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2. Swimming Carnival

수영 카니발

by 작은 브러시

2024년의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던 날..이라고 하려 했지만 생각해 보니 싱가포르는 애초에 매년 여름이기에 의미 없어서 패스.


원래도 충분히 덥고 습했던 날씨가 푹푹 찌기까지 하며 짜증도 팍팍 오르는 나날이 이어졌다.

이럴 때 모두가 간절히 원하게 되는 건 바로 무엇인가?

맞다, 바로 이런 스트레스를 한 번에 싹 씻겨줄 시원한 수영장에 들어가서 잔잔한 물 위에 근심 없이 떠있는 것이다.

딱 그 정도면 된다, 아니 딱 그 정도여야 한다. 그냥 누워서 떠 있기. 왜냐하면 난 수영을 극도로 싫어하기 때문이다. 정말, 정~~ 말 질색이다. 기본적인 자유형, 배영, 평영은 할 수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연속으로 다섯 번 정도만 동작을 반복해도 너무나 숨이 찼다.

체력 탓인지, 운동 신경 부족 탓인지, 아니면 둘 다 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난 아무리 계속해도 수영 초짜(이다..)였다.


그런데 내가 다니던 이 학교가 어떤 학교인가, 바로 호주 국제학교다. 그러니까 이 학교의 절반이 호주 아이들이란 말이고 그 호주 아이들은 물구나무와 각종 묘기를 물 마시듯 하는 애들이었다. 그렇게 뛰어난 운동신경을 자랑하는 호주인데, 학교는 어떨지 뻔하지 않은가?

이 죽도록 힘들게 운동을 시키는 학교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스포츠 이벤트를 잘도 개최했는데, 하필 'Swimming Carnival', 그러니까 수영 카니발이었던 것이다.


아... 최악이다. 내가 그렇게 싫어하는 수영이라니, 대체 왜지?? 이런 불만들은 생각하는 것은 시간 낭비 었고 슬프게도 난 거의 선택권이 없었다. 당일날 아프지만 않다면 말이다. '아.. 제발, 내일 열 38도까지 올라라~ 아파라~'

이런 주문을 간절히 외우며 잠에 들었고 다음 날이 왔다.

과연....... 두구두구.....

.... 는 개뿔, 전혀 놀랍지 않게도 아주 멀쩡했다.

그리고 전혀 기쁘지 않은 채로 버스에 타고 학교가 빌려놓은 널찍한 수영장에 도착했다.


그렇게 수영장에 도착하고 나 혼자만의 지옥의 시간이 시작될.... 줄 알았다. 그런데....

전에 혼자 최악이니 뭐니 난리를 쳤던 내가 부끄러워질 만큼 정말이지 재밌었다!!

예상보다도 수영장의 분위기는 더 밝고 즐거웠다. 쉬는 시간엔 커다란 스피커에서 음악이 나와서 선생님들과 몇몇 애들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막 춤을 췄다. 점심시간에는 온통 젖은 수영복을 수건으로 감싸고 도시락을 먹으며 친구들과 수다를 떠는데 얼마나 재밌던지! 그리고 단순히 자유형, 배영, 이런 시합들 뿐만 아니라, 간단한 릴레이 경기, 물속에서의 미니 게임들, 경기용 풀 외에 다른 작은 수영장에서 30분 정도의 자유시간도 주었다. 또 수영장 옆에 마련되어 있던 배구 코트에서 배구도 실컷 하고 참 즐거웠다.

원래 그렇게 자잘한 활동들만 하고 진짜 수영경기는 선택이었기 때문에 하나도 안 나가야지 생각했지만, 그건 뭔가 여기 온 의미가 없는 것 같아 큰맘 먹고 평영 경기에 도전했다.


준비하라는 표시가 보이자 난 상당한 겁쟁이기 때문에 다이빙대에 멋지게 포즈를 취하는 대신 수영장 모서리에 걸터앉아 물에 발을 담그고 덜덜 떨며 맘을 가라앉혔다.


그리고 곧,

탕! 출발을 알리자, 곧바로 나를 포함한 일곱 명 정도의 아이들이 물속으로 풍덩 뛰어내렸다.

그리고 난 있는 힘껏 팔과 다리를 내젓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갔을까, 힘들어서 잠시만 쉴까 하고 다리를 땅에 붙이려 하는데.. 어? 다리가 안 닿는다. 당황스러웠다. 순간 커다란 공포가 느껴졌고 소름이 끼쳤다. 두려워서 갑자기 몸이 안 움직여졌고 그대로 몸이 쑥 가라앉을 위기 상황이 발생했다. 내가 자꾸 허우적거리니까 지켜보던 안전 요원 언니들이 킥판을 던져주며 힘차게 응원해 줬다. 다시 힘을 얻고 열심히 계속해서 헤엄쳐 나가니까 어느새 멀었던 끝에 도달했다. 휴... 크디큰 안도의 한숨이 쉬어졌다.

그런데 응? 나를 제외한 다른 모든 아이들이 아직 뒤에서 헤엄치고 있는 게 아닌가. 오직 나만 결승선에 도달해 있었다. 헉.. 설마, 내가 일등? 대박!! 너무 기분이 벅차고 뿌듯해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애써 눈물을 꾹 참고 수영장 밖으로 나오는데 어라? 내 옆 라인에서 수영했던 애가 이미 자기 자리로 돌아가고 있었다. 이상하다, 내가 먼저 왔는데?

다시 고개를 돌려보니, 앗! 하고 깨달았다. 모든 애들이 이미 도착했는데 내가 너무나도 느렸던 탓에 미리 다음 턴의 아이들을 출발시켰던 것이었다. 그렇게 기적의 일등은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

울음을 참기를 참 잘했던 것 같다. 만약 참지 못했다면 뿌듯해서 우는 게 아닌 못해서 우는 걸로 착각해서 모두 당황했을 테니까 말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