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어이 브런치북 삭제 버튼을 누른 이유
최근 연재 중이던 '마음 뜨개질 공방' 브런치북을 삭제했다. 삭제해 버린 게 아니라 맘먹고 삭제한 것이다. 말도 없이 삭제한 점, 여러분들의 소중한 하트를 날려 보낸 점 참 죄송하고 또 죄송하다. 브런치를 시작한 지 6개월이 다 돼가는데 글도 얼마 못 쓴 애송이의 실수였다. 적어도 하루 전엔 알리고 삭제할걸. 하지만 그저 마음에 들지 않아 충동적으로 삭제한 게 아니라는 점은 알아두고 이해해 주셨음 한다.
이번 글에서 최근에 이 브런치북에 대해 해 온 생각과 고민들, 어떻게 이렇게 소재가 쉽게 바닥났는지 부끄럽지만 솔직히 고백하겠다.
일주일 전부터 쭉 마음 한편이 찜찜했다. 솔직히 이게 맞나, 싶었다. 가면 갈수록 내용이 산으로 가는 것 같았고, 오글거리는 말투에 표현에.. 으,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았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소재 고갈이었다. 아니, 고작 5편 썼는데 쓸 소재가 없다고? 내가 생각해도 황당했다. 가장 최근 올렸던 편에서'사랑 듬뿍 받는 아이인지라 슬픔을 별로 느껴본 적 없...(수치심에 이하 생략)'이란 듯 막 이러쿵저러쿵 바보같이 떠들어댔던 것, 부디 잊어주시길 바란다. 올린 후에 크게 후회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내가 너무 생각 없이, 거의 계획이 0에 가까운 상태에서 연재를 시작했던 것 같다. 그냥 뭐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이유 모를 나 자신에게 품은 기대감이 컸던 것 같다. 촉박한 시간이라는 궁지에 몰리면 잠재돼있던 재능을 발휘하는, 나도 그런 부류인 줄 알았건만. 정반대였다. 오히려 궁지에 몰리면 보통의 퀄리티마저 확 떨어지는 글을 쓰게 되었다. 문제는 그 사실을 일찍 깨달았지만, 고쳐지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어쩌면 고치려는 노력도 많이는 안 했을지도.
처음에 아이디어를 떠올렸을 땐, 무릎을 치며 좋아했다. 그때는 이것만큼 반짝이는 아이디어는 없을 것만 같았고, 어마어마한 글이 줄줄 흘러나올 것 같아 두근거리는 마음을 막지 못했다. 급하게 타자를 치며 브런치북을 만들어냈다. 너무 행복했다. 이 브런치북으로 구독자 100을 넘기는 말도 안 되는, 아주 어쩌면 말이 될까 하는 상상도 해보았다. 마치 너무도 들떠 아무 생각 없이 커다랗고 예쁜 주택 한 채를 사버린 사람 같았다. 기분 좋게 그 주택을 가지게 됐지만, 놓을 가구를 하나도 생각해놓지 않은 바보였다 난.
책임감은 개나 주고 급히 도망치는 기분이 들어 정말이지 부끄럽고 또 부끄럽다. 하지만 이게 내 최선이었던 것 같다. 책임감, 책임감 되새기며 억지로 꾸역꾸역 맛없는 글을 쓰는 것보단, 차라리 뱉어버리고 튀는 게 나은 것 같다. 꽤 고민한 끝에 나온 결론이었다. 하지만, 이 삭제가 마냥 무책임한 도망이 되지 않을 거라는 점 약속한다. 마냥 겁먹고 도망치는 것만이 아닌, 저퀄리티 위험을 피해 잠시 대피하는 것이란 걸, 새로운 시작점이란 것을 꼭 증명해 보이겠다. 다음에 또 다른 새로운 시작을 가져오기 전에는, 다시, 다시 그리고 또다시 신중히 생각하고 계획해서, 완성도 있는 이야기를 선보이겠다. 또, 함께 가져올 '책임감'도 절대 잊지 않을 것이다. 얼마나 걸릴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번에 돌아올 때는 기어코, 대충 놓은 나무판자 같은 글이 아닌, 차곡차곡 쌓은 벽돌집 같은 글들을 정성스레 쌓아오겠다.
(결국 수치심에 반성하는 작가 딸기라떼 였습니다. 저의 모지란 글들에도 아낌없는 하트를 날려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하고 죄송한 마음입니다. ㅜ.ㅜ 다음에 다시 돌아올 때는 꼭 고퀄의, 완성도 있는 글로 실망시켜드리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