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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너

by 매글이

소설은 취향이 아니지만, 꼭 한 번 읽어보고 싶었던 소설, 스토너

묵묵히 살아가는 것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었던 책이다.


평범하기 그지 없는 삶의 이야기라 느꼈다. 이렇다할 클라이맥스도 없어 초반에는 좀 지루하다 싶었지만 뒷부분으로 갈 수록 묵직한 감동이 있었던 이야기.

마지막 부분에 가면 '나는 무엇을 기대했는가?' 라는 문장이 반복되어 나온다.

그가 삶에서 기대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진실된 우정을 바랬고, 혼자있기를 좋아하면서도 결혼을 통해 안정적인 연결됨을 느끼고 싶었고,

순수한 사랑을 하고 싶었던 스토너는 이 모든 것에서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결과를 맞이한다.

사랑에 서툴고 방법도 모르는 그. 친구와의 우정은 빗나가고, 자녀와의 관계에서도 특별히 그가 도울 수 있는 게 없어 보인다. 심지어 불륜관계를 맺은 여인과 열렬한 사랑을 나누지만 그마저도 포기한 그였다.


아버지의 농업을 이어받는 것을 거부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공부를 선택해 결국 대학교수가 되지만 학교에서의 삶도 녹록치 않았다. 책도 한 권밖에 펴내지 못한 교수. 특별히 존경과 명예를 얻었다고 보기도 어렵고, 자신을 미워한 동료 교수에 의해 온갖 불이익을 받으며 교수 생활을 마감했으니 말이다.


세상의 잣대로 보면 실패한 삶이라고도 볼 수 있는 그의 삶이지만, 과연 실패라 할 수 있을까?


"인생의 모든 순간에 열정을 주었다"는 문장.

"자신이 열정을 주고 있음을 의식하지 못했을 때가장 온전히 열정을 바친 것 같았다"는 문장에 생각이 많아졌다.


인생의 어떤 순간을 열정적이었다 말할 수 있는걸까?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하고, 무언가에 몰입해서 결과물을 낼 때. 내가 봐도 누가봐도 열정적으로 살고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외의 평범한 순간들은 어떻게 열정을 바쳤다 말할 수 있을 것인가.


하루하루 묵묵히 살아내고 버텨내는 것의 가치를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스토너의 삶이 기대한 바대로 흘러가지도, 특별히 빛나 보이지도 않지만 그 누구를 비난하지도, 탓하지도 않는 스토너의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심지어 자신을 미워하는 동료에 대해서도 복수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모욕이라 느껴질 법한 공격을 당하는 상황에서도 자신의 일에 대한 원칙을 고수하고, 자기생각을 말할 뿐, 그를 맹렬히 비난하지 않는다.


결혼생활에서도 한 달만에 그녀와의 결혼이 잘못되었음을.. 1년이 못 되어서 이 결혼생활이 앞으로도 희망적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깨달은 그. 얼마나 후회스럽고, 괴로웠을까. 하지만 그녀를 놔둔다. 겉으로만 보면 무심한 남편이라 볼 수도 있지만 그는 그녀를 자기 입맛에 맛게 길들이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하고싶은 대로 하게끔 둔다.


마지막에 가서 말 수가 별로 없는 그의 딸이 아버지를 보며 가엾다고 표현한다. 자신과 엄마가 아빠를 실망시키지 않았냐고 묻지만 그는 그렇지 않다 대답한다. 실제로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음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고.


스토너를 회피하는 태도를 가진 사람이라 볼 수도 있지만,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과 환경을 그저 받아들이는 모습으로도 보였다. 그저 받아들인다는 게 삶에서 얼마나 힘든 태도인지 체감하는 요즘이다.


마음에 들지 않을 때는 원하는 대로 바꾸고 싶은 생각에 현재 상황에 불만을 품기도 하고, 이렇게 만든 누군가를 향해 비난이나 미움을 갖는 게 보통의 경우다. 수용하는 태도가 문제 해결에 열쇠일 때가 많다는 건 잘 알지만 실제 삶에서 적용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상황을 그저 받아들이는 수용의 태도에서 결국은 깨달음을 얻는 과정의 묘사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같은 집에 살고는 있지만 별거나 마찬가지로 보이는 생활을 이어간 그다. 자신과 아내 사이에 긴 침묵의 시간을 자신의 무관심에 대한 공격이 아닌 자신이 개별적인 공간으로 갈 수 있게 만들어주는 기회처럼 생각하게 되는 장면도 있다.


딸과의 시간을 보내며 문득 이런 삶이 자신이 원하고 바라는 삶이 아닌지 깨닫는 장면이라든지. 본인이 애써 만들어낸 결과물은 아니지만 묵묵히 버티고 살아온 시간 속에서 빛나는 깨달음을 얻는 장면들이 곳곳에 있었다. 그렇게 얻은 지혜는 어느날 갑자기 떨어진 깨달음이 아님을 느낄 수 있다.


하루하루 앞으로 내딛은 그의 발걸음이 쌓인 결과라 생각한다. 마음에 들지 않아도, 절망스러워도, 기대와 달라도 그저 내 마음이 이끄는 것을 따라가며 하루하루 할 수 있는 일을 성실히 해나가는 것이다. 나 아닌 무언가를 탓하며 스스로 망가지고 무너질 수도 있는 상황들이 숱하게 있었지만 그저 자신이 지키고자 하는 것들을 지켜가며 묵묵히 나다운 발걸음을 떼는 것. 그런 시간들 역시 열정을 바친 삶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성공과 실패를 구분지을 때 사람들은 보통 눈에 보이는 결과물을 가지고 판단하게 된다. 하지만 한 사람의 인생이라는 긴 역사를 몇 가지 결과물만으로 이렇다 저렇다 말 하기에는 부족하지 않을까.


윌리엄 스토너는 자신의 마음의 소리를 따라가는 삶을 살았다. 책과 공부, 연구를 좋아한 스토너. 학문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성실함을 사랑했던 그.


자신의 선택에 따른 만족스럽지 않은 상황들은 많았지만 불평하거나 누군가에게 책임을 전가하지 않고, 그저 하루하루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다.


그런 시간들을 통해 자기다운 모습이 어떤 것인지 깨닫는 날도 있었고, 자신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선명하게 알게된 날도 있었으니, 묵묵히 버틴 시간들이 주는 선물이 아닐까.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하루하루 묵묵히 살아온 스토너. 세상의 잣대로는 어떻게 보일 지 모르는 일이나, 다 읽고나니 그가 생에 모든 순간에 열정을 바쳤다는 데에 공감할 수 있었다.


오늘의 나의 모습이 대단한 무언가가 없어보여 만족스럽지 않을 수 있지만, 지금 이 순간 주저앉지 않고 한 걸음씩 나아갈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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