 하지만 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일단 1차 충격은, 싱가포르가 아니란 점이었다.
정답은 바로 옆에 있는, 차로 국경을 넘어갈 수 있는 말레이시아였다!
2차 충격은, 버스로 가는데도 대략 여섯 시간이나 걸린단 점이었다. 말레이시아도 가까운 곳은 한 시간 안에 가는데.. 아.. 절망스러웠다.
둘째는 더욱 절망스러웠다.
일정이 꽤나 많이 힘들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그 일정이 모두 몸을 많이 쓰는 야외활동이란다. 몸 쓰는 건 딱 질색인데. 물론 야외활동을 할 거라 예상은 했다. 하지만 활동들의 사진을 보니 공포감이 밀려왔다. '저 위험한 걸? 저 힘든 걸? 학교 잘 못 왔나'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렇게 시도 때도 없이 불안감이 밀려왔지만.. (물론 기대도 됐다.. 100퍼센트 중 30 퍼쯤?)
며칠 뒤 캠핑 용품을 커다란 배낭에 욱여넣고 있었고
몇 주 뒤엔 깜깜한 새벽에 멍해져서 학교에 가있었다.
왜 내가 여기 있지 생각할 때쯤엔 이미 부모님과 작별인사를 하고 버스에 올라탄 뒤였다.
나랑 일본 여자애와 핀란드 여자애 이렇게 세 명이 친했는데,
둘이 나란히 앉아 당황스럽고 걱정되던 참이었는데 다행히 걔들만큼은 아니지만 꽤 친한 중국 여자애와 같이 앉게 되었다.
버스에 좀 앉아있다 보니 정신이 들었다. 그때는 아주 태연했다. '에이 별거 아니네~엄마 아빠 하나도 안 보고 싶은데?' 생각하며 편안히 창가를 내다보았다.
그땐 첫날부터 폭풍 오열을 할지 몰랐다.
길고 긴 버스 여행을 끝내고 마침내 캠프 숙소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크고 깔끔했다.
이미 녹초가 돼있었지만 숙소 식당에서 맛이 더럽게 없는 점심을 먹고 곧바로 등산을 하러 갔다. 어땠냐 묻는다면.. 음... 덥고 벌레들이 좀 날아다녔고 가렵고 힘들고... 이 정도?라고 할 수 있겠다.
등산이 끝나자 정해진 방에 룸메이트들과 들어갔다. 운이 좋게도 아까 말했던 친한 핀란드 친구 Si 양과 일본 친구 H양과 같은 방이 됐지만, K양과 그의 친한 일본 친구 R양도 같은 방이 됐다는 점이 좀 충격이었다.
돌아가며 샤워를 하고 충분히 휴식을 취한 후, 침대 쟁탈전이 시작되었다.
왜냐하면 방에는 총 3개의 이층침대가 놓여있었고 우리는 다섯 명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층침대의 윗층이 무서워서 아래층에서 자야지 생각하고 있었다. 다른 아이들은 다 위층을 택할 거라 생각하고 걱정하지 않았지만 모두 아래층을 택하는 돌발상황이 발생했다.
잠자는 장소라 그런지 모두 신경이 곤두서 있었고 어찌어찌 나와 R양이 위층에서 자게 되었다.
점심보다는 한결 나아진 저녁을 먹고 5학년 전체가 홀에 모여 앞으로의 자세한 일정을 들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너무 무섭고 불안했다. 밖을 보니 이미 너무나 어두컴컴했고 집이랑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 생각하니 벌써부터 가족이 보고 싶었다. 나도 모르게 그냥 그 자리에서 울어버렸다. 주위에 있던 아이들이 당황했고 한 선생님이 나를 홀 밖으로 데려가 달래주셨다. 괜찮다고, 모두 같은 마음 일 거라고, 할 수 있다고. 다른 아이들도 나를 위로해 주었다. 방으로 돌아가서 내가 위층에 자는 걸 두려워하자 H양이 나에게 아래층을 양보해 줘서 더더욱 감동받고 용기를 얻었다. 차분히 애착 펭귄 인형인 펭또를 안고 누웠지만 또다시 눈물 폭포가 쏟아졌다. 다른 아이들의 코 고는 소리가 들리자 나만 깨어있나 싶어 무서웠다. 어둠 속에서 한참 혼자 조용히 울었다. 이 남은 나날을 어떻게 보낼지 걱정이 태산이었다. 호흡이 가빠졌다.
쉽게 잠이 들지 않았지만 곧 익숙해지리라 믿고 겨우 잠에 빠졌다.
첫 스쿨캠프였던 만큼 너무나 설레고 떨리면서 무서웠던 기억이 많다. 이 글을 쓰면서 추억에 너무나 이입한 나머지 공포감까지 제대로 다시 한번 느꼈다. 그리고 이 글을 쓰며 여자여서 다행이다, 군대 안가도 돼서 다행이다란 생각이 들며 안도했다.
마지막 문장에 대한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쉽게 익숙해지지 않았고 않을 것이다. 고백하자면 캠프에서 맨날
울어서 눈이 시뻘겠다. 맨날 힘들고 맨날 무서웠다. 6학년때도 또다시 정확히 똑같은 장소로 캠프를 갔었는데
생각해 보니 그때도 계속 울었다. (아 왜 웃기지 ㅋㅋㅋ) 하지만 그만큼 즐거웠고 행복했다. 모두 처음인 만큼 서로 위로하고 응원해 주었기에 힘들었던 추억도 어렵지 않게 되새길 수 있지 않은가 싶다.
하지만 다시 갈 거냐고 묻는다면 No, never again!이라 답하지 않을까. 물론 재밌었지만 두 번이나 했고 충분히 고생한 것 같은데 ^^ 굳이 또 가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처음 캠프를 가는 사람에게는 추천드린다. 한번 가보라, 우정도 조금 더 돈독해지고 즐거운 추억을 쌓을 수 있을 것이다.(단, 힘들지 않다는 건 장담 못함 ㅎㅎ)
이 우여곡절의 캠프 생활이 어떻게 이어질지 궁금하다면, 다음 주에 올라올 2편을 기대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