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니, 사랑해.

by 매글이

사다놓은 갈치가 먹고싶다는 아이들의 말에 벌떡 일어나 오늘은 부지런을 좀 떨어보기로 했다.

주말 오전이면 남편이 아침을 차려주는 게 우리집 일상이 되어버린 걸까. 오늘 아침은 내가 준비한다는 걸 생색내고 싶었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고맙지?" 하고 물었다.

(평소 같으면 당신이 아침을 차렸을텐데, 오늘은 내가하니 나한테 고맙지? 뭐 이런 뜻이 담긴 질문이었다.ㅎ)


"응. 고마워" 답변을 기대했지만...

"아니... 사랑해." 로 답하는 남편이었다.

다시 물어도 같은 대답.


'사랑해'라는 말에 의미를 둘 수도 있겠지만, 남편과 나는 하루에도 사랑한다는 말을 수십번씩 하며 지낸다.

사랑한다는 말을 밥먹듯이 쓰며 지내니, 할 말이 딱히 없을 때도 툭 건네는 말. 미안하거나 어색할 때도 장난스레 사랑해를 남발하기에 이제는 그 말이 그리 큰 감동을 주지는 않는다는..ㅎㅎ


상황이 이렇다보니, 사랑한다는 말보다는 속 좁은 나는 '아니'라는 말에 무게를 더 실어 듣게 된다.

그럼, 고맙지 않다는 건가 싶어, 흥칫뿡을 하며 나 지금 삐쳤음을 알렸다.


이유가 어찌되었건 아내가 삐친 모습에는 당황하는 남편이다.

사랑한다는 말을 좋아해서 그 말을 해줬건만, 갑자기 웬 날벼락인가 싶었을 거다.


"오늘 아침은 내가 준비하니 생색 좀 내고 싶었다고. 고맙다는 말 좀 듣고 싶었는데, 그렇게 그 한마디를 안하려고 하다니!"

속사포 랩을 하듯 말하는 내가 웃겼나보다.


남편은 말한다. "난 한 가지 밖에 못해. 두 가지 시키면 안 돼..."


그렇지. 단순한 이 사람에게 내가 두 가지를 동시에 바라고 있었구나를 깨닫는 순간. 단순하게 알려줘야겠다 싶었다.


"보통 때는 '사랑해'로 통하지만,

내가 '고맙지?' 라고 물을 때에는 듣고싶어 묻는거니, 고맙다는 말을 먼저 꼭 말해주면 좋겠어. "


이렇게 말하니 알겠다고 오케이 하는 남편이다.


이걸 글로 쓰다보니 내가 너무 유치한 것 같아 부끄럽지만ㅎㅎ

잠시 서운함에 오르락 했던 감정이 교통정리된 이 상황이 만족스럽기도 하다.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의미를 부여하기 좋아하는 나.

듣고싶은 말을 못 들으면 감정이 오르락 내리락하는 사람인가보다.


상대가 남이었다면 혼자 끙끙대고 있었을텐데, 편한 남편이라 속사포 랩도 하며 서운함을 표현할 수 있었다.

말 한마디에 집요하게 구는 나를 받아준 남편이 오늘따라 더 고맙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스토너